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이해찬 회동은 왜 불발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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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이해찬 회동은 왜 불발됐나
  • 박근홍 기자
  • 승인 2016.06.13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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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박근홍 기자)

반기문 UN(유엔) 사무총장과 무소속 이해찬 의원의 미국 회동 불발의 여운이 가시지 않고 있다. 두 사람은 지난 8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만날 예정이었지만, 이 의원 측이 "면담의 성격이 변질됐다"는 이유로 일정을 취소하는 바람에 만남이 결렬됐다.

반 총장에 대한 친노(친노무현)계의 반감이 표출된 것, 충청대망론를 내세운 반 총장과의 회동에 세종시를 지역구로 가진 이 의원이 위화감을 느낀 것 등 정치권의 해석이 분분한 가운데, 일각에서는 애초부터 반 총장이 이 의원을 만날 생각이 별로 없었다는 말도 나온다. 단순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위해 이용했다는 것이다.

우선, 회동 추진 과정 초반에 일었던 잡음을 통해 이를 유추할 수 있다. 거물급 정치인들의 만남은 그 자체로 화제가 되기 마련이다. 때문에 누가 먼저 회동을 제안했는지, 언제 회동 일정을 언론에 배포할지 등 사안은 양쪽의 긴밀한 협의를 통해 의견을 조율하고 공개하는 것이 관례다.

그러나 반 총장은 이 같은 관례를 깨고, 유엔 사무총장 대변인을 통해 "한국 측에서 추진해 만남이 성사된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회동 일정에 대해서도 반 총장 측이 먼저 외부에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이 의원 측은 "우리가 먼저 만남을 제안한 것처럼 보도된 데 대해 유감을 표한다", "면담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일정이 언론에 공개됐다"며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논란이 일자 반 총장 측은 "'한국 측에서 추진해 만남이 성사된 것'이라는 건 유엔 한국대표부에서 추진했다는 뜻이지, 이 의원 측이 만남을 제안했다고 말한 게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또한 당초 비공개를 전제로 추진된 회동임에도 반 총장 측이 기자 배석을 주장하면서 면담 내용을 공개하겠다는 입장을 일방적으로 알린 부분도 의구심을 자아낸다.

더불어민주당 복당을 꾀하고 있는 이 의원 입장에서는 차기 대선이 얼마 남지 않은 민감한 시기에 여권의 차기 대선주자로 분류되는 반 총장과의 회동 내용이 공개되는 게 내키지 않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이 의원은 13일(현지시간 12일) 로스앤젤레스(LA) 한인타운 윌셔아로마센터에서 열린 재미교포 초청 강연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차 한 잔 마시자고 (반 총장 측에게) 연락이 와서 그러자고 했는데, 기자들을 불러 브리핑을 하겠다고 하기에 그런 건 싫다고 하고 내가 취소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야권의 한 관계자는 이날 <시사오늘>과 한 통화에서 "반 총장 측이 회동 추진 초반부터 줄곧 이 의원의 심기를 건드렸는데, 이 의원만 '속 좁은 사람'이 돼 버린 꼴"이라며 "반 총장 정도 되는 사람이 이를 모를리 없을 텐데, 회동이 불발되고 나서 이 의원에게 전화 한 통화조차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해하기 어렵다. 의도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반기문, 회동 무산이 호재?

▲ 반기문 UN 사무총장(왼쪽), 무소속 이해찬 의원 ⓒ 뉴시스

회동은 결렬됐지만, 반기문 총장으로서는 결과적으로 밑지는 장사가 아닌 셈이 됐다.

우선, 여론의 부담을 피하면서 대망론을 한층 더 띄울 수 있었다.

반 총장은 지난달 한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유엔 사무총장에서 돌아오면 국민으로서 역할을 더 생각해 보겠다"며 사실상 차기 대권 출마를 시사해 여론으로부터 뭇매를 맞았다. 이에 반 총장은 "과대 해석과 추측을 자제해 달라"고 해명한 바 있다.

두 사람의 만남이 성사됐다면, 반 총장이 대권가도를 내달리기 위해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 국내외 언론을 통해 다시 제기됐을 공산이 크다. 하지만 회동이 불발에 그치면서 비난은 희석된 채 반 총장의 이름이 곳곳에서 거론됐다.

또한 반 총장의 화해의 손길을 친노 세력이 뿌리친 모양새가 됐다. 친노 좌장격인 이 의원과의 회동은 반 총장과 친노의 관계개선의 의미를 갖고 있어 정치권의 관심을 끌었다.

반 총장은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지를 업고 2006년 10월 유엔 사무총장에 당선됐다. 참여정부 당시 노 전 대통령은 반 총장의 출마선언 이후 총 15개국을 반 총장과 함께 순회했다.

아랍에미리트, 아제르바이잔, 알제리, 이집트 등 역대 한국 대통령이 잘 찾지 않던 중동·아프리카 국가까지 순방하는 강행군이었고, 노 전 대통령은 상대 국가 정상과 회담을 가질 때마다 당시 외교부 장관이었던 반 총장을 자신의 바로 옆자리에 배석하기도 했다.

그러나 반 총장은 2008년 5월 서거한 노 전 대통령의 장례식을 찾지 않았고, 고인의 추모를 위한 영상메시지나 서면메시지를 보내달라는 친노계 인사들의 부탁도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그는 같은 해 7월 제주를 방문했음에도 김해 봉하마을을 들르지 않아 빈축을 샀다.

반 총장은 2011년 12월이 돼서야 노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했다. 공교롭게도 반 총장이 새누리당(당시 한나라당) 소속으로 2017년 대선에 출마하려 든다는 후문이 처음으로 돌았던 시기였다. 이후 반 총장과 친노의 관계는 악화될 대로 악화됐다.

이와 관련, 앞선 야권의 한 관계자는 13일 <시사오늘>과 한 통화에서 "반 총장의 화해 제스처를 친노 진영이 받지 않은 꼴이 돼 버렸다"며 "대권을 노리는 반 총장으로서는 친노와의 관계개선이라는 정치적 숙제를 풀지 못한 것에 대한 명분이 생긴 것"이라고 말했다.

반 총장은 회동 불발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 의원과 (참여정부) 내각에서 같이 근무했고, 깊이 존경하는 사이다. 만남을 기대했는데 오해가 있었는지 만나지 못해 서운하다"며 "유엔 총장 후보 때 노 전 대통령과 당시 국무총리였던 이 의원이 많이 도와줬고, 특별한 분이라 만났으면 했다. 기회가 있다면 추후에라도 만나고 싶다"고 했다.

반면, 이 의원은 13일(현지시간 12일) 로스앤젤레스(LA) 한인타운 윌셔아로마센터에서 열린 재미교포 초청 강연회에서 "정치에서는 리더십이 중요하다. 기면 기고, 아닌 건 아닌 것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며 "반 총장은 긴가민가하고 애매모호해서 외교관으로서는 최고의 자질을 지녔다. (그러나) 국가를 이끌어갈 사람은 긴가민가, 애매모호해서는 안 된다. 외교관은 이런 일을 잘 이끌 수 없고, 반 총장도 (대권 도전을) 하지 않으리라고 본다"고 말했다.

담당업무 : 건설·부동산을 중심으로 산업계 전반을 담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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