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와 박종환]기적을 만든 지도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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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와 박종환]기적을 만든 지도자들
  • 정진호 기자
  • 승인 2016.03.13 12: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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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로 풀어본 정치인(12)>‘한강의 기적’ 박정희와 ‘붉은 악마’ 박종환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정치는 축구와 비슷하다. 정해진 규칙 안에서 겨뤄야 하고, 승자와 패자도 생긴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가장 비슷한 점은, ‘사람’의 게임이라는 점이다. 축구 팬들은 잔디 위에서 뛰는 ‘사람’에게 멋진 플레이를 기대하고, 국민들은 정치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희망을 투영하고 미래를 건다. 다른 듯 닮은 정치계와 축구계의 ‘사람’을 비교해 본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박종환 전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은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든 지도자들이다. 박 전 대통령은 세계가 놀란 ‘한강의 기적’을 이룩했고, 박 전 감독은 세계 청소년 축구선수권대회 4강, K리그 3연패 등의 업적으로 한국 축구 감독들의 ‘롤 모델’이 됐다. 여전히 그들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도 공통점이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성과를 내기 위해 구성원들의 자유를 억압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 박정희 전 대통령(오른쪽)과 김영삼 전 대통령 ⓒ 뉴시스

기적을 만들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으로 갈리지만, 전후 폐허가 됐던 대한민국이 1인당 GDP 2만 불 국가가 되는 데 큰 역할을 담당했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재임 기간 동안 경부고속국도 건설, 중화학공업 우선 육성, 저축 장려, 새마을 운동 등 인프라 구축에 집중하면서 급속한 경제 발전을 이룩한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또 국민건강보험 도입, 그린벨트 설정 등 진보적인 정책을 펴면서 현대 대한민국의 토대를 닦아놓기도 했다.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이 시기의 고도성장은 지도자의 정확한 방향 설정과 국민들의 성실한 노력이 결합돼 만들어진 성공적인 케이스로 꼽힌다. 이러다 보니 여전히 박 전 대통령을 추종하는 사람들도 많다. ‘대한민국 국민이 가장 존경하는 지도자’를 묻는 조사에서 매년 압도적인 차이로 1위를 차지하고,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조차 “박 전 대통령에 대해 이렇고 저렇고 말이 많지만, 우리가 현실적으로 볼 때 그분이 산업화를 성공적으로 이끈 공로만큼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고 평가할 정도다.

박 전 감독 또한 2002년 거스 히딩크 감독이 ‘4강 신화’를 만들기 전까지 대한민국 축구 지도자의 ‘롤 모델’로 꼽혔다. 기술보다는 활동량에 초점을 맞추고, 훈련 과정에서도 체력 단련에 집중하는 ‘벌떼 축구’는 한동안 우리 축구계를 지배한 패러다임이었다.

이른바 ‘박종환식 축구’로 불렸던 이 방식으로 박 전 감독은 대한민국을 1983년 멕시코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대회 4강에 올려놓았고, 일화 천마(現 성남 FC) 창단 감독으로 부임해 정규리그 3연패를 달성하는 대기록을 작성했다. 1996년에는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임명, AFC 아시안컵을 지휘하기도 했다. 비록 아시안컵 8강전에서 이란에게 2-6으로 대패하며 지휘봉을 놓아야 했으나, 대표팀이 위기에 빠질 때마다 “우리나라는 박종환식 축구가 아니면 안 돼”라는 말이 나올 만큼 박 전 감독이 거둔 성과는 컸다. 

▲ 박종환 전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 ⓒ 뉴시스

성공 이면에 숨겨진 그림자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의 성공 뒤에는 그림자도 있었다. ‘국가를 위해’라는 미명하에 국민의 희생을 요구했고, 노동 운동을 억압했으며, 대기업 중심의 경제 정책을 펴면서 중소기업과의 성장 불균형을 야기한 면이 있기 때문이다. 성장 동력 상실로 장기 경제 침체에 빠진 지금, 박 전 대통령이 설계해 놓은 경제 체제 자체가 위기 극복의 장애가 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성과를 내기 위해 민주주의를 탄압했다는 과(過)도 있다. 5·16 군사 정변으로 정권을 잡아 정통성이 약했던 까닭에 야당을 강하게 억누를 수밖에 없었고, 10월 유신으로 헌정을 파괴했다. 박 전 대통령과 맞서 싸운 ‘민주화 투사’였던 故 김영삼 전 대통령은 “쿠데타로 집권한 사람을 바로 볼 수는 없다. 누가 뭐래도 중앙정보부를 앞세워 바로 살자고 하는 사람들을 숨 못 쉬게 했다. 미화가 심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박 전 감독 역시 성적지상주의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성적을 내기 위해 선수들에게 무조건적 복종을 강요하는 권위주의적 지도자였고, 훈련 방식도 강압적인 스파르타식이었다. ‘박종환식 축구’는 곧 군대 문화를 축구팀에 도입한 것이었으므로, 구타와 폭언을 동원하는 등 ‘구시대적’ 팀 운영으로 논란을 낳기도 했다.

박 전 감독이 지휘봉을 놓아야 했던 이유도 ‘비민주적’ 운영 방식 때문이었다. 1984년 LA 올림픽 축구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을 때는 박 전 감독의 지도 방식에 반발한 선수들이 태릉선수촌을 이탈하는 촌극이 벌어졌고, 1996년 AFC 아시안컵 8강전에서 이란에게 2-6으로 대패할 당시 축구계에서는 ‘박종환 감독의 스파르타식 훈련에 불만을 품은 선수들이 태업을 했다’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2014년에는 자신과 ‘영광의 시대’를 함께 했던 성남 FC의 감독으로 복귀했으나, 선수 폭행 사건에 연루돼 불과 4개월 만에 물러나기도 했다. 당시 박 전 감독은 해당 선수에게 ‘꿀밤’을 먹였다고 주장했지만 해당 선수와 목격자들은 손바닥으로 뺨을 맞았다고 진술해 논란이 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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