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박근홍 기자)
"짝퉁 찾으세요?"
지난 주말 서울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앞 상가 피혁·액세서리 매장이 운집한 층에 기자가 들어서자 몇몇 상인들이 호객 행위를 하며 귀엣말로 속삭인다. 그들은 국내 소비자, 중국인·일본인 관광객 가릴 것 없이 다가가 짝퉁 구매를 부추겼다.
기자가 특정 브랜드를 거론하면서 구매 의사를 밝히자 한 상인이 자신을 따라오라며 매장으로 인도했다. 2평 남짓으로 보이는 가게 외부와는 달리 '비밀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넓은 공간에 가방들이 빼곡하게 진열돼 있었다. 모두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명품이었다.
"신상 찾으시죠? 카탈로그 보여드릴게요"
상인은 이번에 신상품이 많이 나왔다며 기자에게 시계, 가방 등 사진이 가득 나열된 잡지를 3권 정도 갖다 줬다. 'H르메스', 'S넬', 'L이비통' 등 명품 브랜드 제품이었다.
'H르메스' 가방을 지목하자 그는 잠시만 기다리라면서 매장 밖으로 나갔다. 10분 정도 지났을까, 상인은 커다란 검정색 비닐봉투를 들고 다시 '비밀의 문' 안으로 들어왔다.
상인은 동대문 짝퉁 시장에는 짝퉁 제품을 제작해 판매하는 거대 도매상이 3~4군데 된다고 했다. 그중에 가장 진짜와 비슷하게 만드는 곳에서 떼온 물건이라면서 비닐봉투를 건넸다. 포장지를 열어 제품을 살펴보니 가죽 상태도 진품 못지않았고, 보증서까지 들어있었다. 위조 보증서였다.
브랜드명이 전면에 안 쓰여 있는 것 같다고 기자가 묻자 상인은 "단속이 수시로 나와서 눈에 띄기 쉬운 제품은 일부러 떼서 다른 곳에 둔다"며 브랜드명이 적힌 가방 자물쇠, 열쇠 등이 숨겨진 서랍을 열어 보여줬다. 그는 "단속 나오는 공무원, 경찰 등은 보통 매장 겉만 보고 지나간다"고 말했다.
"현금 결제하시면 싸게 드리죠"
상인은 60~70만 원을 불렀다. 너무 비싸다고 흥정하니 50만 원대 후반을 언급했다. 전액 현금으로 결제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가격은 40만 원대까지 떨어졌다. 그래도 '세다'고 한 번 더 튕기니까 상인은 가방에 다는 액세서리를 꺼낸다. 같은 브랜드 제품이었다. 더 깎지 않는 대신 40만 원대에 가방과 액세서리를 가져가라고 했다.
시중에서 1000~2000만 원을 호가하는 'H르메스' 명품 가방. 동대문 짝퉁 시장에서는 액세서리까지 합쳐 단돈 46만 원이었다. 도매 원가는 20~30만 원대라고 한다.
짝퉁 판매량, 4년 동안 776억
동대문 짝퉁 시장이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 <시사오늘>은 지난달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서울특별시청, 서울 중구청, 서울 중구경찰서에 '동대문 위조상품 단속·적발 현황'을 문의했다.
이에 따르면, '연도별 동대문관광특구·남대문시장·명동 등지 위조상품 판매 적발건수'는 2013년 177건, 2014년 449건, 2015년 475건으로 집계됐다. 그리고 2016년에는 지난 2월까지만 94건으로 집계됐다. 점차 늘고 있는 것이다.
지역별 현황을 살펴보면 동대문 짝퉁 시장이 활개를 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2013년 56.5%에 불과했던 '전체 적발건수 중 동대문관광특구 위조상품 판매 적발건수가 차지한 비중'은, 2014년 63.5%, 2015년 79.4%로 크게 증가했다. 2016년(2월 기준)에는 88.3%를 기록했다.
정품시가로 환산하면 2013~2016년 2월까지 무려 775억 6100만 원어치의 짝퉁 제품이 판매된 것이다.
이에 대해 동대문 상가의 한 상인은 지난 25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경기는 어려운데 사치는 부리고 싶은 사람들이 최근 많이 찾는 것으로 보인다"며 "한국산 짝퉁 제품을 찾는 중국·일본 관광객도 증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엉터리' 단속 활동, 대책 마련 시급
하지만 관계 당국의 단속은 미흡한 것으로 보인다.
우선 단속이 일원화돼 있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본지의 취재 결과 서울시청, 중구청, 중구경찰서는 제각각 단속 활동을 벌이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관련 통계 자료도 통일되지 않았다. 시청에서 보유한 현황과 구청이 가지고 있는 현황이 서로 달랐다. 중구 경찰서는 아예 관련 통계를 집계조차 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대해 중구 경찰서의 한 관계자는 지난달 기자와 한 통화에서 "검찰에 바로 넘기기 때문에 단속·적발 현황을 경찰서에서 따로 갖고 있는 게 없다"며 시·구청과의 단속·적발 협력에 대해서도 "구청과는 별개로 움직인다"고 밝혔다.
또한 단속 활동도 엉터리라는 지적이다. 대책 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25일과 27일 기자와 만난 복수의 동대문 상인들은 관계 당국의 단속 일정을 사전에 파악하고 있다고 증언했다. 공무원·경찰과 가까운 몇몇 상인들이 이를 단속 전에 입수해 주변에 알리고 있다는 것이다.
한 상인은 "단속이 나오기 전에 미리 물건을 빼면 된다. 그리고 단속 나오는 공무원, 경찰들은 보통 매장 겉만 보고 지나간다"며 "재수가 더럽게 없어야 걸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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