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김병묵 기자)
지난 총선에서 한국 정치의 지역주의는 대체적으로 무너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새누리당은 호남에서 두 명, 더불어민주당은 영남에서 무려 아홉 명의 당선자를 냈다. 많은 이들이 지역주의 붕괴가 시작됐음을 자축했다.
물론 기자도 동의하는 부분이다. 그런데 여기서 조금 더 생각해 봐야 할 부분이 있다. 겉으로는 지역주의가 사라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 지역주의와 닮은 실체가 깊숙히 자리잡고 있다는 점이다.
현실적으로 해당 지역구가 고향이든, 혹은 학창시절을 보낸 곳이든 어떤 의미로든 해당 지역에 대한 연고가 있을 경우에나 그 정치인이 링에 오를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된다. 이는 수도권보다 다른 지역에서 훨씬 두드러지는 현상이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연고주의’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김부겸‧김영춘‧이정현 등 이번 총선에서 ‘지역주의’를 극복했다고 평가받는 인사들은 모두 해당 지역구 내지 그 인근 태생이거나 중학교, 혹은 고등학교를 마쳤다.
취재를 위해 해당 지역을 찾았을 때 가장 많이 듣는 코멘트도 이와 관련이 있다. 후보에 대해 물었을 때 “○○○은 그래도 여기 사람입니다”라는 지지사유나, 혹은 “△△ 중학교(고등학교) 출신”이라는 답변이 돌아온다. 그 후보의 공약이나 정치적 성향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은 그리 자주 있는 일이 아니다.
야권의 한 관계자는 최근 기자와의 만남에서 “과거에는 이름값이나 전국적 인지도가 훨씬 중요했는데, 점점 해당 지역에 연고가 강한 토박이 후보의 당선률이 높아지고 있다”고 전한 바 있다.
사실 지역을 잘 아는 토박이 후보가 낙하산처럼 내리 꽂힌 인물보다 선전 하는 것은 일견 당연한 일이다. 유권자가 동향(同鄕)과 동문(同門)들에게 마음이 기우는 것도 굳이 지적할만한 일이라곤 보기 어렵다. 이는 비단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며, 전 세계적으로 소선거구제 선거에선 흔히 목도된다.
다만 ‘진정한 지역주의 극복’을 외치고 싶다면, 정책과 공약, 그리고 인물의 됨됨이에 비중을 둔 선거가 이뤄져야 한다는 바람이다. 지나치게 단단한 연고주의는 언제고 지역주의로 회귀할 수 있는 토대가 된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선거의 성과는 아직은 시작단계라고 본다. 우리 정치는 아직 발전도상이다. 연고주의마저 흐릿해질 때, 한 단계 더 성숙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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