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버스터, 몇 시간인지가 그렇게 중요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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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버스터, 몇 시간인지가 그렇게 중요합니까?
  • 정진호 기자
  • 승인 2016.02.24 11: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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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뉴스 범람의 시대, 언론의 역할을 고민하다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 더불어민주당 김광진 의원 ⓒ 뉴시스

'김광진 의원, 필리버스터 DJ 기록 깨'
'은수미 의원, 김광진 기록 다시 경신'

‘테러방지법’에 반대하는 필리버스터가 시작된 뒤, 언론이 내보낸 기사의 제목들은 한결같았습니다. ‘DJ의 기록을 깼다, 김광진 의원이 5시간 넘게 필리버스터를 했다, 은수미 의원이 김광진 의원의 기록을 다시 경신했다’ 같은 것이었지요. 언론들은 필리버스터 지속 시간을 마치 마라톤 중계하듯 보도했고, 흥미로운 이야깃거리의 주인공이 된 김광진·은수미 의원은 포털 사이트의 검색어 상위권을 차지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한 가지 의문이 듭니다. 과연 이것이 언론의 역할일까요? 누가 몇 시간에 걸쳐 필리버스터를 하고, 기록을 깨고 또 깨고, 다음 주자로 누가 기다린다는 것이 정말 중요한 뉴스일까요?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김광진 잘했다!!!’는 트위터를 남긴 것이 그렇게 중요한 일일까요?

김광진 의원은 필리버스터를 통해 “테러방지법이 과연 지금 이 시기에 꼭 필요한가, 이 법이 있지 않으면 대한민국이 테러를 막을 수 없는 것인가에 대한 본질적 고민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것이야말로 언론이 주목해야 할 대목이라고 생각합니다.

테러방지법은 국가주의적 가치와 자유주의적 가치가 첨예하게 대립할 수 있는 법안입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일정 정도의 자유를 희생시킬 수 있다고 믿는 국가주의자들은 테러방지법 제정 취지에 공감하는 반면, 타인의 자유를 부당하게 침해하지 않는 한 최대한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자유주의자들은 그 반대의 입장을 취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일주일을 밤새 토론해도 결론이 나지 않을 사안이지요.

그러나 테러방지법이 제정되고 직권상정 되는 과정에서 국민적 합의 절차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테러방지법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여당과, 지금을 ‘국가비상사태’로 규정한 국회의장의 뜻에 따라 본회의에 부의됐을 뿐입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토대를 형성하는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법안치고는 너무 ‘시끄럽지 않다’는 느낌이 듭니다.

제가 생각하는 언론의 역할은 이런 상황 속에서 국민들의 이해를 도우며, 사안을 공론화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국민들에게 ‘이런 문제가 있는데, 한 번 토론해보자’고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시끄럽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번 필리버스터 관련 뉴스를 보면서, 알랭 드 보통이 <뉴스의 시대>에서 한 말이 떠올랐습니다.

“민주정치의 진정한 적은 무작위의, 쓸모없는, 짧은 뉴스들의 홍수다. 그것은 점차 사람들로 하여금 이슈에 대한 본질을 파고들고 싶지 않게 한다.”

우리 모두 한 번쯤 생각해 봐야 할 문제가 아닐까요?

담당업무 : 국회 및 국민의힘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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