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대로 해!"…2016 대한민국은 불신시대
스크롤 이동 상태바
"법대로 해!"…2016 대한민국은 불신시대
  • 오지혜 기자
  • 승인 2016.02.18 17: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자수첩> '대화'보다 '헌재' 찾는 정치권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오지혜 기자)

▲ 지난 4일 국회에서 열린 '2+2 회동'에서 여야 지도부가 굳은 얼굴로 협상 테이블에 앉아있다. ⓒ 뉴시스

"거 법대로 합시다!"

요새 길거리에서 자주 듣는 말이다. 경미한 말다툼에도 앞다퉈 휴대폰을 꺼내들고 경찰을 부른다. 누구 잘못인지 '법적'으로 판단받겠다는 것이다.

사회적 갈등을 푸는 데 최후의 수단이었던 법이 이제는 '만병통치약' 취급을 받는다. 이같은 사회적 인식의 변화는 대검찰청 통계에서도 나타난다.

대검찰청이 발표한 '2015 형사사건 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접수된 형사사건은 178만6천757건으로 전년 동기대비 5.8% 증가했다. 이 중 고소·고발 사건은 47만229건으로 전체 28.3%를 차지했다.

특히, 당사자가 직접 수사기관에 제기하는 고소의 경우 39만7천651건으로, 2009년 이후 6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처럼 고소 비율이 높아지는 것은 법적 처리에 대한 대중의 거부감이 다소 줄어들었다는 방증이다. 주요 요인으로는 경제적 발전에 따른 학력증진, 인터넷 등을 통한 정보접근성 강화 등을 들 수 있겠다.

쉽게 말해, 지금은 주변에 법학 전공한 사람 한 명쯤 찾아보기 어렵지 않고, 없더라도 유력 포털사이트에 관련 키워드를 검색하면 전문가의 소견을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개인간 법적 공방이 잦아지는 데는 보다 깊은 문제가 있다. 상대방에 대한 불신으로 애초부터 대화를 통한 합의는 포기한다는 점이다.

국민을 대표한다는 국회 역시 의견 차이에는 '회동'보다 '헌법재판소'에 의지하는 모양새다.

대표적인 사례는 지난달 28일 헌번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국회선진화법' 권한쟁의심판이다.

국회선진화법에 따르면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쟁점 법안은 과반수보다 엄격한 재적의원 5분의 3(180명) 이상이 동의해야 본회의 상정이 가능하다.

이에 여야 협상이 자주 교착상태로 빠지자, 새누리당 주호영 의원 등 19명이 국회선진화법이 입법기관의 법률안 심의·의결권을 침해, 헌법에 어긋난다며 심판을 청구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의 답변은 본질을 꿰뚫는 '촌철살인'이었다.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은 "국회가 자율적으로 해결해야 할 운영 절차의 문제를 놓고 권한쟁의 심판을 제기한 것은 부적절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이어 "국회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이유는 법률 문제가 아니라 상임위 운영 관행이나 여야 정치력의 부재 탓이라는 의견이 있다"면서 "소수파가 주로 제기하는 권한쟁의심판을 다수파가 입법권을 침해당했다며 제기하는 것도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19대 국회 내내 여야 협상이 공회전에 그친 것은 감정적 대치가 길어졌기 때문이다.

양당 지도부는 서로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으로 '전략적 선택'이 필요한 협상에서도 선뜻 양보에 나서지 않았다. '치킨게임'처럼 법적 기한이 다가올 때까지 버텼던 것이다.

선거구 획정안도 마찬가지였다. 현행 선거구는 앞서 지난 1월 1일 무효화됐다. 그런데도 협상 테이블에 뻣뻣히 앉아있던 양당 원내지도부는 선거가 코앞에 닥쳐서야 경선 진행에 필요한 '안심번호'를 챙기고 회동에 나섰다.

박 소장이 앞서 언급한 '정치력'이란 결국 대화로 갈등관계를 풀 수 있는 기술이다. 이해관계가 다른 상대방의 요구사항과 내 요구사항을 유연하게 조정하는 것이다.

물론 법적 해결은 간편하고 뒤탈도 없다. 꼬인 실타래를 가위로 잘라버리는 '시원함'은 있다.

그러나 내일도 함께 걸어나가야 할 상대방에 대한 신뢰가 '제로'라면 아주 작은 돌멩이에도 넘어지기 일쑤다. 지난 4년간 서로를 향해 '분노' '불신' '막말'을 쏟아내며 아무 것도 못한 채 막판까지 협상 테이블에 붙잡힌 19대 국회처럼 말이다.

담당업무 : 국회 및 야당 출입합니다.
좌우명 : 本立道生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