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 개정 논란과 공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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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법 개정 논란과 공정성
  • 정진호 기자
  • 승인 2016.04.27 10: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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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박 대통령의 김영란법 개정 요구가 실망스러운 이유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 박근혜 대통령 ⓒ 뉴시스

“부정청탁 금지법(김영란법)이 우리 경제를 너무 위축시키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속으로 많이 했다. 위헌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걱정스럽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6일 청와대에서 열린 언론사 편집·보도국장 간담회에서 한 말입니다. 공직자와 언론인, 사립학교 교원 등이 직무 연관성과 상관없이 100만 원 이상 금품을 받으면 형사 처벌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김영란법이 내수를 위축시킬 우려가 있으므로, 국회 차원에서 다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인데요. 이 발언이 보도되자, 누리꾼들은 ‘이게 무슨 논리냐’며 펄쩍 뛰었고,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올바른 접근 방법이 아니다”라며 일갈했습니다.

저 역시 박 대통령의 발언이 두 가지 측면에서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원칙적인 측면입니다. 세상에는 어떤 결과를 가져오느냐를 떠나, 행위 자체의 옳고 그름을 따져봐야 하는 절대명제들이 있습니다. ‘너희가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크리스트교의 황금률이나 ‘산목숨을 죽이지 말라’는 불교의 가르침 등이 그렇습니다.

저는 부정부패 척결 역시 공정성이 전제돼야 하는 현대 사회의 ‘황금률’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설사 부정부패가 이로운 결과를 낳는다 해도, 절대 타협 가능한 범위가 아니라고 믿습니다. 안 대표의 말대로 ‘원칙적인 부분’에서 판단해야 하는 문제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한 나라를, 특히 공정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하고 깨끗한 자본주의 체제를 추구하는 국가의 지도자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부정부패는 경제 논리와 연관시켜 유불리를 따질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물론 김영란법은 위헌 소지가 있고, 사법부를 비대화할 가능성도 존재합니다.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결정을 내리면 개정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다만 이는 법리적인 차원에서 논의돼야지, 경제적인 논리로 따져서는 안 됩니다. ‘경제 위축을 떠나서, 위헌이냐 아니냐’의 기준으로 판정해야 할 부분이지요.

경제학적 측면에서도 박 대통령의 발언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부정부패는 거래 과정을 불투명하게 만듦으로써 의사결정을 왜곡시키는 중대한 문제가 있습니다. 즉, 정상적인 시장경제질서를 붕괴시키기 때문에 효율성이 낮은 기업에게 특혜가 돌아갈 확률이 생기고, 이는 사회 전체적인 효용의 감소로 이어집니다. 사회 전체의 효용을 감소시키는 대신 개별 기업의 이윤만을 늘어나게 하는 원흉이 부정부패인 셈입니다.

또 ‘어두운’ 곳에서 ‘불투명한’ 방식으로 의사결정이 이뤄지게 하는 부정부패는 경제 활동에 참여하는 주체들의 시스템 신뢰도를 하락시킵니다. 이른바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킨다는 뜻이지요. 서로를 믿고 시스템을 따르면 지불하지 않아도 되는 ‘불신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커진다는 것은 그만큼 사회 전체적으로 낭비되는 비용이 크다는 뜻입니다. 부정부패에서 파생되는 미시적인 경제 효과가 아쉬워서 이를 용인한다면, 장기적으로 우리 경제는 더 큰 부담을 질 수밖에 없습니다. 부정부패 일소(一掃)를 통해 사회적 비용을 감소시켜야만 투명한 의사 결정이 가능해지고, 장기적으로 사회 전체적인 효용의 증대를 꾀할 수 있습니다.

부정청탁 금지법은 당장의 경제를 위축시킬지언정 다음 세대를 보다 정의롭고 투명한 사회에서 살 수 있게 합니다. 2년 전 박 대통령이 “정부가 제출한 일명 김영란법으로 불리는 부정청탁금지법안이 국회에 제출돼 있다. 국회의 조속한 통과를 부탁드린다”고 밝혔을 때 제가 쌍수를 들고 환영했던 이유입니다. 그러나 어제, 박 대통령은 2년 전 자신이 했던 말을 스스로 뒤집었습니다. 아마도 회복될 기미 없이 침체되기만 하는 경제 상황을 걱정한 특단의 조치였을 테지만, 실망스러운 것도 사실입니다. 당장의 경제 효과를 위해 다음 세대에게 사회적 비용을 떠넘기는 선택이나 다름없는 까닭입니다.

영국의 경제학자 콜린 클라크는 “정치인은 다음 세대를 생각하고 정치꾼은 다음 선거만을 준비한다”고 말했습니다. 모든 것이 혼란스러운 현재 상황에서 정치인들의 판단 기준이 돼야 하는 것은 단 하나, ‘다음 세대의 행복’이 아닐까요. 다음 세대를 생각하는 박 대통령의 신중한 결정을 기대해봅니다.

담당업무 : 국회 및 국민의힘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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