YS차남 김현철의 이유 있는 김무성 비판
스크롤 이동 상태바
YS차남 김현철의 이유 있는 김무성 비판
  • 박근홍 기자
  • 승인 2016.02.02 17: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자수첩>YS 숙원 못 이룬 '정치적 아들', 무슨 할 말이 있나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박근홍 기자)

YS(故 김영삼 전 대통령) 차남 김현철 국민대 특임교수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를 강도 높게 비판해 논란이 되고 있다. 김 대표가 문민정부 당시 치러진 15대 총선 공천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하자, 이에 반발한 김 교수가 직격타를 날린 것이다.

김 대표는 지난달 27일자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나도 그때 들어왔지만 그 과정을 보면 내가 부끄러워서 말하지 못할 정도로 비민주적이고 탈법 행위가 있었다. 당시 권력의 힘 앞에서 의원들은 파리 목숨이었다"고 말했다.

여기서 '그때'는 1996년 문민정부 당시 치러진 15대 총선이다. 그리고 '권력의 힘'이란 YS를 빗댄 표현이다. YS의 '정치적 아들'이라 자부하던 김 대표가 YS를 공격한 것이다.

그러자 김현철 교수는 지난달 28일 자신의 SNS 계정을 통해 "문민정부 당시 총선의 공천은 누구나 인정하는 개혁공천이었다"며 "(15대 총선을 통해 정계에 입문해) 지금도 활동하는 많은 분들이 계시는데 이를 비난하는 것이 정치적 아들이 할 일인가"라고 지적했다.

이어 김 교수는 지난달 30일 자신의 SNS 계정으로 "아직 산소에 떼도 입히지 않았는데 정치적 아들이라는 사람이 아버님의 무덤에 침을 뱉고 있다"는 글을 게시해 김 대표를 연거푸 저격했다.

이를 두고 호사가들은 김 교수가 '야권의 길을 택했다', '김무성을 공격해 정치권 진출 신호탄을 쐈다'는 등 확인되지 않은 설(說)들을 앞 다퉈 내놓고 있다.

기자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그런 정치 공학적 시각으로 바라볼 문제가 절대 아니다. 15대 총선 당시 '개혁공천'은 YS의 숙원에 따른 성공적인 공천 작업이었다. 또한 김 대표는 YS의 숙원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YS를 비난할 자격이 없다. 김 대표에 대한 김 교수의 지적은 지극히 당위적인 비판이다.

▲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왼쪽), YS(故 김영삼 전 대통령) 차남 김현철 국민대 특임교수 ⓒ 뉴시스

성공적이었던 YS의 15대 총선 개혁 공천

YS는 문민정부 수립 후 기득권 세력에 대한 개혁 작업을 펼치기로 결심하고, 그 순서를 '인적개혁'-'제도개혁'-의식개혁'으로 정했다. '하나회 청산', '공직자재산공개', '금융실명제' 등은 인적개혁과 제도개혁의 일환이었다.

그러나 의식개혁은 발을 떼기조차 어려웠다. 정치·법조·언론·경제·산업·문화·교육 등 사회 전반에 걸친 기득권 세력, 그리고 이에 대한 잘못된 사회 인식을 변화시키는 일이었기에 강력한 반발에 부딪힌 것이다.

YS는 의식개혁을 자신의 임기 내에 완료하기 어렵다고 판단했고, 정권재창출을 통해 문민정부의 변화와 개혁을 지속시킬 필요성을 절감했다.

하지만 1995년 민자당(현 새누리당)은 지방선거에서 참패했다. 이대로는 정권재창출이 요원했다. YS는 이듬해(1996년) 15대 총선에서 반드시 승리해야 대선 승리를 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의 차남 김현철은 '개혁공천'을 열심히 도왔다.

"비민주적이고 탈법 행위"라는 '정치적 아들'의 말과 달리, 당시 개혁공천 작업은 철저하게 합리적으로 진행됐다.

김현철 교수는 지난해 <시사오늘>과의 인터뷰에서 "제도권 내부뿐만 아니라 제도권 밖에서 보더라도 파격적인 인물, 참신한 인물들을 내세워야 했다. 그러다 보니 여당 내 기득권 인사들이 반발하지 않을 리 없었다"며 "하지만 공천 작업을 1년 가까이 준비했고, 합리적인 선출 방식을 적용했기 때문에 그들도 조직적으로 반대할 수 없었다. 더욱이 '허주 김윤환' 등 당시 민정계 핵심 멤버들과도 많은 대화를 했었다. 일방적인 기획 공천은 결코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다"고 술회했다.

이 같은 YS의 개혁공천은 정계에서 가장 손꼽히는 성공적인 공천 사례로 평가된다. 소통과 공감이 있는 공천 작업이었고, 이를 통해 걸출한 인사들이 정치권에 진출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15대 총선을 통해 여의도 국회 입성에 성공한 김무성, 정의화, 홍준표, 김문수 등은 오늘날 대한민국 정치권을 주름잡는 거물급 정치인으로 성장했다.

개혁 지속하지 못한 김무성, YS 비판할 자격 있나

김무성 대표가 YS를 비판할 자격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김 대표는 YS에게 정치를 배웠고, 스스로 YS의 '정치적 아들'이라고 자부했지만 YS의 숙원을 이루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김 대표를 비롯해 15대 총선 개혁 공천으로 정치권에 발을 들인 인사들은 정권재창출을 이루지 못했다.

1997년 대선을 앞두고 민주계는 김덕룡계, 최형우계로 더 나아가 이인제계로 나뉘었다. 이로 인해 민정계의 위시를 받은 이회창이 대선 후보로 나서게 됐고, 그는 DJ(故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패배했다. 지리멸렬한 민주계는 그다음 대선에서도 이회창에게 대선 후보 자리를 내줬다. 결과는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승리였다.

이 과정에서 김 대표의 존재감은 희미했다. 전혀 자기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급기야 김 대표는 2005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사무총장이 되면서 친박(친박근혜)계 좌장으로 거듭났다.

그는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에서 박근혜 후보의 당선을 위해 뛰었고, 2012년에는 박근혜 캠프의 총괄선대본부장을 역임해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승리를 이끌었다.

그 힘을 바탕으로 당대표가 됐고, 차기 대선후보 선호도 조사에서 늘 수위를 다투고 있다. 하지만 김 대표는 YS의 변화와 개혁을 지속하겠다는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는 모습이다.

YS는 항상 의회를 존중하는 의회주의자였다. 또한 사회 전반에 걸친 기득권을 타파하고 오직 국민만을 바라보는 '뜨거운 개혁'을 추구했다. 이런 YS의 변화와 개혁이 김 대표에게 얼마나 투영돼 있는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김무성, YS와의 정치적 부자 관계에 의절 선언한 것인가

김무성 대표는 15대 총선 때 국회의원에 당선된 직후, 의정 활동 목표로 "YS가 개혁 작업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김 대표에게 묻고 싶다. 왜 YS 서거 정국 때 자신을 YS의 '정치적 아들'이라고 자부했나. 대권가도를 달리기 위한 욕심에서 나온 발언인가, 아니면 YS의 변화와 개혁을 지속시키겠다는 진정성이 담긴 의지 표명인가.

또 김 대표에게 묻고 싶다. 왜 총선을 3개월여 앞두고 YS의 무덤에 침을 뱉었나. 총선 승리를 발판으로 청와대에 입성하겠다는 욕망을 드러낸 것인가, 아니면 YS와의 정치적 부자 관계에 의절을 선언한 것인가.

김 대표의 부당한 YS 비난에 당당히 맞서는 YS의 생물학적 아들이자, 그의 정치적 동지였던 김현철 교수에게 박수를 보낸다.

담당업무 : 건설·부동산을 중심으로 산업계 전반을 담당합니다
좌우명 : 隨緣無作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