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대한민국,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진행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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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대한민국,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진행형’
  • 박수진, 안지예 기자
  • 승인 2016.02.25 01: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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솜방망이와 가혹한 잣대 기준, '돈?'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박수진, 안지예 기자)

▲ ⓒ채널A 실화극장 사건의 현장 캡쳐

“돈 없고 권력 없이는 못 사는 게 이 사회다. 전경환(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생)의 형량이 나보다 적은 것은 말도 안 된다. 돈이 있으면 판검사도 살 수 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우리 법이 이렇다.”

1988년, 당시 이 말을 남기 탈주범 지강헌은 10~20년까진 내려진 과중한 형량에 분노해 탈주한 뒤, 한 가족을 인질로 삼고 경찰과 대치하다가 결국 경찰특공대가 쏜 4발의 총을 맞고 죽었다. 그가 이처럼 끔찍한 사건을 벌인 데에는 전경환 씨가 수십 억 원에 대한 사기와 횡령으로 1989년 징역 7년을 선고받았으나, 실제로는 2년 정도 실형을 살다가 풀려났기 때문이었다. 사건이 발생한지 30년이 지난 지금, 강산은 3번이나 변했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는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용납되고 있다.

유전무죄, 회장님 수백억 횡령해도 ‘무죄’

올해가 시작되기 무섭게 유통업계에서는 회장님들의 횡령·배임 혐의에 대해 잇달아 무죄선고가 발표됐다.

도성환 전 홈플러스 사장과 임직원들은 대규모 경품행사를 미끼로 개인정보를 수집한 뒤 이를 보험회사 등에 팔아 수백 억 원을 받고 판 혐의로 지난해 12월에 기소됐지만, 모두 무죄 선고를 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6단독 부상준 부장판사는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도 사장과 홈플러스 법인에 모두 무죄를 선고한다고 지난달 8일 밝혔다.

같은 혐의로 기소된 홈플러스 김모(62) 전 부사장과 현모(49) 신유통서비스본부장, 전·현직 보험서비스 팀장 3명과 보험사 직원 2명에게도 모두 무죄가 선고됐다.

부 부장판사는 “개인정보보호법은 제3자에 정보를 제공할 때 이용목적 등을 고객에게 알릴 것을 요구하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이후 개인정보를 어떻게 처리하는지, 이를 유상으로 판매한다는 사실까지 고지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는 않다”고 설명했다.

이어 “홈플러스 측은 개인정보 보호법상 요구하고 있는 고지사항을 모두 기재하고 있다”며 “이런 사실을 기초로 볼 때 고객들도 자신들의 정보가 나중에 보험회사 영업에 사용될 것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제공에 동의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부 부장판사는 ‘동의 관련 부분의 글자를 1㎜ 크기로 인쇄해 사실상 고객들이 볼 수 없게 만들었다’는 검찰에 주장에 대해서도 인정하지 않았다. 글씨 크기가 1㎜(4포인트)로 작다는 점은 인정했지만 “복권 등 일반적인 응모권 글자크기도 비슷한 수준”이라며 홈플러스가 고객을 속이기 위해 글자를 줄인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홈플러스가 제대로 경품을 지급하지 않았다’는 검찰의 기소내용에 대해서도 부 부장판사는 “홈플러스는 경품행사를 실시하면서 경품의 가격과 발송 비용등도 모두 계산해 예산안을 짰고 직접 또는 대행사를 통해 당첨고객과 연락하려 애썼다”며 인정하지 않았다.

앞서, 홈플러스는 지난 2011년 12월부터 2014년 6월까지 11회에 걸쳐 진행된 경품행사에서 고객의 개인정보 약 700만건을 불법 수집하고 한 건당 1980원씩 7개 보험사에 모두 약 148억 원에 판매한 혐의로 기소됐다.

또 홈플러스 전·현직 보험서비스팀장 3명은 2011년 12월부터 2014년 8월까지 회원들의 사전 동의없이 보험사 2곳에 약 1694만건의 개인정보를 불법으로 제공하고 약 83억 5000만 원의 판매수익을 얻은 혐의로 기소됐다.

홈플러스가 33개월간 판매한 개인정보로 얻은 영업수익은 모두 231억 7000만 원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검찰은 도 사장에게는 징역 2년의 실형을, 홈플러스에는 벌금 7500만 원과 추징금 231억7000만 원을 구형했다.

2013년 이른바 ‘갑질논란’으로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남양유업의 홍 회장도 수십억대 탈세를 저지르고 차명주식을 보유한 혐의로 기소됐지만, 항소심에서 탈세 혐의가 무죄로 인정돼 벌금형으로 감형받았다.

홍 회장은 창업주이자 부친인 고(故) 홍두영 회장으로부터 받은 자기앞수표로 미술품을 구매하고 차명 주식을 거래하는 방법으로 증여세 26억 원과 양도소득세 6억 원, 상속세 41억 원 등 총 73억여 원의 세금을 포탈한 혐의로 지난 2014년 1월 불구속 기소됐다.

그러나 서울고법 형사7부(부장판사 김시철)는 지난달 13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조세)과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된 홍 회장에게 징역3년에 집행유예4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벌금 1억 원을 선고했다.

상속세와 증여세 등 조세 포탈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로 판단하고 차명 주식을 매매하는 과정에서 신고나 보고 의무를 지키지 않은 혐의만 유죄로 판단했다.

앞서 1심은 홍 회장이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은 수표 52억 원을 세무 당국에 신고하지 않고 증여세 26억 원을 포탈한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 벌금 20억 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홍 회장과 함께 기소된 김웅(63) 전 남양유업 대표에게도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의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 김 전 대표는 남양유업 퇴직자를 감사로 선임해 급여를 지급한 것으로 가장해 2005년 4월부터 2012년 12월까지 회삿돈 6억9000여만 원을 횡령한 혐의로 기소됐다.

무전유죄, 일반인 1억 횡령에 실형 선고

이처럼 회장님들에게 솜방망이 역할에 그친 ‘법’이 일반인들에게는 가혹한 잣대로 적용됐다.

이모(53) 씨는 지난해 7월 서울 강남의 한 백화점 주차장에서 60대 여성을 흉기로 위협해 돈을 빼앗으려다 몸싸움에서 밀리자 달아났다. 경찰에 붙잡혀 강도상해 혐의로 기소된 이씨는 지난해 11월 1심에서 징역 2년6개월을 선고 받고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이다.

경찰조사 결과 이씨는 건축 자재 업체를 운영하다 세월호 참사와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의 직격탄을 맞고 부도로 빚더미에 올라앉아 벌인 상황이었다. 당시 이씨의 80대 노모는 암투병 중이었고 두 자녀는 각각 고교 3학년, 1학년생이었다.

2008년 건설회사에서 2년 동안 일하면서 회사 돈 1억 원을 횡령한 경리 직원 A씨와 기금 2억여 원을 횡령한 직원 B씨는 각각 징역 8월, 1년6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같은 해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은 700억 원대 횡령과 1000억 원대 배임 혐의로 재판을 받았지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이 최종 선고됐다.

여기에 2013년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대표는 장애인 인권 보장 시위를 하다가 집시법위반과 일반교통방해죄로 약식기소돼 벌금 200만 원을 선고받았다. 그는 노역을 하기 위해 2014년 3월 서울구치소에 들어갔다.

박 씨가 벌금 200만 원을 충당하기 위해서는 40일의 노역이 필요했다. 휠체어에서 내려오면 움직일 수 없는 척수장애인이었던 박 대표는 바닥에 누울 수도 없고, 일반 화장실을 이용할 수도 없었다. 결국 그는 교도소 생활 닷새 만에 건강 악화로 노역을 중단했다. 남은 벌금은 시민들이 모아준 성금으로 냈다.

이같은 법의 잣대에 대해 전문가는 여전히 우리 사회에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존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양지민 변호사는 “주로 재벌이나 정치인들에 집행유예 판결이 나오며 같은 죄질이어도 일반인이라면 집행유예도 나오지 않는다”면서 “사면 역시 재벌 총수들은 실형 받아도 사면으로 나오지만 일반인이면 수감 중이어도 사면 대상에 고려조차 안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양 변호사는 “그래도 최근에는 최태원 SK그룹 회장, 이재현 CJ그룹 회장 등 실형 선고받는 경우도 있지만, 예전에는 무조건 집행유예 판결이 나오는 등 더 심했다”며 “과거에 비해 많이 투명해졌지만, 그럼에도 지금도 현실과 괴리가 있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져야 될 것이 많다”고 말했다.

담당업무 : 백화점·대형마트·홈쇼핑 등을 맡고 있습니다.
좌우명 :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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