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종의 '삼인동사'(三人同事)와 20대 국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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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의 '삼인동사'(三人同事)와 20대 국회
  • 윤명철 기자
  • 승인 2016.06.07 16: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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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정치의 악순환은 나쁜 역사의 반복"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윤명철 기자]

조선 숙종은 서인과 남인의 끊임없는 당쟁으로 정국이 혼란에 빠지자 묘안을 짜냈다. 한 마디로 당대의 명망 있는 정계 원로 3인을 초빙해 정치권의 변화와 혁신을 도모하겠다는 획기적인 정치실험이었다. 숙종이 염두에 둔 원로 3인은 우암 송시열, 남계 박세채, 명재 윤증이었다. 이른바 숙종의 ‘삼인동사’(三人同事)이다.

이들 중 주목해야 할 두 인물은 남계와 명재였다. 두 사람은 재야에 머물면서 정치권을 멀리한 존경받던 학자들이고, 특히 명재 선생은 조정의 꾸준한 입각요청에도 변함없이 거부해왔던 지조 높은 선비였다.

명재는 조정 입각을 심각히 고민하던 차에 최후의 결단에 앞서 남계와 과천에서 만나 입각의 전제 조건을 제시했다. 첫째, 정권을 빼앗긴 남인의 한(恨)을 풀어줘야 한다. 둘째, 숙종의 외척들의 발호를 막아야 한다, 셋째, 당파가 다른 이를 배척하고, 자기 당에만 복종하는 자만을 등용하는 잘못된 정치풍토를 쇄신해야 한다.

남계는 명재의 제안을 고심하더니 세 조건 모두 불가능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명재는 “이 세 가지 조건이 불가능하다면 입각할 수 없다”며 출사를 포기하고 낙향했다.

남계도 미련 없이 고향으로 발길을 돌렸고, 두 사람의 회동 결과를 기다리던 우암 송시열도 화양동 계곡으로 낙향했다. 결국 숙종의 야심찬 정치실험인 ‘삼인동사’는 실패로 끝났고, 오히려 집권파 서인은 ‘회니시비’사건으로 노론과 소론으로 분파돼 정국은 대혼란의 소용돌이에 빠져 버렸다. 민생이 파탄 난 것은 당연지사가 아니겠는가?

20대 국회가 개원한 지 1주일이 지났지만 원 구성 법정시한 마지막 날인 오늘도 국회는 개점 휴업 중이다. 국회는 22년 동안 원 구성 법정시한을 지켜본 적이 없다. 각 당의 당선자들은 불과 두 달 전만 하더라도 식물국회인 19대와는 다를 것이라고 호언장담했지만 별 반 차이 없는 모습이다.

국회법은 오늘 임시회 첫 본회의를 열어 국회의장을 선출하고, 9일 다시 본회의를 열어 상임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 그러나 의장직과 법제사법위원장 등 핵심 상임위 배분을 놓고 새누리당과 두 야당이 정면 대립 중이다.

박 대통령이 사태 수습을 위한 숙종의 ‘삼인동사’를 고민해 보길 기대해 보지만 고된 해외 순방의 여파로 휴식 중이다. 여야는 밥그릇싸움에 여념 없다. 명재와 남계가 걱정했던 상대방에 대한 배려의 정치, 측근 배제의 통 큰 정치는 눈을 씻고 찾아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소속 정파에 대한 무조건적인 충성 구태는 400여 년이 지나도 변함이 없다. 나쁜 정치의 악순환은 나쁜 역사를 반복시킨다. 

담당업무 : 산업1부를 맡고 있습니다.
좌우명 : 人百己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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