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는 정말 다당제를 원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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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는 정말 다당제를 원하나
  • 정진호 기자
  • 승인 2016.03.31 17: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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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호남에서만 이기면 된다는 선거 전략 '의구심'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 김성식 후보 지원에 나선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 뉴시스

2012년 9월 19일. 서울 충정로 구세군아트홀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저에게 주어진 시대의 숙제를 감당하려고 한다”며 제18대 대통령 선거 출마 선언을 하던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의 모습을 기억합니다. 당시 대학생이던 저는 안 대표의 출마 선언 기자회견을 보면서 알 수 없는 기대감을 느꼈습니다. 마치 하늘이 한국 정치에 ‘구세주’를 보낸 듯한 느낌까지 받았지요.

그러나 현실과 이상은 달랐습니다. 안풍(安風)을 타고 대통령이 되고, 일거에 한국 정치를 바꿔놓을 것 같았던 안 대표는 대통령 후보 자리 양보와 새정치민주연합 내부에서의 세력 다툼, 탈당과 창당 등 숱한 고난과 역경을 거치며 ‘현실 정치인 안철수’가 됐습니다. 그리고 ‘현실 정치인 안철수’는 제20대 총선을 앞두고 ‘다당제’라는 카드를 꺼내들며 다시 한 번 ‘이상을 현실화하는’ 도전에 나섰습니다.

지금까지 진행된 과정을 보면, 안 대표가 현실의 바탕 위에서 이상을 조화시키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읽힙니다. 과거와 달리 그는 거대 여당이 탄탄한 지역 기반을 갖췄다는 ‘현실’을 인지하고, 국민의당 역시 지역 기반 없이는 유의미한 대안 세력이 될 수 없음을 깨달은 것 같습니다. 안 대표가 창당 직후부터 지속적으로 호남에 러브콜을 보내면서 박지원 의원, 천정배 의원, 정동영 전 장관 등 호남의 거물급 정치인 영입을 위해 노력한 것은 탄탄한 지지 기반을 만들기 위한 사전작업이었지요.

안 대표는 가치나 철학과 같은 ‘뜬구름 잡는’ 소리를 내세우는 대신, 현실과 타협해 지역주의에 기대는 쪽을 택했습니다. 거대 양당과 싸우기 위해서는, 거대 양당과 마찬가지로 ‘확실한 우리 편’을 만들 필요가 있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이 바탕 위에서 제3당을 건설,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의 견제 세력이 되겠다는 것이 안 대표의 구상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대목에서 한 가지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왜 하필 호남이었을까요? 안 대표가 다당제를 이상적인 체제로 생각했다면, 국민의당의 타깃은 호남이 아니어야 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으로부터 호남을 빼앗는다면 그것은 다당제가 아니라 양당제 내에서 호남의 주인만 국민의당으로 바뀌는 꼴이 되기 때문입니다. 지금처럼 ‘호남만을 노리는’ 행보는 다당제 수립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지요.

안 대표가 원하는 바가 ‘다당제의 일원’이 아니라 ‘양당제에서 제1야당이 되는 것’이라는 의심이 끊임없이 나오는 것도 이런 배경입니다. 다당제를 원했다면 필연적으로 동반됐어야 할 요건이 충족되지 않은 상황에서, ‘호남에서만 이기면 된다’는 식의 선거 전략이 펼쳐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국민의당이 호남의 패권을 장악한다고 해도 그것이 다당제로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당의 얼굴이 바뀐 또 다른 호남 중심의 거대 야당이 탄생할 뿐이지요.

뒤베르제의 법칙에 따르면, 소선거구제는 제도 자체의 특성과 유권자의 심리적 요인에 의해 양당제로 귀결되는 경향이 강합니다. 여기에 안 대표는 더불어민주당의 지역 기반인 호남을 집중 공략, 호남을 대표하는 새로운 정당으로 자리 잡는 쪽을 택했습니다. 과연 안 대표는 진정으로 다당제를 원하고 있는 것일까요? 대통령 선거 출마 기자회견만으로 제 마음을 떨리게 했던 안 대표의 진심이 궁금해지는 요즘입니다.

담당업무 : 국회 및 국민의힘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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