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상품 '우선판매권' 지난해 0건…'유명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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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상품 '우선판매권' 지난해 0건…'유명무실'
  • 박시형 기자
  • 승인 2016.04.12 08: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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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적 구속력 없는 자율협약에 불과…회원 은행 '눈치보기'에 제대로 심사도 안 돼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박시형 기자)

신상품을 독점 판매할 수 있도록 하는 '우선판매권' 제도가 은행권에서는 유명무실한 것으로 나타났다.

12일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우선판매권을 획득한 상품은 지난 2001년 제도 도입 이후 2006년까지 불과 7건에 그쳤다.

특히 핀테크가 접목돼 기발한 상품들이 출시된 2014년과 2015년에는 신청조차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보험업권에서 우선판매권을 획득하기 위해 재수, 삼수하면서 최근까지 130여 건의 신청을 해온 것과 크게 대비된다.

우선판매권은 지난 2001년 금융 신상품 개발 촉진 등을 위해 독창성있는 금융 신상품을 보호하기 위해 도입한 제도다.

업권별 금융협회의 심위위원회에서 독창성 정도에 따라 최대 6개월간 판매 보호를 받을 수 있다. 누군가가 상품을 비슷하게 만들어 판매할 경우 이에 대한 판매중지를 요청할 수 있다.

은행 입장에서는 독창적인 상품을 일정기간이나마 보호할 수 있고, 이를 통해 고객을 끌어들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 은행권에서 '우선판매권' 신청이 최근 단 한 건도 이뤄지지 않아 유명무실한 제도라는 지적이 나온다. ⓒ뉴시스

그럼에도 은행들은 '우선판매권' 신청을 포기했다.

새로운 상품을 개발하더라도 내용을 조금만 고치면 다른 상품으로 간주돼 보호받을 수 없고, 이 마저도 자율규제에 그쳐 법적 효력이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A은행이 상품 3개를 가입해 5%의 이자를 주는 걸로 우선판매권을 획득했다고 가정했을 때 B은행이 4개의 상품으로 6%의 이자를 지급하면 다른 상품으로 간주하는 식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예대금리차 등 마진이 고정된 은행업계 특성상 상품도 새로울 것이 없는 것이 사실"이라며 "관련 상품의 독창성을 평가하는 과정에 협회의 주관이 개입돼 허가 받기도 까다롭다"고 말했다.

선발기관인 은행연합회가 '우선판매권'을 제대로 심사할 수 없어 유명무실해졌다는 주장도 있다.

은행연합회는 각 은행으로부터 회비를 받아 운영되는데 우선판매권으로 인해 회원사간 분쟁이 벌어질 경우 책임을 피하기 어려워 처음부터 허가를 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시중은행의 경우 우선판매권을 획득하기 위해 수차례 은행연합회의 문을 두드렸으나 결과는 썩 좋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제도 무용론도 제기된다.

또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우선판매권은 3개월에서 6개월 간 영업을 보호해주는 제도인데 사실 다른 은행에서 상품 출시를 위해 약관 심사·개정을 하는 시간과 비슷하다"며 "완전히 동일한 상품을 내놓더라도 보호 기간이 짧아 사실상 혜택을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우선판매권 제도를 인지하지 못한 곳도 있었다.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실무 부서에서는 이런 제도가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며 "이런 제도가 있었는데 왜 활용이 안됐는지 모르겠다"고 전했다.

여러가지 이유로 은행권에서는 상품 보호 대신 한 곳에서 상품을 출시하면 다른 은행도 비슷한 상품을 잇따라 출시하는 '미투'전략이 관행처럼 이어지고 있다.

최근 신한은행이 SK텔레콤과 전략적 제휴를 맺고 적금상품을 가입하면 모바일 데이터를 제공하는 상품을 출시하자 KB국민은행이 LG유플러스 데이터를 주는 비슷한 상품을 내놨다.

지난해 8월에는 KB국민은행이 '황금알'이라는 이름으로 풍차돌리기 상품을 출시하자 우리은행이 뒤따라 같은 구조의 상품을 출시했다.

우리은행의 모바일전문은행인 위비뱅크와 신한은행의 '써니뱅크'도 주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언젠가부터 구속력도 없는 우선판매권보다 특허청에 BM특허(Business Model Patent)를 내는 경우가 많아졌다"며 "지난해에도 은행들이 여러 건의 BM특허 신청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말했다.

담당업무 : 시중은행 및 금융지주, 카드사를 담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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