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와 루이 반 할]이상주의자의 고된 현실 적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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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와 루이 반 할]이상주의자의 고된 현실 적응기
  • 정진호 기자
  • 승인 2016.02.13 14: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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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로 풀어본 정치인(8)>‘우왕좌왕’ 안철수와 ‘고집불통’ 반 할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정치는 축구와 비슷하다. 정해진 규칙 안에서 겨뤄야 하고, 승자와 패자도 생긴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가장 비슷한 점은, ‘사람’의 게임이라는 점이다. 축구 팬들은 잔디 위에서 뛰는 ‘사람’에게 멋진 플레이를 기대하고, 국민들은 정치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희망을 투영하고 미래를 건다. 다른 듯 닮은 정치계와 축구계의 ‘사람’을 비교해 본다.

‘우왕좌왕’ 안철수와 ‘고집불통’ 반 할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루이 반 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감독은 화려한 경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도전을 선택했지만 이상주의에 발목이 잡혀 고난을 겪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또 소통 부족으로 주변 사람들과 불화를 일으킨 경험이 있다는 것도 같다. 

▲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 뉴시스

화려한 경력

안 대표는 ‘성공한 기업인’이었다. 그가 1995년 창립한 안철수연구소는 소프트웨어 업체로는 한글과컴퓨터에 이어 두 번째로 연매출 100억 원을 돌파했고, 최초로 세후 순이익 100억 원을 돌파한 기업이었다. ‘컴퓨터 바이러스’라는 개념조차 잡혀 있지 않던 시대에 ‘백신(Vaccine)’을 개발하고 기업을 일궈낸 안 대표는 ‘한국의 스티브 잡스’라는 평가가 결코 어색하지 않은 인물이었다.

안 대표는 ‘존경 받는 멘토’였다. 2005년 대표이사직을 사임한 후 안철수연구소 전 직원에게 각각 650주씩 총 8만주를 나눠주며 ‘상생의 경영’을 실천했고, 2011년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는 박원순 당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에게 후보 자리를 양보하며 욕심을 버리고 평소 신념을 행동으로 옮기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 결과 2012년 대통령 선거 전에는 ‘절대강자’로 여겨졌던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를 여론조사에서 이길 정도로 높은 인기를 누렸다.

반 할 감독의 경력도 화려했다. 1991년, 그는 레오 베인하커르에 이어 AFC 아약스의 지휘봉을 잡아 1993-94, 1994-95, 1995-96 세 시즌 연속 에레디비지에(네덜란드 리그) 우승을 따냈고, 유럽 무대에서도 1991-92 시즌 UEFA컵, 1994-95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를 제패하며 성공 가도를 달렸다. 1997년 FC 바르셀로나로 자리를 옮긴 뒤에는 1997-98, 1998-99 두 시즌 연속 프리메라리가(스페인 리그)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이후 네덜란드 대표팀과 바르셀로나, 아약스를 거치는 동안 부진과 불화로 부침을 겪은 반 할 감독은 2008-09 시즌, 알크마르를 이끌고 아약스와 PSV 아인트호벤이 양분하던 에레디비지에를 제패하며 부활의 날개를 폈다. 네덜란드에서의 성과를 바탕으로 그는 2009년 7월 분데스리가(독일 리그)의 명문 FC 바이에른 뮌헨 감독으로 부임했고, 데뷔 시즌부터 분데스리가와 DFB 포칼 우승, UEFA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을 차지하며 다시 한 번 능력을 발휘했다.

바이에른 뮌헨을 떠나 다시 한 번 네덜란드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반 할 감독은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자신의 진면목을 보여줬다. 월드컵 직전 핵심 선수들이 부상으로 대거 이탈하고, 죽음의 조(네덜란드, 칠레, 스페인, 호주)에 배치되는 등 악재가 겹쳤던 네덜란드를 3위로 이끈 것이다. 특히 조별 예선에서 ‘세계 최강’ 스페인을 5-1로, 3위 결정전에서 브라질을 3-0으로 대파했으며, 상황에 따른 유연한 전술 변화를 보여주는 등 대회 내내 깊은 인상을 남겼다. 

▲ 루이 반 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한국어 공식 홈페이지

이상주의자

2012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며 정계에 발을 내딛은 안 대표는 이때부터 내리막길에 접어든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대통령 후보 자리를 양보하면서 다시 한 번 ‘양보의 정치’를 실천한 안 대표는 2013년 4월 재·보궐 선거를 통해 여의도에 입성했다. 그리고 ‘국민과 함께하는 새정치 추진위원회’를 출범시키며 신당 창당에 나섰다. 그러나 ‘깨끗하고 능력 있는 인물’에 집착했던 ‘이상주의자’ 안 대표에게 현실의 벽은 만만치 않았다.

결국 인물난에 시달리던 그는 민주당 김한길 대표와 제3지대 신당창당에 합의하며 새정치민주연합 공동 대표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새정치민주연합이 2014년 7월 재·보선에서 패한 책임을 지고 대표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이후 안 대표는 새정치민주연합의 비주류 수장으로 자리매김, 강력한 혁신안을 제시하며 내부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을 개혁하려고 시도한다. 하지만 안 대표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또 한 번 현실의 벽에 무릎 꿇은 그는 전격적으로 탈당을 감행하며 제3지대에서 신당을 창당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안철수의 이상주의’는 한국 정치 현실에서 수용되기 어려운 면이 있었다. ‘비리혐의로 기소만 돼도 공천에서 배제한다’는 방침을 금과옥조로 삼고 있는 안 대표의 입맛에 맞는 인물을 찾기는 하늘의 별 따기와 같았기 때문이다. 이러다 보니 아직까지도 ‘이상주의’에 발목이 잡혀 우왕좌왕하는 모양새다.

반 할 감독만큼 ‘이상주의자’라는 단어에 어울리는 인물도 없다. 반 할 감독은 다양한 포메이션을 활용하고 스리백과 포백을 혼용하는 등 전술적으로 매우 유연한 지도자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가 지향하는 바는 명확하다. ‘지배’와 ‘점유’가 그것이다.

안 대표가 ‘청렴’에 집착하듯, 반 할 감독은 지나치게 ‘볼 점유’를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리누스 미헬스 감독의 토털 풋볼에 뿌리를 두고 있는 반 할 감독은 볼을 탈취한 후 자기 진영에서부터 느리지만 정확한 패스로 공격을 전개한다, 상대에게 수비를 정비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높은 볼 점유를 바탕으로 경기를 지배하면서 빠르고 창조적인 공격수를 활용해 득점을 노리는 것이 그의 축구다.

문제는 반 할 감독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도 같은 방식을 고집하고 있다는 것이다. 맨유에는 볼 점유율 관리에 능한 미드필더도, 창의적인 도우미도, 빠르고 결정력 있는 공격수도 없지만 반 할 감독은 자신의 철학을 고집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볼 점유율은 높지만 전체적인 경기력은 형편없는 상황으로 연결되고 있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절감하고 있는 셈이다.

소통 부족

안 대표와 반 할 감독이 공유하는 또 하나의 문제점은 ‘소통 부족’이라는 꼬리표다. 전 국민적 기대를 받았던 안 대표는 정치에 첫 발을 디였을 때부터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 윤여준 전 환경부장관, 김성식 전 의원, 금태섭 변호사 등 ‘인재’들의 도움을 받았다. 특히 국내 최고의 진보적 정치학자로 불리는 최 교수는 안 대표에게 천군만마와도 같았다.

하지만 안 대표와 이들의 협력 관계는 오래 가지 않았다. 최 교수는 “(정책네트워크 내일의) 이사장이었지만 내 아이디어에 특별한 무게가 실리지 않았다. 역할이 없었다”며 안 대표와 결별했고, 새정치추진위원회 의장을 맡았던 윤 전 장관은 민주당의 통합 과정에서 “이 자가 얼마나 거짓말을 했는지 알아야겠다. 연기력이 많이 늘었다. 아카데미상을 줘야 한다”는 등의 독설을 내뱉으며 곁을 떠났다.

김 전 의원도 독단적인 통합 과정에 반발하며 안 의원의 손을 놨으며, 금 변호사도 자서전을 통해 “돈 한 푼 받지 않고 열정을 쏟았는데, 아무런 상의도 없이 모든 게 무너졌다. 우리를 동지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허탈감이 컸다”고 토로했다.

다행이 국민의당 창당 과정에서 과거에 대해 사과하고 윤 전 장관과 김 전 의원을 다시 품에 안는 등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나, ‘불통’이라는 꼬리표를 떼는 데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반 할 감독의 ‘불통’은 축구계에서 둘째라가면 서럽다. 가는 팀마다 불화를 일으키지 않은 적이 없을 정도다. 바르셀로나에서는 프리메라리가 2연패에도 불구하고 히바우두와의 갈등, 언론과의 다툼 등으로 팀을 떠나야 했고, 아약스에서 풋볼 디렉터로 재임하던 당시에는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와 불화를 일으켰다.

바이에른 뮌헨 시절에는 루카 토니와 말다툼을 하다가 “나는 누구의 지시도 받지 않고 내 판단으로 선수를 교체할 권한이 있다. 내게는 최고의 XX이 있으니까”라며 바지를 내리는 기행을 벌이기도 했다. 이후 토니는 곧바로 팀을 떠났다.

토니뿐만 아니라 미로슬라프 클로제, 프랑크 리베리, 루시우와도 갈등을 겪었고, 맨유로 자리를 옮긴 뒤에도 앙헬 디 마리아, 빅토르 발데스와 불화를 일으켰다. 만약 반 할 감독이 구단 운영진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선수단을 좀 더 다독이는 능력이 있었다면 그에 대한 평가는 또 달라졌을 것이다.

담당업무 : 국회 및 국민의힘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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