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영웅 119③] 이성촌, “소방을 키운 건 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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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영웅 119③] 이성촌, “소방을 키운 건 시민”
  • 박근홍 기자 오지혜 기자
  • 승인 2016.05.15 07: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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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서울 은평소방서 구조대장, "탁상행정으로 소방관들 혹사"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박근홍 기자 오지혜 기자)

▲ 이성촌 은평소방서 현장대응단 구조1대장 ⓒ 시사오늘

<시사오늘>은 지난 4일 은평소방서 현장취재 중 이성촌 현장대응단 구조1대장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 대장은 15년 전 홍제동 화재사고에 직접 출동한 경험이 있다.

홍제동 주택 화재사고는 지난 2001년 3월4일 새벽 서울 홍제동에 위치한 연립건물이 붕괴, 소방관 6명이 순직하고 3명이 부상당한 참사다. 이 사고를 계기로 소방관들의 열악한 근무환경과 함께 살신성인의 직업정신이 주목받았다. 최근에는 동료의 순직 등 죽음과 맞서 싸우는 소방관의 트라우마를 보여주는 사례로 소개되기도 했다.

직접 만나본 이 대장은 다부진 체격에 따뜻한 눈빛을 가진 소방관이었다. 그는 "현장에 대한 이해가 결여된 일부 탁상행정이 소방관의 사기를 꺾어놓는다"고 역설했다. 또 '국가직 전환'을 거론하며 "수도권이고 지방이고 할 것 없이 전반적인 처우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구조현장에서 만난 시민들과의 에피소드를 들려줄 때에는 눈시울을 붉혔다.

-소방관 처우개선을 위해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가 뭐라고 생각하나.

"국가직 전환이다. 많은 언론에서 다뤘듯이, 서울은 그나마 낫지만 지방은 근무환경이 열악한 편이다. 소방관 신분을 지방직에서 국가직으로 전환하면 어느 곳이든 비교할 필요 없이 처우 문제가 해결된다. 지난 2004년 소방방재청으로 독립하면서 국가직으로 전환해 달라고 많이 이야기했다. 내심 기대를 많이 했는데, 지난 2014년 세월호 참사로 소방방재청이 해체되고 국민안전처로 흡수됐다. 세월호 참사와 소방방재청은 어떠한 연결고리도 없다. 단순히 구색을 맞추기 위해 소방까지 억지로 끼워 넣은 거다. 이 과정에서 대원들의 사기가 꺾였다."    

-당시 국가직 전환을 요구하는 여론이 강했지만, 결과적으로 바뀐 건 없다.  

"(한숨을 쉬며) 시민들은 현장을 뛰는 우리를 최고라고 생각해 주지만, 위에서는 그렇게 보지 않는 것 같다. 그러다보니 국가직 전환의 필요성도 못 느끼는 것 아닐까. 사실 소방을 이만큼 키운 것은 시민들이다. 그만큼 우리도 애썼다. 현장에 나가면 어떠한 업무라도 내 일처럼 한다. 신고자가 비합리적이거나 무리한 요구를 할 경우에는 법적으로 거절할 수 있지만 일단 출동하면 입씨름할 시간이 없다. 그럴 시간에 한걸음 더 뛰어야 한다. 그렇게 현장대원들이 시민들과 함께 쌓아온 신뢰다." 

이성촌 은평소방서 현장대응단 구조1대장 ⓒ 시사오늘

-일각에서는 소방조직에 힘이 없다는 불만도 있다.  

"불합리한 일이 생기면 소방관 개인이 책임지는 경우가 많다. 조직에 힘이 없다보니 위에서는 그저 '무조건 잘못했다고 하라'고 지시할 때가 다반사다. 시민들도 경찰과 소방관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지 않느냐. 같은 제복, 같은 공무원, 같은 계급을 갖고 있어도 말이다. 현장에 출동한 대원들이 그런 상황에 처하면 속이 뒤집어질 때가 많지만, 대신 내가 나서서 '이해해주십쇼. 죄송합니다'라고 사과한다. 할 수 있는 일이 그런 것 밖에 없으니까."

-지방은 인력난에 따른 고충을 토로하더라.

"지방과 비교하면 수도권은 나은 편이지만 여전히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예전에는 10명으로 2교대를 했는데, 비슷한 인원으로 3교대를 하는 거니까 일은 더 많아진 거다. 그러니까 업무에 대한 부담감이 커졌다. 쉬고 싶어도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휴가 제도가 있지만 대체인력이 있어야 쉴 것 아닌가. 요새는 현장출동 이외에 행정업무와 각종 훈련들이 많아 다들 대신 근무하길 꺼린다. 부담스러운 게 당연하지."

-행정업무와 각종 훈련이라면

"예를 들면 '위험예지훈련'이라는 게 있다. 화재현장을 묘사한 그림을 놓고 대원들끼리 위험요소를 찾는 거다. 팀장이 리더가 돼서 그림에서 어떤 위험이 있는지 질문하면 대원들이 캐릭터의 헬멧 미착용 등 문제점을 찾는다. 이 같은 그림이 100개 넘게 있는데 한 달 내내 반복해 훈련한다. 심지어 서에서 경연대회를 열고 일등하면 전국대회도 나간다. 이에 대한 대원들 스트레스가 심하다."

-비슷한 사례가 더 있나.

"방재 기술을 경연하는 대회가 여럿 있다. 소방호스 연결 시간을 재기도 한다. 마지막 소방호스에 수도를 연결해야 마무리되는데, 경연팀들이 시간을 줄이려다 보니 호스가 제대로 연결됐는지 확인하지 않고 물부터 틀 때가 많다. 중간에 터져 나온 물에 얼굴을 맞아 기절하는 사고도 있었다. 문제는 서울에서 일등하면 전국 대회에 나가야 한다. 지방은 전국 우승에 특진이 걸려있어서 연습량이 어마어마하다고 들었다. 한마디로 소방대원들을 경연대회로 혹사시키는 것과 다름없다. "

-실제 현장에서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경연팀은 임시로 꾸려진다. 주어진 과제마다 최대한 빨리 할 수 있는 대원들만 모아놓은 거다. 현장에서 함께 뛰는 팀이 아니니까 전혀 업무에 도움이 안 된다. 차라리 실제 출동하는 대원들 사이에 팀워크를 향상시킬 수 있는 활동이 낫다고 생각한다. 아니면 그 시간에 개인적으로 쉴 수 있는 시간을 주든가. 예지훈련도 그렇고, 현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일종의 탁상행정 같다. 무리한 출동시간 단축에 대한 논란도 있었다. 

"지금은 출동시간이 서 평가에서 빠진 걸로 안다. 그런데 여전히 기록에 따라 일등부터 꼴등까지 점수가 나온다. 상위권 대원들은 기록에 따라 포상을 받으니 하위권은 아무래도 눈치가 보인다. 사실상 서 평가에서 개인 평가로 바뀐 것이다. 위에서는 출동 차량에 '안전하게 빨리 가라'고 한다. 말 그대로 모순 아닌가."

이성촌 은평소방서 현장대응단 구조1대장 ⓒ 시사오늘

-최근 소방관의 트라우마 문제가 거론됐다.

"사실 트라우마 치료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 못했다. 이 일을 그만두지 않는 이상 트라우마는 반복되는 것 아닌가. 일시적인 치료로 나아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문제에 대한 관심이 모여서 은평소방서에도 심신안정실 등이 설치됐고, 현장인력 중심으로 힐링캠프가 운영되고 있다. 취지에는 공감한다. 다만, 실질적인 도움으로 이어지는지는 모르겠다는 것이다. 차라리 휴가 제도를 보완해서 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하는 편이 낫지 않나 싶다."

-퇴직 소방관에 대한 치료 프로그램도 있나.

"(씁쓸하게 웃으며) 당장 현장에 필요한 예산도 부족한데 어떻게 퇴직한 사람들까지 신경을 다 쓰겠나."

-반복되는 트라우마에도 구조대원으로 일하는 원동력은.

"시민들이다. (반지가 껴서 퉁퉁 부은 손가락 사진을 보여주며) 예전에 출동을 나갔는데 할머니 손이 이렇게 돼 있더라. 반지가 손가락에 파고들어간 거다. 반지를 잘라내려고 하니까 할머니가 너무 무서워했다. 그런데도 옆에 있는 아들은 전혀 관심이 없어보였다. 알고 보니 할머니가 치매에 걸렸더라. 혼자 아이처럼 떨고 있는 할머니를 보니 가슴 아파서 눈물이 났다.

손을 잡아주면서 '괜찮다, 안 아프게 조치하겠다'고 다독였다. 응급조치 후에는 병원까지 동행했다. 그때 할머니가 아들 대신 내 손을 잡더라. 나는 지금도 대원들에게 '소방관이 이만큼 올라온 것은 시민들 덕이다. 해야 될 일이 아니어도 최대한 해 드리고 오자. 시민들에게 더 가깝게 다가가자'고 말한다."

담당업무 : 국회 및 야당 출입합니다.
좌우명 : 本立道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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