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범의 시네 리플릿> 〈해어화〉, 조선의 마음이 아닌 여인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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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범의 시네 리플릿> 〈해어화〉, 조선의 마음이 아닌 여인의 마음
  • 김기범 영화평론가
  • 승인 2016.04.08 09: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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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장센에 얹어진 시대 멜로극의 전형성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김기범 영화평론가) 

▲ 영화 <해어화> 포스터 ⓒ롯데엔터테인먼트

롭 마샬의 2005년 작 <게이샤의 추억> 은 일본 게이샤의 세계를 배경으로, 한 여인의 꿈과 사랑을 나름의 색채로 그려낸 바 있다. 

그러나 아시아의 특정 사회와 여성을 소재로 제작된 이 헐리우드 영화는 중국 여배우가 영어 대사를 쓰며 일본 게이샤 배역을 맡는 허점투성이로부터 시작해, 결국 푸치니의 <나비부인> 처럼 서구인들의 편협한 오리엔탈리즘 판타지라는 시각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게이샤의 추억> 은 게이샤라는 일국가의 특정 문화에 대한 소개와 엿봄은 잊지 않았다. 

일본의 게이샤에 비견될 수 있는 우리의 기생이란 직업은 그 지난한 역사만큼이나 시대상을 막론하고 존귀한 지체나 사회적 위상과는 분명한 거리가 있었다. 

따라서 이들을 다루었던 기존의 드라마나 영화 등에선 여인들의 삶 속 한을 기본 서사로, 그 속에서 피어나는 남과 여의 애절한 사랑을 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영화 <해어화> 역시 그러한 기생과 주변 인물들과의 사랑을 기본 소재로 하지만, 시대적 소용돌이 속의 남녀 간의 사랑과 우정, 그리고 훗날 주인공의 회한이 이야기의 중심이라는 점에서 단순히 특정 직업이 주는 애환과 비애에서 오는 서정의 묘사와는 확연한 괴리감이 있다. 

1940년대 일제강점기의 권번에서 어릴 때부터 친자매처럼 같이 자란 두 기생의 이야기는 의상과 소품 등의 디테일한 고증과 유려한 영상, 그리고 감각적 선율의 배경 음악을 토대로 한편의 소설처럼 잘 묶여진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해어화> 는 전통과 신문물의 맞물림 사이에 서 있는 기생이 예인으로, 예인이 여인으로 변화하는 과정과 그 속에서 갈등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지만, 엄밀히 따져 여느 양가집 규수들 사이에 일어날 수 있는 통속적 멜로 장르의 수준을 벗어나질 못한다. 

제목이 은유하는 기생이나 권번의 세계는 다만 그 멜로를 서사하기 위한 기본 무대일 뿐이다. 

전통문화를 계승하는 예인이나 신문물로 대표되는 전통가요의 이면은 특정 직업의 정서와 고단함을 보여주기 보다는, 해방 직전이라는 시대적 배경 속에 멜로의 전형적 공식을 그대로 얹어가는 보조 장치에 불과하다. 

오히려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의 아픔 속에 나타날 수 있는 예술가들의 고뇌나 예술혼은 어설프고 미진한 채 그저 화려한 미장센의 옷을 입혀 삼각관계의 감성 멜로를 포장하려 했을 뿐이다.

문제는 주인공인 한효주가 맡은 배역이다. 

나레이션과 서사 구조의 중심으로서 사랑에 배신감을 느끼고 친구와 연인에 대한 복수의 화신이 되는 팜므 파탈로 흑화하나, 결국 자기 번민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확실한 악역의 문턱에서 서성거린다. 

물론 그 자체가 한효주 특유의 여린 캐릭터가 특화된 심리적 갈등일 수는 있겠으나, 배역에 대한 관객들의 몰입과 동질감을 불러일으키기에는 신선함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다. 

한 여자에 대한 마음이 사랑인줄 알았지만, 결국 새로운 여자로 다시 옮겨지는 유연석의 연정은 알고 보면 여성들로부터 폄하 받는 뭇 사내들의 천편일률적인 사랑과 별 차이가 없어 깊은 공감대를 형성하기 힘들다. 

이에 비해, 영화 전반의 실질적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천우희의 연기력은 왜 그녀가 충무로의 떠오르는 신예라는 찬사를 받는 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영화의 OST 로 천우희와 어우러지는 ‘조선의 마음’ 은 분명 그녀의 노래이다. 

차라리 현란한 배경 음악들 속에 재능에 대한 질시와 갈증을 공감으로 이끌어 나갔던 <아마데우스> 의 살리에르의 심리 구조, 그리고 격동기의 근대 중국에서 경극의 화려한 무대를 수놓았던 <패왕별희> 가 보여준 애증의 삼각관계가 애당초 <해어화> 가 지향했어야 할 목표점이 아니었을까 싶다. 

무엇보다 시간의 흐름을 타고 과거와 현대(정확히는 90년대) 를 순식간에 오가는 화면 구성은 그나마 이 멜로물이 내어줄 수 있는 한정된 여운조차 방해하는 느낌이다. 

어찌 보면 장대한 서사 구조의 TV 용 아침 드라마에서 흔히 보는듯한 시대 멜로극을 두 시간짜리 영화로 압축시키려 한 결과일 수도 있다. 

여기에 (보는 이들은 실소를 금할 수 없을지도 모를) 누가 봐도 젊은 여자의 몸매와 얼굴을 그대로 유지한 한효주의 노인 모습이 상징하듯, 50여 년이 지나고도 여전히 옛 친구와 첫사랑에 대한 회한의 염속에 사는 듯한 주인공에 대한 논리적 설명의 희구는 관객들의 사치스런 요구 사항일지도 모르겠다. 

전작 <협녀> 에서와 마찬가지로 색채와 의상에 천착하는 감독의 미장센에 대한 욕구는 계속된다. 그러나 화면의 주인공이 되어야 할 서사의 부재라는, 전작의 패착을 딛고 일어서야 할 감독의 과제는 여전히 존속될 듯싶다. 

다만, 이번 영화에선 그 안타까움을 일부 상쇄시킬 만큼의 이야기 보강은 확실하다는 데에 만족해야 할 듯하다. 

극 중에 굳이 ‘협녀론’ 을 친절히 설파했던 감독의 전작처럼, 관객들에게 ‘기생론’ 에 대한 강론도 잊지 않는 <해어화> 는 고증에 충실한 특정 시대의 의상과 소품만큼 결국 시대의 한 장에 걸맞는 통속적 멜로를 충실히 구현했을 뿐이다. 

<해어화> 는 4월 13일에 개봉한다. 

★★☆

 

·영화 저널리스트
·한양대학교 연구원 및 연구교수 역임
·한양대학교, 서원대학교 등 강사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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