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법 개정과 경제 활성화
스크롤 이동 상태바
노동법 개정과 경제 활성화
  • 정진호 기자
  • 승인 2016.05.09 11: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자수첩>가계소득 줄이는 방식으로 기업 투자를 이끌어내겠다는 '모순'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정부여당이 연일 노동법 개정안 처리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22일 박근혜 대통령이 “노동개혁 4법, 대학구조개혁법 등 구조개혁 관련 법률의 입법 노력을 지속하면서 4대 구조개혁을 현장에서 뿌리내리고 확산시켜야 한다”고 운을 띄우자, 사흘 후인 25일에는 원유철 원내대표가 “서비스법과 노동개혁 4법은 대표적인 청년·중장년 일자리 창출 법안”이라며 거들었습니다.

근로자의 날이었던 지난 1일에도 이장우 대변인이 “국회에는 지금 근로자들의 고용안정과 재취업 지원 등을 위한 노동개혁 4법 처리만을 기다리고 있다”며 노동법 개정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제19대 국회 마지막 임시국회에서 노동법 개정안을 처리하겠다는 의지가 읽힙니다.

그러나 저는 노동법 개정이 경제 활성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정부여당의 논리구조를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기본적으로 경제 활성화는 유효 수요의 확대와 관련이 있습니다. 그리고 유효 수요는 가처분소득과 밀접하게 연관됩니다. 가처분소득이란 개인소득 가운데 소비 또는 저축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소득을 일컫는데요. 소비 또는 저축이 늘어나야 경제가 활성화된다고 보면, 가처분소득이 증가해야 경제가 활성화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노동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근로자의 실질임금은 하락하고 고용안정성은 낮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실질임금이 하락하면 가계의 가처분소득은 줄어들고, 고용안정성이 낮아지면 소비성향도 비례해서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일반 가정에서 소비할 수 있는 돈이 줄어들고, 고정적으로 들어오던 소득이 언제 끊길지 모르게 만드는 법이 어떻게 경제 활성화를 이끈다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또한 현재의 투자심리 위축은 기업에 여력이 없기 때문이 아닙니다. 지난달 21일 ‘재벌사내유보금환수운동본부’가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10대 재벌의 사내유보금이 550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경기 위축은 기업이 가난해서가 아니라, 투자할 곳이 마땅치 않기 때문입니다.

소비가 늘면 기업들은 늘어난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생산설비 등에 투자를 하고, 투자가 늘면 일자리가 증가하며, 일자리가 증가하면 소비가 확대되므로 다시 투자가 활성화됩니다. 이것이 경제의 선순환 구조입니다. 문제는 지금 소비의 주체인 가계에 ‘돈’이 없는 까닭에, 순환 구조가 단절됐다는 점입니다. 정부여당은 이 구조를 다시 잇기 위해 기업에 여력을 제공하고, 강제로 일자리를 늘려 유효 수요를 확대하려 합니다. 그러나 ‘투자할 곳’이 없는 상황에서 기업의 부담을 줄이는 것이 과연 투자로 연결될지는 의문입니다.

투자와 소비는 밀접히 연관돼 있습니다. 기업에 각종 특혜를 제공해 투자 여력을 만들어준다고 해서 기업이 투자를 하지는 않습니다. 소비가 있는 곳이면 투자는 자동적으로 이뤄집니다. 소비를 늘리려면 소득 불균형 개선을 통해 가처분소득을 증가시키고, 유효수요를 창출해야 합니다.

‘일하는 가족(working family)’이 가난해져 소비 여력이 줄어든 것이 경기 침체의 원인이며, 가계의 소비 여력 감소는 기업의 과욕이 부른 결과라는 버니 샌더스의 진단이 왜 미국 국민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는지 한 번 생각해 볼 때가 아닐까 싶습니다.

담당업무 : 국회 및 국민의힘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