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성공한 국가, 실패한 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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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성공한 국가, 실패한 개인
  • 강상호 한국정치발전연구소 대표
  • 승인 2016.05.13 11: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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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호의 시사보기> "서민들이 인간의 존엄성 지킬 때 진정 성공한 국가 된다"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강상호 시사평론가)

대한민국은 성공한 국가인가? 그리고 한국인은 행복한 국민인가? 20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잠시 우리의 모습을 생각해 본다. 며칠 전 대학원 강의를 위해 학교에 갔다가 마침 대학원 특강을 위해 방문한 박호군 전 과학기술부 장관과 차를 한 잔 마시게 되었다. 박 전 장관은 70년대 초 100불을 들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는데 현지에 도착해 보니 한 달 방 임대료가 300불이어서 유학생활 시작부터 어려움을 겪었다고 회상하면서 그때와 지금의 대한민국을 비교해보면 놀라울 정도라고 말했다.

오래전 KBS 일요일 생방송 토크쇼에 출연했다가 비슷한 이야기를 담당 김 모 PD에게서도 들었다. 70년대 베트남 전쟁이 한창일 때 특집 촬영차 현지를 방문했는데, 여행 비용은 방송국에서 실비로 계산되었지만 본인이 가져 간 여윳돈은 50불이 전부였다는 것이었다. 요즈음 대학생들이 박 전 장관과 김 모 원로 PD의 이야기를 들으면 먼 나라 옛날이야기처럼 생각할지도 모른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대한민국이 기적처럼 성공한 국가라는 것을 우리들 자신은 가끔 잊고 산다. 그러나 세계는 경이적인 눈으로 우리의 성공을 이야기한다. 1950년대 최빈국 중 하나였던 국가가 OECD 회원국은 물론 G20 국가에 포함되었으니 객관적으로 보아도 대한민국은 분명 성공한 국가이다. 이젠 경제적 측면뿐만 아니라 정치적 문화적 측면에서도 대한민국은 세계의 주목을 받는 나라가 되었다.

대한민국 성공의 견인차는 무엇이었을까? 여러 가지 요인들을 열거할 수 있겠지만, 가장 중요했던 것은 가난을 극복해보겠다는 전 국민적 차원의 열정과 헌신이었다고 생각된다. 그 열정과 헌신 뒤에는 누구나 가난하다는 운명 공동체 의식이 있었다. 그 시절에는 요즘처럼 재벌가 이야기가 드라마의 대세가 아니었다. 라디오와 TV를 켜면 가난을 함께 극복해가는 이웃들의 이야기가 감동적으로 전개되었다. 국가는 가난했지만 개인들은 좌절과 실패를 느낄 수 없는 시대였다. 가난의 고통을 모두가 함께 나누었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우리 경제가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경제에 비유되면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진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상징하는 자료가 한 세미나에서 발표되었는데, 잃어버린 20년 동안 30인 이상 기업의 평균 임금 변동이 1995년 41만 엔에서 2014년에 36만 엔으로 줄었다는 것이며, 2012년 국가 재정에서 조세가 차지하는 비율이 41%이었고 46%가 국가부채로 충당되었다는 것이었다. 이런 일이 우리에게 발생한다면 어떻게 될까?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그러나 더 끔찍한 것은 외환 보유고가 3500억 불이 넘는 상황에서도 많은 개인들이 좌절하고 희망을 잃고 있다는 사실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는 자본 귀족이 추앙받는 사회가 되었고, 자본 귀족과 서민의 벽은 날로 커져 넘을 수 없는 벽으로 인식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청년실업이 12%를 넘고, 임금 소득자 하위 50%의 평균 월 소득이 200만 원이 안 되는 상황에서 일부 기업들의 최고경영자가 수십억 수백억을 주식 배당이 아닌 연봉으로 가져가는 상황을 우리는 어떻게 인식해야 하는가? 국가의 성공과 부가 소수에게 집중된다면 우리는 그 사회를 정의로운 사회라고 말하지 않는다.  

최근 미국 대선 과정에서 나타난 샌더스와 트럼프의 열풍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국식 자유시장 경제가 가져온 누적된 모순이 이번 대선 과정을 통해서 표출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자유시장 경제의 문제점과 관련하여 8년 전 오바마 현 미국 대통령이 처음 대통령에 도전하면서 행한 아래 연설을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 현재 구조조정에 내몰리고 있는 조선업과 해운업 관계자 그리고 정부 당국이 경청해야 할 내용이다.

“우리는 미국 경제의 튼튼함을 억만장자의 숫자나 포춘지가 선정하는 500대 기업의 이윤으로 평가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손님의 팁에 의존해 살아가는 식당의 여직원이 아픈 아이를 돌보기 위해서 하루 휴가를 내면서 실직의 두려움을 갖지 않는 경제를 튼튼하다고 말한다. 우리는 노동의 존엄성이 존중되는 경제를 강하다고 말한다.”

성공한 국가에서 대다수의 서민들이 자신들은 실패했다고 인식한다는 것은 사회가 정의롭지 못한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다. 20대 국회에 진출한 당선자들에게 부탁하고 싶다. 국회의원 직을 훈장처럼 생각하고 완장처럼 사용해서는 안 된다. 양극화를 넘어 우리 사회가 건강한 시민 공동체로 거듭 날 수 있도록 우리 사회를 디자인하고, 그 방향에서 입법을 추진해주기 바란다. 서민들이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고 한국인으로서 긍지를 갖고 살아갈 수 있을 때 대한민국은 진정 성공한 국가가 될 것이다.

강상호 한국정치발전연구소 대표

- 정치학 박사
-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장
- 행정자치부 중앙 자문위원
- 경희 대학교 객원교수
- 고려 대학교 연구교수
- 한국정치발전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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