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시간 단축,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정부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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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시간 단축,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정부여당
  • 정진호 기자
  • 승인 2016.05.02 16: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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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68시간이 52시간으로?…국민 앞에 솔직한 자세 보여야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 근로시간 단축을 홍보하는 고용노동부 ⓒ 고용노동부 공식 블로그

“근로기준법 개정을 통한 근로시간 단축으로 기존 근로자의 고용안정은 물론, 청년들을 위한 새로운 일자리 창출도 가능해질 수 있다.”

새누리당 이장우 대변인은 지난달 26일 브리핑을 통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실제로 새누리당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보면 근로시간을 줄이는 취지의 조항이 들어있고, 고용노동부는 노동법 개정안이 주당 68시간이었던 근로시간을 주당 52시간으로 대폭 단축한다고 홍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현행법상 우리나라의 주당 근로시간이 정말 68시간일까요? 68시간을 52시간으로 줄인다는데 반발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일까요?

근로기준법 제50조를 보면, 1주 간의 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고 규정돼 있습니다. 제53조에는 당사자 간의 합의가 있을 경우 1주 간에 최대 12시간 연장근로를 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1주일 기본 40시간에 연장 12시간 총 52시간이 최대 근로시간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68시간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요? 지난 2000년 노동부는 “‘1주일에 12시간을 한도로 제49조(현재 제50조)의 근로시간을 연장할 수 있다’는 규정에서의 연장근로시간에는 휴일근로시간이 포함되지 아니한다‘는 행정해석을 내놨습니다. 이로 인해 5일 동안 52시간의 근로가 가능해졌고, 휴일근로는 따로 계산돼 토요일 8시간과 일요일 8시간 총 16시간 추가근로시간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이 행정해석은 판결 당시부터 계속 문제가 됐습니다. 국정감사에서 여러 차례 지적 대상이 됐고, 각종 소송도 잇따랐습니다. 이미 지방법원과 고등법원에서는 노동부의 행정해석을 기각했으며 대법원전원합의체 역시 경제·사회적 파장 등을 우려해 노사정의 타협을 기다리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노동법 개정 없이 대법원이 잘못된 행정해석만 바로잡아도 주당 68시간이었던 근로시간은 52시간으로 줄어들게 돼있었습니다. 근로기준법을 개정해서 근로시간을 주당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이겠다는 말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오히려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근로시간 단축을 미루는 법안에 가깝습니다. 정부여당은 개정안에 주당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하되, 기업 규모에 따라 2023년까지는 노사 합의 시 휴일에 한해 8시간 특별연장근로를 허용한다고 명시해 뒀습니다. 행정해석 폐기 시 16시간 단축되는 근로시간이 정부여당의 안에 따를 경우 8시간만 줄어들게 되는 것입니다. 68시간으로 통용되고 있는 주당 근로시간이 갑작스럽게 16시간 줄어들면 기업의 피해가 클 수밖에 없으므로 유예기간을 두자는 의도입니다. 전체적인 맥락을 보면,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근로시간을 대폭 단축하겠다는 정부여당의 주장은 사실과 거리가 있습니다.

물론 국가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큰 폭의 근로시간 단축은 부담스러울 수 있습니다. 지금처럼 경기가 침체된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건 잘못된 행정해석으로 근로자들에게 피해를 입히고 이제야 바로잡는 상황이 됐다면, 국민 앞에 솔직히 사과하고 양해를 구하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요? 지금처럼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으로 넘어가려고만 한다면, 정부여당이 원하는 노동법 개정은 요원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담당업무 : 국회 및 국민의힘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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