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과 ‘옛날 정치’ 선택한 더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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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과 ‘옛날 정치’ 선택한 더민주
  • 정진호 기자
  • 승인 2016.03.01 12: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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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총선 앞에 무너진 시스템 공천, 퇴보한 더민주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 뉴시스

<아웃라이어>로 유명한 작가 말콤 글래드웰은 조직에 대한 신뢰가 예측 가능성·공정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선한 행동을 하면 상을 받고 악한 행동을 하면 벌을 받는다는 기대가 충족될 때, 동일한 행위를 했을 때 동일한 보상이 찾아온다는 믿음이 실현될 때 조직원은 조직에 신뢰를 갖게 되고, 그 조직은 한층 발전한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예측 가능성과 공정성은 ‘시스템’과 큰 연관성을 지닙니다. 시스템이 정교하게 조직되고 정상적으로 작동하면 자의성은 약화되고 예측 가능성과 공정성은 높아지기 마련이지요. 권력자에 의한 자의적 지배보다 법치주의가 높은 신뢰성을 갖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입니다.

지난달 29일 더불어민주당은 당무위원회를 열고 선거 관련 권한을 비상대책위원회에 일임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경선 일정 단축, 야권 분열로 인한 비례대표 의석 축소 등 야권에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는 외부 환경에 신속히 대처하기 위한 방안이라는 설명이 따릅니다.

그러나 ‘총선 패배’의 공포 앞에, 더민주가 지금까지 쌓아온 혁신의 산물을 내팽개치고 과거로 회귀했다는 인상을 지우기는 어렵습니다. 우선 김종인 비대위 대표에게 전권을 위임함으로써, 더민주당은 예측 불가능한 정당이 됐습니다. ‘선거 패배’의 위기가 다가오면 정당한 절차를 거쳐 만들어진 당헌·당규마저 사문화시키고, 당대표 한 사람에게 권한이 집중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당원들이 과연 당에 신뢰를 보낼 수 있을까요? ‘비상사태’라는 한마디에 시스템이 무력화되는 것을 목도한 국민들이 과연 더민주당을 믿을 수 있을까요?

최소한의 공정성도 무너질 우려가 커졌습니다. 시스템은 곧 ‘기준’입니다. 유·불리는 있을지언정, 알 수 없는 이유로 손해를 보지는 않는다는 믿음과 연결됩니다. 하지만 이제 공천은 김 대표 한 사람의 ‘정무적 판단’에 의존하게 됐습니다. 공천 과정에서 당대표의 자의성이 확대되면 ‘모두가 인정할 만한’ 공천은 이뤄지기 어렵습니다. 승자의 머리에도 패자의 가슴에도 불신만 남게 되지요. 조직의 발전이 예측 가능성·공정성의 확대와 걸음을 맞춘다는 글래드웰의 주장대로라면, 김 대표가 더민주당을 ‘퇴보’시키고 있는 셈입니다.

정당은 정치적인 주의나 주장이 같은 사람들이 정권을 잡고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결성한 조직입니다. 때문에 총선 승리는 정당에게 제일 목표일 수밖에 없습니다. 더민주당이 현 상황에 위기의식을 느끼고 ‘긴급 조치’를 취한 데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 조치가 당대표 한 사람에게 권한을 몰아주는 식의, 과거로 회귀하는 형태라는 점은 매우 안타깝습니다. 눈앞의 승리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당원이 당에 갖는 믿음, 국민들이 공당에 보내는 신뢰라고 생각하는 까닭입니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효율과 성과가 아니라 과정의 투명함으로 말하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퇴근 후 친구와 소주 한 잔을 기울이다가 우연히 듣게 된 옆 자리 손님의 말이 귓가를 맴돕니다.

“민주주의 민주주의 하더니 선거 질 것 같으니까 야당도 옛날 정치로 돌아가는구만.”

담당업무 : 국회 및 국민의힘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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