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영웅 119②] 소방서 25시, 죽음의 사선 넘나드는 영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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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영웅 119②] 소방서 25시, 죽음의 사선 넘나드는 영웅들
  • 박근홍 기자 오지혜 기자
  • 승인 2016.05.14 10: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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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르포>청주동부소방서·은평소방서 동행 취재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박근홍 기자 오지혜 기자)

<시사오늘>은 지난 3일과 4일 충청북도 청주동부소방서와 서울 은평소방서에서 대원들의 하루를 밀착 취재했다.

#1. 충북 청주동부소방서

▲ 충북 청주동부소방서 전면 ⓒ 시사오늘

지난 3일, 충북 청주시에는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시 외곽에 자리한 청주동부소방서 주변 거리는 한산했다. 아스팔트 곳곳에 검은 물이 고여 있었다. 어두컴컴한 시야를 뚫고 '119' 간판이 보였다. 4층짜리 건물에서 형광등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1층 중앙안전센터실에는 현장 인력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각자 사무를 보거나 담소를 나누는 차분한 분위기에서도 긴장감이 느껴졌다. 순간, 출동알림방송이 울렸다. 대원들 모두 방송 내용에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구급 요청이었다. 구급대원들이 신속히 자리를 떳다. 그제서야 센터 안에 말소리가 이어졌다.

이곳 소방대원들의 가장 큰 고민은 '함께할 동료가 부족하다'였다.

실제로 지난해 9월 더불어민주당 박남춘 의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충북지역 소방인력 부족률은 54.4%로, 전국 지자체 중 세종과 경북(54.7%)에 이어 세 번째로 높았다. 충북지역 법정기준 소방인력은 294명으로, 166명 부족한 상황이다.   

▲ 청주동부소방서 1층 중앙센터실 내부 ⓒ 시사오늘

화재진압 현장에서 35년간 일한 A간부는 "건물에 대형화재가 난 경우 그 내부 온도가 1300도나 된다. 그러면 2명이 진입하고 나머지 2명이 물을 뿌려서 열기를 막아줘야 한다. 그런데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뒤에 보조해 줄 사람 없이 일단 진입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20여 년 넘게 활동하고 있는 B구급대원 역시 "제일 필요한 건 사람"이라고 털어놨다. 그는 "올해 충북 채용인원이 총 50명이라고 치면 9개 소방서에 5명 꼴로 돌아가는 건데, 소방서 하나에 여러 센터가 있으니까 잘해야 센터당 1명씩 채용되는 셈"이라면서 "그런데 센터에서도 3교대로 조가 나뉘니까 결과적으로 한해에 인원이 0.3명 늘어난다고 봐야한다"고 지적했다.   

소방관들은 인력부족으로 병가를 낼 때도 죄책감에 시달린다고 말했다.

A간부는 "일하다 보면 병가도 낼 수 있고 교육 가느라고 휴가를 낼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렇게 현장인력이 휴가를 가게 되면 시민들을 위해서라도 빠진 자리를 채워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없는대로 가는 경우가 대다수"라면서 "지원자를 받으면 수당을 줘야 하는데, 지자체에 돈이 없으니까 아예 지원을 못 받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청주동부소방서의 경우, 의무소방제 등을 통해 인력난에 대처하고 있지만 현장에는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한다. A간부는 "군복무를 하는 요원들은 국방부 소속으로 사망사고시 책임 문제가 따르기 때문에 보조역할만 맡기고 있다"고 설명했다.

채용공고를 내도 소방관의 고된 업무로 지원자가 없는 것은 아닐까.

현장일선을 지휘했던 E간부는 단호하게 부인했다. 그는 "지난 1993년 청주시에서 대형 붕괴사고가 있었다. 당시 훈련 사흘만에 비상소집된 신입 두 명이 현장에서 옷 벗고 나간 일 말고는 힘들다고 그만둔 경우는 거의 없다"면서 "오히려 요새는 취업난이 심해 몰리는 편이다. 특히 구조대는 특전사 수준으로 높은 체력을 요구해서 떨어지는 사람도 많다"고 말했다.

이 간부가 얘기한 1993년 대형 붕괴사고는 그해 1월 7일 충북 청주시 상당구 우암동 우암상가 아파트가 주저앉아, 사망자 28명, 부상자 48명, 이재민 370여 명을 낸 참사였다. 원인은 무리한 설계와 부실시공이었다. 당시 청주시내 소방서에는 총동원령이 떨어졌다.  

▲ 청주동부소방서 구조차량 옆에 놓인 구조대복 ⓒ 시사오늘

자리를 바꿔 중앙안전센터 반대편에 자리한 구조대를 찾아갔다. 구조대 사무실로 가는 길에 펌프차와 조명차, 구급차 등 여러 종류의 소방차량이 주차된 공간을 지나쳤다. 이미 오전 10시를 지나가고 있었지만, 야간조 대원 몇몇이 남아 차량 주변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20년차 F구조대원에게 일하면서 가장 힘든 점을 물었다. 취재가 어색한지 답변을 머뭇거리던 그는 "여름이면 시내 하천에서 익사체를 수습할 때가 많다. 그 냄새는 몇 십 년이 지나도 익숙해지지 않는 것 중 하나"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러면서 "구조를 하다보면 죽음의 순간과 자주 마주한다. 자식을 키우는 입장에서 가장 가슴 아픈 것이 꽃 피워보지도 못한 어린 자녀를 데리고 동반 자살한 경우"라며 "시신을 수습할 때 눈물을 참지 못해 괴로울 때가 많다"고 털어놨다.

마침 출동알림방송이 요란하게 울렸다. 이번에는 구조 요청이었다.

음주 운전자가 빗길에도 속도를 줄이지 않아 발생한 교통사고였다. 사망자는 없었지만, 운전자를 포함해 피해 차량에 타고 있었던 3명이 부상으로 병원에 이송됐다.  

▲ 지난 3일 청주시에서 발생한 빗길 교통사고 현장 ⓒ 시사오늘

취재진이 구조대를 따라가 실제로 마주친 교통사고 현장은 처참했다. 비탈길에 처박힌 차량 앞부분은 종이장을 구겨놓은 듯한 모습이었다. 전면유리도 산산조각이 난 상태였다. 부상자 상태는 확인할 수 없었지만, 구조팀이 늘상 마주치는 끔찍한 현장이 눈에 선했다.  

최후의 순간까지 응급처치를 해야 하는 구급팀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15년차 구급대원G는 "예전에 영유아가 욕조에 빠진 사고에 출동한 적이 있다. 엄마가 아이를 목욕시키다가 다른 자녀가 불러서 잠깐 나간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마지막까지 소생되지 않아서 안타까웠다"면서 "사실 구급 업무를 계속하려면 이같은 기억이 남아있게 하면 안 된다. 심정적인 스트레스를 받는 건 맞지만 극복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인터뷰 도중 또 구급 출동방송이 울렸다. 대부분의 소방서에서 구급이 가장 많은 출동 건수를 기록하고 있다. 3인 1조의 구급팀이 상황실에서 내려온 출동 지령서를 확인하고 바로 센터를 빠져나갔다.

운전요원I가 지령서에 나온 방향대로 우선 구급차를 몰고, 조수석에 앉은 구급대원H가 네비게이션에 상세 주소를 입력시켰다. 전화로는 환자 상태를 지속적으로 확인했다. 구급대원G는 응급처치 공간인 뒷편에서 환자 상태에 맞춰 의료품을 챙겼다.

목적지가 먼 탓에 운전이 급박했다. 그러나 응급 사이렌에도 불구하고 사거리 중간중간 일반 차량이 비켜주지 않아 지체되는 일도 있었다. 조급할 만도 한데, 구급팀은 묵묵히 앞만 보고 달렸다. 환자는 장례식장에서 낙상, 다리를 접지른 상태로 누워있었다. 대원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가족들을 안심시키고 침착하게 환자를 이송했다.   

▲ 청주동부소방서 구급차량이 출동하고 있다. ⓒ 시사오늘

6년차 운전요원I는 "지금도 출동할 때, 환자 이송할 때면 긴장한다"면서 "빠르게 가면서도 안전해야 하니까 집중을 많이 요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예전에 오류동 산골 마을에 출동 나간 적이 있다. 50대 남성이 경운기를 끌고 길목을 돌다가 넘어져서 그 경운기에 깔린 거다. 현장에서 봤을 때 즉사 가능성이 있었지만 우리가 사망진단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라서, 우선 구급차에서 CPR(심폐소생술) 하며 병원으로 이송했다. 그때 가파른 산골을 정신 없이 내려오는데, 뒷편이 흔들리지 않도록 신경쓰느라 정말 긴장했다"고 회상했다. 당시 응급실에 도착한 환자는 이미 숨이 끊어진 상태였다.

8년차 구급대원H는 "우리도 사람인데 응급 출동할 때 당연히 긴장된다. 그런데 표현 안하려고, 최대한 중심잡고 침착하게 하자고 한번 더 마음 먹는 거다. 그래야 현장에서도 환자들이 불안하게 느끼지 않을테니까"라고 말했다.

구급대원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미숙한 시민의식이었다.

운전요원I은 일반 운전자의 이기심으로 출동이 지체되는 경우를 지적했다. 그는 "사이렌이 울리면 비켜주는 시민들도 있는데, 대부분 신경 안 쓴다. 양보 안 해주는 경우도 많지만, 갑자기 구급차량 앞에 끼어드는 운전자도 있다"고 말했다. 

▲ 청주동부소방서 구급대원들이 환자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 시사오늘

잇단 구급 출동 지령은 취객이 길거리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져있다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구급팀은 엉덩이 붙일 새 없이 차량에 탑승했다. 주소를 따라가보니 주변 음식점 주인과 경찰관들이 비를 맞으며 누워있는 취객을 깨우려고 애쓰고 있었다. 이 취객은 피가 섞인 콧물을 흘리고 있었다. 

병원으로 이송하는 가운데, 구급대원이 취객의 신원을 파악하려고 했지만 의사소통이 어려웠다. 주머니에 있던 휴대폰으로 어렵사리 가족들과 연결이 됐다. 환자 상태를 일러주고 병원 응급실에서 인수인계를 마치고서야 대원들은 한숨을 돌렸다.

구급대원G는 "응급상황에 대응하는 건 저희 업무이기 때문에 견딜 수 있다. 그러나 일하다 보면 단순히 술에 취해서 집에 데려가 달라고 신고하는 경우가 정말 많다. 막상 출동하면 아랫사람 대하듯이 반말로 소리 지르고 욕하고. 물 달라고 해서 없다면 트집 잡고 시비 걸고"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옆에 있던 구급대원H도 "구급차량에 타서는 침 뱉고 담배 피고, 기분 나쁘다고 대원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도 있다. 언론에 이슈화된 거는 일부분이다. 상상 이상의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올초 '119구조·구급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20조(비응급환자에 대한 구급요청 거절)'가 개정된 데 따라, 구급대상자가 비응급환자인 경우 이송을 거절할 수 있다. 당일 청주동부소방서 구급차량에도 이에 대한 홍보문이 부착돼 있었다.

그러나 구급대원들은 회의적인 반응이었다.

운전요원I는 "말이 그렇지, 일단 지령이 떨어지니까 출동할 수밖에 없다. 도착해서 '급한 환자 아니다, 이송 안해도 되겠다'고 했다가는 바로 민원 들어온다"고 털어놨다.  

구급대원H도 "소방관이 워낙에 봉사 이미지가 강해서, 주취자의 폭력 등에 대해서도 강력히 대응할 수 없는 것 같다. 이제는 다들 받아들이고 넘어가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 청주동부소방서 야간조 교대식에 모인 대원들 ⓒ 시사오늘

대화가 마무리될 즈음, 간부 한 명이 다가와 구급대원들에게 "점심 먹을 거야, 말 거야"라고 물었다. 이미 오후 4시를 넘긴 시각이었다. 알고 보니, 점심을 먹던 중에 출동 지령이 떨어져 급식판을 그대로 두고 나온 탓에, 식당 직원들이 치우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먹다 만 점심은 이미 잊어버린 구급대원들이 "저희가 치울게요"라며 벌떡 일어섰다. 누군가의 생명을 구하고 돌아온 명예로운 사람들이 마주치는 현실이었다.

#2. 서울 은평소방서

▲ 서울 은평소방서 전면 ⓒ 시사오늘

지난 4일, <시사오늘>의 발길이 향한 곳은 서울 은평소방서였다.  

소방관은 현재 지방직 공무원으로 분류, 소속 시·도에 따라 지원받는 예산 격차가 큰 것으로 알려졌다. 전날 충북 청주동부소방서 인터뷰에서도 "수도권은 지방과 전혀 다르다"는 말을 수차례 들은 터였다. 

▲ 이성촌 구조대장이 은평소방서 대기실 내부를 보여주고 있다. ⓒ 시사오늘

이날 <시사오늘>이 방문한 오후 6시는 야간조 교대 시간이었다. 활기찬 분위기 속에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이성촌 구조대장이었다. 그는 지난 2001년 홍제동 화재사고에 출동, 동료 소방관을 떠나보낸 당사자다. 이 같은 사연은 이미 여러 매체를 통해 세간에 알려진 바 있다.

이 대장과 함께 소방서 내부를 살펴봤다. 체력단련실, 당직실과 대강당 모두 넉넉하게 배치돼 있었다. 또 건물 곳곳에 심신안정실 등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돼 있었다. 신축 건물답게 전반적으로 깔끔하고 세련된 느낌이었다. 은평소방서 1층 차고지에 주차된 소방차량은 청주동부소방서와 비교할 때 소방 오토바이 등 종류가 다양했다. 

은평소방서는 지난 2011년 서울 은평구 녹번동에서 진관동으로 신축 이전했다. 특히, 지난 2001년 홍제동 주택 화재와 지난 2008년 대조동 나이트클럽 화재로 소방관 9명이 순직하면서 신청사에는 전국 최초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치유실'이 설치됐다. 

▲ 은평소방서 차고지에 주차된 차량 ⓒ 시사오늘

이 대장은 "지방보다는 인력과 시설면에서 여유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전제하면서도 "예전에는 10명으로 2교대였는데 지금은 3교대다 보니까 사실 일은 더 힘들어졌다. 쉬고 싶어도 대신할 인원이 부족하니까 서로 눈치 보면서 부탁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청주동부소방서와는 달리 은평소방서는 다른 사람 대신 근무하는 대원들에게 수당을 지급한다. 지자체 힘의 차이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다른 대원들 역시 인력 충원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큰 고민은 '탁상행정이 많다'는 점이었다.  

현장인력이 모여있는 1층 대응단실에 들어서자, 대형 게시판에 붙은 그림 하나가 눈에 띄었다.
재난현장을 묘사한 그림이었는데, '소방활동 위험예지훈련 도해집'이라는 말머리가 달려있었다. 그 밑으로는 '제1라운드(현상파악)-제2라운드(본질추구)-제3라운드(대책수립)-제4라운드(목표설정)-one point(구호)'라고 적혀 있었다.

취재진이 그 앞을 서성거리자, 구급대원J가 다가와 "매일 아침 대원들이 모여서 도해집을 보고 재난상활을 시뮬레이션하는 훈련"이라면서 "묘사된 재난상황을 파악하고 각자 대책을 제시한다. 마지막으로 구호를 외치고 끝낸다"고 설명했다. '실제 재난상황에 도움이 되냐'는 질문에는 "그렇다고는 하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그 옆에는 현장대응단 5월 첫 째주 일정이 붙어있었다. 주요업무계획에 '소방전술경연대회' '소방기술경연대회'가 포함돼 있었다.

구조대원K는 "위험예지훈련 경연대회도 있다. 각 소방서 평가에 들어가니까 중요할 수밖에 없다"면서 "이런 것들이 현장에서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다. 결국 보여주기식 아닌가 싶다"고 토로했다.

▲ 은평소방서 구급대원이 환자를 차량에 옮기고 있다. ⓒ 시사오늘

대응단실을 둘러보는 가운데, 여지없이 출동알림방송이 울렸다. 구급이었다. 2인 1조의 구급팀이 곧바로 차량에 탑승했다. 청주동부소방서와 달리 운전요원이 빠져 있었다. 새롭게 배정된 구급차량에 따른 것이라고 했다. 

출동 지령이 떨어진 곳은 차량이 들어설 수 없는 작은 골목의 빌라였다. 환자 가족들이 빌라 맨꼭대기 4층에서 구급대를 기다리고 있었다. 고령의 환자는 감기 몸살로 인한 고열을 보였는데, 동시에 뇌졸중이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환자와 함께 구급차량에 탑승한 가족이 1시간이나 걸리는 교외 병원을 고집했다. 보험처리가 된다는 이유였다.  

차량 뒷편은 환자 상태를 확인하면서 시간 싸움을 벌였고, 앞편은 퇴근 교통체증과 씨름을 벌였다. 구급차량에서 바라본 시민의식은 전날 청주동부소방서 경험과 다를 게 없었다. 응급 사이렌이 울리는데도 몇몇 시민들은 횡단보도를 내달렸다. 사거리에서는 일반 차량들이 끼어드는 일이 허다했다.

교외 병원에 도착해 환자 인계를 마친 대원M은 "오늘처럼 병원이 아주 멀어도 환자 요구대로 갈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바로 민원이 들어온다"면서 "민원이 들어오면 나만 혼나는 게 아니라 내 윗사람들까지 힘들어진다"고 털어놨다.

주취자에 대한 토로 역시 같았다. 대원L은 "비응급 상황이 제일 지친다. 대부분 주취자들인데 대응하기 곤란할 때가 많다. 보통 금요일이나 토요일에 주취자 신고가 많은데, 그러다가 오히려 응급상황을 놓칠까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 은평소방서 구조대원들이 기타출동하는 장면 ⓒ 시사오늘

출동에서 돌아오니 현장대응단실에서 숙연한 분위기가 흘렀다. 옆에서 방금 강원도에서 현장 조치에 나선 소방관 한 명이 뇌사 판정을 받았다는 뉴스가 나왔다고 귀띔했다.

이날 강원도 태백시에서 강풍으로 주택 지붕강판이 도로에 떨어지자 소방대원들이 안전조치에 나섰는데, 그 위로 주택 구조물이 덮쳤다. 이에 소방대원 한 명이 머리를 크게 다쳐 서울 아산병원으로 긴급 이송됐으나, 뇌사 판정을 받았다.

대원들 몇몇이 씁쓸한 표정으로 차고지로 나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구급대원N은 "방금 동료 소방관의 순직도 그렇고 이 일을 하다보면 마음이 힘들 때가 많다. 나는 최근에 안면인식장애가 생겼다. 10년째 같은 아파트에서 사는데 이웃사람들이 인사를 건네도 누군지 도통 모르겠더라. 스트레스가 쌓여서 다른 쪽으로 부작용이 나타나는 것 같다"고 털어놨다.

그는 "우리도 죽음을 마주칠 때면 두렵다. 그래도 버틸 수 있는 건 일종의 소명감"이라면서 "물론 생계를 위해 일하고 것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소방이라는 직업이 좋아서 온 사람들이다. 소명감이 없다면 절대 계속해 나갈 수 없다"고 말했다.  

▲ 신입대원들이 돌린 '시보해제' 기념 떡 ⓒ 시사오늘

밤 11시경, 대응단실에서 모처럼 웃음소리가 들렸다. 

신입 소방대원이 '시보해제' 기념 떡을 돌리며 선배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있었다. 대원들은 그제서야 무거운 표정을 걷고 "잘 먹을게"라고 화답했다. 시보란 공직상 6개월간 수습 기간을 뜻하는데, 이를 무사히 마쳐야 정식 소방대원이 된다.

신입 대원O는 취재진의 인터뷰 요청에 "아직 실무경험이 없어 말씀 드릴 게 없을 것"이라며 쑥스러워했지만, 지원 계기를 묻는 질문에 금방 눈이 반짝였다. 그는 "군대에서 비슷한 업무를 했는데, 대학 전공보다 훨씬 저랑 맞다는 생각이 들어 지원했다. 업무 강도 때문에 부모님이 반대하시긴 했지만, 제가 하고 싶다고 해서 결국은 지지해 주셨다"고 말했다. 

▲ 은평소방서 구조대원들이 기타출동하는 장면 ⓒ 시사오늘

이후 '독수리를 잡았다', '강풍에 나무가 쓰러져 전선에 걸렸다'는 신고 등 쉴 새 없이 출동 지령에 따라 움직이다 보니 어느새 자정이 넘어가고 있었다.

야간조 대원들이 교대로 대기실에서 수면을 취했다. 그러다 출동알림방송이 울리면 지체없이 뛰어나와 지령을 확인했다. 이번에는 화재경보 오작동으로 인한 기타출동이라고 했다. 기타출동은 화재·구급·구조 등이 아닌 다른 이유로 신고가 접수됐을 경우 출동하는 것을 말한다. 기타출동에 다녀온 대원은 취재진을 향해 "화재경보기가 잘못 울린 거니까 걱정말라"며 다시 대기실로 들어갔다.

5일 새벽 은평소방서 주변에 대남 삐라 수백 장이 발견돼 경찰 관계자들과 수습하는 일이 있었지만, 급한 사건 사고는 없었다. 

▲ 지난 5일 오전 화재 출동알림방송에 소방 차량들이 줄지어 출동하고있다. ⓒ 시사오늘

취재를 마무리 짓기로 한 이날 오전 9시, 주간조와 야간조의 교대식이 있을 예정이었다.

그런데 대원들이 차고지에 집결한 그 순간, 화재 출동방송이 울렸다. 주간 근무자들은 펌프차, 고가차, 화재진압차, 구급차 등 10여 대의 차량에 쏜살같이 탑습했다. 상황을 채 파악하지 못한 취재진도 급박하게 구급차량에 올라탔다.

긴장한 채 목적지로 달려갔지만, 연기나 불길은 찾아볼 수 없었다. 신고자와도 연결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오인신고였다. 구급대원은 "종종 있는 일"이라면서 "화재신고는 피해규모가 커질 수 있어 무조건 대규모로 출동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10여 분 만에 돌아온 소방서에서 이성촌 대장이 "취재 못 해서 어떡하냐"며 "언론사만 찾아오면 신고도 없고 평화롭다"며 우스갯소리를 던졌다. 그러나 지난 밤 <시사오늘>이 보고 들은 것 전부 소방대원들의 일상이었다.

비응급 상황에도 혹시 모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사거리에 내달리는 의무감, 강풍으로 나무가 쓰러져 전선에 걸려있는 위험한 상황에도 시민 안전을 위해 해결책을 찾는 책임감, 고요한 새벽에도 갑작스럽게 들이닥치는 최후의 순간을 위해 잠은 밀어두는 사명감.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돌아서는 길. 휴일 아침을 맞은 사람들의 발걸음이 가벼워보였다. 이성촌 대장의 말이 떠올랐다.

"소방이 이만큼 사랑받는 건 시민들 덕분이다. 그만큼 우리도 애쓰고 있다. 119대원들 모두 죽음의 사선에서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열심히 하고 있다는 것. 그것만 기억해주면 좋겠다."

담당업무 : 국회 및 야당 출입합니다.
좌우명 : 本立道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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