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파견법]19세 청년의 죽음이 외치는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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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파견법]19세 청년의 죽음이 외치는 '메시지'
  • 정진호 기자
  • 승인 2016.06.14 17: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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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양산은 제2, 제3의 희생자 만들 것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지난달 28일,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일어난 사고는 국민들에게 더할 수 없는 슬픔을 안겼다. 만19세 청년이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스크린도어 고장 수리에 매달리다가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은 안타까움을 넘어 분노로 다가왔다. 지금도 구의역에 붙어 있는 수많은 추모 메시지는 이 사건에 대한 국민들의 비탄을 짐작케 한다.

그러나 이 사건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구의역 사고는 우연이나 개인적 실수에서 비롯된 사건이 아닌, 구조적 문제로부터 파생된 것이기 때문이다. 표면화되지 않은 구조적 문제를 파헤치고 해결하지 않는 한, 지금도 어디에선가 일어나고 있는 제2, 제3의 구의역 사고를 막을 도리가 없다. 

▲ 구의역에 붙어 있는 추모 메시지 ⓒ 시사오늘

‘늘 잃고 나서 울어 미안합니다. 영면 하소서…’

구의역에 붙어 있는 추모 메시지 중 하나다. 또 한 번 ‘잃고 나서 우는’,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구의역 사건의 뒤에 숨어 있는 문제의 본질부터 파악하고 해결해야 한다.

내 돈부터 아끼고 보자

구의역 사고의 일차적 원인은 ‘도급’ 계약이다. 도급이란 당사자의 일방이 어느 일을 완성할 것을 약정하고 상대방이 그 일의 결과에 대해 보수를 지급할 것을 약정함으로써 성립하는 계약이다. 쉽게 말해, A사가 B사에게 돈을 주고 스크린도어 정비 업무를 맡기면, B사가 근로자 고용부터 스크린도어 수리, 안전장비 구입, 안전사고 예방 교육 등을 모두 도맡는다.

문제는 도급계약의 목적이 ‘비용 절감’이라는 데 있다. A사가 직접 노동자를 고용하고 ‘책임’지려면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B사에게 하청을 준다. 이 과정에서 B사는 계약을 따내기 위해 경쟁사보다 낮은 금액을 제시해야 한다. 즉, B사는 A사가 들여야 할 비용보다 턱없이 낮은 비용으로 일을 처리해야 하는 셈이다. 이러다 보니 B사는 인건비를 최소화하고, 훈련비, 교육비 등 당장 필요해보이지 않는 항목에서 이윤을 뽑아내려 한다.

구의역 사고 역시 이러한 구조적 문제가 작용한 결과였다. 서울메트로의 하청업체인 은성PSD에 소속된 김 씨는 144만 원의 월급을 받고 ‘나홀로’ 스크린도어 정비 업무를 수행했다. 도급계약의 특성상, 하청업체는 가급적 적은 인원에게 최소한의 임금을 지급함으로써 인건비 비용 지출을 최소화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구의역 사고는 원청업체가 ‘내 돈’을 아끼기 위해 하청업체에게 희생을 요구하고, 하청업체가 ‘내 돈’을 아끼기 위해 근로자에게 희생을 요구하는 도급 시스템이 만들어낸 비극이었다. 

▲ 그의 죽음은 불의의 사고가 아니다 ⓒ 시사오늘

비정규직에게는 말할 권리도 없다

구의역 사고에서 또 하나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은, 김 씨가 ‘왜 혼자서 업무를 할 수밖에 없었는가’ 하는 부분이다. 김 씨는 점심식사를 할 시간이 없어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그조차도 ‘장애가 나면 1시간 안에 가서 처리해야 한다’는 규정으로 인해 제대로 먹을 여유가 없었다. 또 안전업무를 위해서는 ‘2인 1조’로 움직여야 하지만, 인력 부족으로 혼자서 과도한 영역을 커버해야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근로자로서 사용자에게 항의해야 하는 상황이었으나, 김 씨가 할 수 있었던 일은 ‘직장 생활은 원래 다 힘든 것’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버텨내는 것밖에 없었다. 그는 비정규직이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33조는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고 규정해 놨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비정규직은 근로3권을 누리기 어렵다. 비정규직이란 일정한 기간의 노무급부를 목적으로 사용자와 근로자가 한시적으로 근로관계를 맺는 고용형태를 말한다. 사용자가 ‘재계약 불가’를 통보할 경우, 비정규직은 한 순간 실업자 신세가 된다. 이처럼 근로관계에서 ‘절대약자’인 비정규직에게 ‘자기 권리를 찾기 위해서 스스로 노조를 결성하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일 수밖에 없다.

실제로 지난 4월 26일 고용노동부가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비정규직 근로자의 노동조합 가입률은 1.5%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대적 약자인 근로자가 사용자에 맞서 환경 개선을 요구할 수 있는 방법이 노동조합 결성과 단체교섭, 단체행동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비정규직에게는 ‘순종’ 외에 택할 수 있는 선택지가 없는 것이다.

이처럼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상황이다 보니 비정규직은 약자의 지위를 벗어날 수 없고, 약자의 지위를 벗어날 수 없다 보니 열악한 환경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일할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쌍용차 해고노동자인 고동민 씨는 지난 2일 CBS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서 “하청에 또 재하청, 이런 영세 중소 공업사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노조에 가입하면 해고가 된다”며 “노동자 스스로의 자기 방어가 불가능한 구조”라고 지적했다. 하청업체와 근로자에게 희생을 요구하는 도급계약도 문제지만, 비정규직이라는 지위 탓에 최소한의 자기 보호 장치조차 갖출 수 없는 시스템부터 고쳐야 한다는 이야기다. 

▲ ‘비정규직이라 죽었다’는 한 시민의 메시지는 이번 사건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고 있다 ⓒ 시사오늘

19세 비정규직 청년의 죽음, 그리고 파견법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4월 26일 청와대에서 있었던 주요 언론사 편집·보도국장 오찬 간담회에서 “노동개혁법 중에서 파견법을 자꾸 빼자고 하는데 파견법이야 말로 일석사조(一石四鳥)쯤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3일 제20대 국회 개원 연설에서는 “중장년 근로자, 뿌리산업 근로자 파견근로가 허용되어야 일자리에서 밀려나는 근로자가 재취업할 수 있다”며 파견법 통과를 재차 요청했다.

1998년 만들어진 현행 파견법(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은 행정·운전·청소 등 32개 업종에만 파견을 허용하고 있는 반면, 정부여당이 발의한 파견법 개정안은 ‘55살 이상 고령자’와 ‘전문직 종사 고소득자’의 파견을 확대하고 ‘뿌리산업’(주조, 금형, 용접, 소성가공, 표면처리, 열처리 등 제조업의 근간을 이루는 기초공정산업)의 파견을 허용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파견법 개정안 통과가 수만 개의 일자리 창출 효과를 낸다는 주장을 고스란히 믿을 수는 없지만, 고용 창출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점에는 공감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그러나 과연 ‘일자리만 창출되면 다 좋은 것인가’라는 질문에는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일자리는 사람답게, 행복하게 살기 위한 ‘수단’일 뿐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기 때문이다.

기업의 최대 목표가 ‘이윤 추구’라고 보면, 파견법이 통과될 경우 기업들은 정규직 고용을 최소화하고 파견근로자 활용을 극대화할 공산이 크다. 파견법 통과를 통해 만들어지는 일자리 대부분은 비정규직이라는 의미다. 그리고 비정규직은 사람답게, 행복하게 살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일자리와는 거리가 멀다.

우리 근로기준법 제23조 1항은 ‘사용자는 근로자에게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 휴직, 정직, 전직, 감봉, 그 밖의 징벌(懲罰)을 하지 못한다’고 규정해뒀다. 정규직이 근로3권을 제한 없이 향유할 수 있는 배경에는 이 같은 ‘법의 보호’가 있다. 하지만 비정규직은 계약기간이 끝나면 재계약 불가를 통보하는 것만으로도 근로관계를 종료할 수 있다. 계약 연장을 위한 ‘성과’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것이 비정규직의 처지다. 이처럼 불합리한 처우를 받더라도 환경 개선을 요구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닌 비정규직의 양산은 ‘컵라면 하나 먹을 시간도 없이’ 지하철역을 누비는 제2, 제3의 김 씨를 탄생시킬 수도 있다.

김 씨의 사고는 표면적 문제는 도급이다. 그러나 더 깊이 파고들어 보면, 차별 대우를 받는 비정규직의 상황과, 그것을 ‘각개격파’해야 하는 시스템적 한계가 자리하고 있다. 

▲ 추모 메시지로 가득한 구의역 ⓒ 시사오늘

김 씨의 어머니는 지난 1일 〈MBN〉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자기가 운이 좋은 것 같다고. 저희도 그(정직원이 될 거라는) 얘기 듣고 운이 좋다고 얘기했어요. 메트로 쪽에서 자회사가 된대요. 자기네 회사가. 자회사가 되면 준공무원이라 월급도 좋아지고…정년도 63세 보장되고 이런 얘기 하면서….”

김 씨는 왜 그토록 정직원이 되고 싶어 했을까. 어쩌면 정규직이 되는 것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길이라고 믿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담당업무 : 국회 및 국민의힘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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