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형우, 네놈이 야당 의원 중 가장 악질이지”
스크롤 이동 상태바
“최형우, 네놈이 야당 의원 중 가장 악질이지”
  • 정세운 기자
  • 승인 2009.04.27 22: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③YS 대통령 만들기

YS와 최형우. 이들은 정치를 하는 동안 많은 갈등도 있었지만, 최형우의 ‘YS 대통령 만들기’를 위한 노력에 비하면 작은 에피소드에 지나지 않는다. 그야말로 사선(死線)을 넘나들며 ‘YS 대통령 만들기’를 위해 최형우는 헌신적으로 뛰었다. 몇가지 일화를 소개한다.

"김영삼의 정치자금줄을 말하지 않고는 나갈 수 없다“
 
#1. 유신이 선포된 지 일주일이 지난 72년 10월 25일.

최형우의 성산동 자택에 검은색 가죽점퍼를 입은 다섯 명의 사복 경찰관이 들이 닥쳤다. 이들은 신발을 벗지 않은 채 집안을 샅샅이 뒤져 서류 등을 압수한 뒤 최형우를 다짜고짜 집 앞에 세워놓았던 검은색 승용차에 태웠다.

최형우는 긴장됐지만, 이들 사복경찰에게 농담을 건넸다.

“형사들은 검은색을 좋아하나봐. 차도 옷도 모두 검정색이네.”

“이 새끼 겁 대가리 없는 놈이라더니….”

최형우의 농담을 이렇게 받아치곤, 그를 영등포 5관구 헌병대로 데려갔다.

“최형우 이 새끼!, 그동안 잘도 나불댔지. 여기가 어딘 줄 알아. 네놈이 야당의원 중 가장 악질이지.”

중앙정보부 기관원은 최형우에게 이렇게 겁을 준 후 가혹하게 고문을 했다. 이유는 김영삼의 정치 자금줄을 대라는 것.

기관원은 “이놈아, 네놈이 아무리 겁 대가리 없는 놈이라고 해도 김영삼의 정치 자금줄을 말하지 않고는 이곳을 나갈 수 없다”고 엄포를 놓았다.

최형우는 자신의 자서전에서 당시의 고문사건을 이렇게 회고했다.

“기관원들은 나를 발가 벗겨놓고 구둣발로 마구 짓밟았다. 그런 다음 내 손을 모아 깍지를 끼게 한 다음 포승줄로 묶었다. 그 다음 내 얼굴에다 사정없이 물을 들이부었다. 죽지 않으려면 물을 먹어야 했다. 물을 먹인 다음 전기 봉으로 몸을 지졌다. 정말 수치심으로 피가 거꾸로 쏟아 올랐다.

‘YS의 정치자금을 대라’며 기관원들의 무차별적인 고문에도 최형우는 “모른다”고 버텼다.
최형우는 물고문에 전기고문을 당하고 1주일여 만에 만신창이가 된 채 풀려났다. 최형우는 YS를 보호하기 위해 모진 고문을 이겨냈다.
 
“잠시 죽는 것 같지만 영원히 살길을 택할 것이다”

#2. 79년 유신말기.

YS는 박정희와 정면대결을 선언했다. 이에 대해 박 정권은 ‘YS 제거’에 나섰다.
우선 YS 주변 인물들을 옭아맸다. 박 정권은 김영삼 직계로 분류되던 문부식 김덕룡 등이 긴급조치위반으로 구속하고, 서석재 문정수 등을 지명 수배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총재 가처분 파동’이다.

신민당 원외위원장 윤완중 등 세 명이 “5.30 전당대회 때 대의원 자격이 없는 조윤형 등이 투표에 참여했으므로 김영삼의 당선은 무효”라며 총재직무 집행정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했다.

결국 가처분신청은 서울민사지법 합의 16부에 의해 받아들여져 김영삼의 총재 자격이 박탈되고, 전당대회의장 정운갑이 총재 직무대행자로 선임됐다.

신민당 총재직을 빼앗은 박 정권은 김영삼의 의원직마저 박탈하기 위해 기회를 호시탐탐 엿보고 있었다.

그러던 중 김영삼은 뉴욕타임스 기자회견을 통해 “한국정부의 민주화를 위해 미국은 나설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박 정권과 공화당은 이를 ‘사대주의적 망언’이라고 규정하고, YS에 대한 의원직 제명 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김영삼이 제명되기 하루 전인 79년 10월 3일.

“따르릉”

김영삼의 상도동 자택에 전화가 울렸다.

당시는 도청이 극성을 부리던 시절이라 김영삼은 미리 암호를 대야만 전화를 받았다. 가령 전화 건 사람이 “가회동 김사장입니다”하고 암호를 대면 비서가 전화를 바꾸는 식이었다.

그 날도 비서가 전화를 받자, “가회동 김사장입니다”라는 멘트가 흘러나왔다.

김영삼이 전화를 받자“저 김부장입니다”는 말이 나왔다.

김영삼은 속으로 ‘김재규’라고 직감하며, 이들이 계속해서 내 전화를 도청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모르는 채 할 수밖에 없었다.

“김 부장이라니.”

“중앙정보부 김재규입니다.”

“김 부장이 무슨 일로 나에게 전화를 합니까?”

김재규는 만나기 싫다는 김영삼에게 “나라를 위해 만나야 한다”며 설득했다.

김영삼을 만난 김재규는 타협점을 제시했다.

“이미 김 총재에 대한 제명명령이 공화당에 내려갔습니다. 내일 아침 기자들과 환담하면서 뉴욕타임스 기자회견은 다소 과장되고 와전된 것 이라는 말을 해 주십시오. 그러면 최악의 상황은 면할 수 있습니다.”

“김 부장, 나는 제명을 당하든 감옥에 가든 상관없소. 나는 잠시 살기위해 영원히 죽는 길을 택하지 않고 잠시 죽는 것 같지만 영원히 살길을 택할 것이오.”

YS는 김재규의 협상안을 단호히 거부했다.

결국 공화당은 김영삼에 대한 제명 동의안을 10분만에 날치기로 변칙 처리 시켰다.

김영삼을 제거했다고 판단한 박 정권은 마지막 남은 YS의 오른팔인 최형우 설득에 나섰다.

김영삼 의원직 제명을 처리하고 하루 지난 10월 15일 서울 신라호텔.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은 최형우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다 끝났소. 김영삼의 팔다리는 잘려나갔소. 문부식 김덕룡 등은 구속됐고, 서석재 문정수 등은 수배 중이요. 당신을 구속하라는 지시가 떨어졌소. 당신이 살길은 당기위원장과 정무위원직을 사퇴하는 것이요. 더 이상 고집을 피우지 말고 살 길을 찾읍시다.”

최형우의 사퇴를 요구한 이유는 정운갑 총재직무대행 체재를 구축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참에 YS를 아예 정치권에서 사라지게 하려는 계획이었던 것.

최형우는 이에 대해 강하게 맞섰다.

“당직을 사퇴할 수 없소. 차라리 정치를 그만두게 하고 나를 감옥에 집어 넣으시오.”
최형우는 자신의 자서전을 통해 당시 상황을 이렇게 밝혔다.

“내가 당직을 포기하는 것은 문제가 안된다. 하지만 내가 당직을 놓는 순간 YS가 정치권에서 사라질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몰려왔다. 차라리 감옥에 가겠다는 심정으로 버텼다.”
아무튼 최형우의 버티기 덕분인지, 박정희의 ‘김영삼 제거’는 부메랑이 돼 자신에게 돌아온다.

김영삼의 의원직 제명은 부산과 마산에서 유신철폐를 요구하는 대학생들과 시민들의 시위로 번져 나갔다.

이른바 ‘부마사태’가 난 것. 이로 인해 유신정권은 종말로 치닫는다. <계속>
 

[김영삼-김재규 담판]
 
“박정희는 곧 죽을 거요”
 
 
김영삼의 의원직 제명이 있기 하루 전인 79년 10월 3일.

중앙정보부장인 김재규는 김영삼을 만나 담판을 지려했다. 그 시간 속으로 들어가 보자.

김영삼과 김재규는 장충동 중앙정보부 공관에서 단둘이 만났다. 김재규는 전날 밤 박정희와 늦게까지 술을 마시면서 김영삼의 제명문제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다며 말을 이었다.

“제가 각하께 강력히 말했습니다. 김영삼 총재를 제명해서는 안 된다고…. 만약 계속 일을 진행한다면 큰 사태가 벌어진다고….”

“그랬더니 박정희가 뭐라고 합니까.”

“‘이미 끝난 일이다. 박준규 당의장에게 지시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시간을 달라. 김 총재를 내가 만나보겠다고 해서 이렇게 자리를 마련하게 된 겁니다.”

그러면서 김재규는 김영삼에 대한 박정희의 감정이 극에 달해 있다면서 박 정권이 김영삼의 제명이나 구속은 물론 죽이려 들 것이라며 설득했다.

김재규는 나라와 김영삼을 위하는 것이라면서 말을 이었다.

“내일 아침에 국회에 나갈 때 잠깐만 기자실에 들렀다가 가주시면 좋겠습니다. 뉴욕타임스 회견내용이 와전되었다고만 해 주십시오.”

“절대 그럴 수 없소. 뉴욕타임스의 기사는 분명히 내가 한 말이고 사실인데, 왜 취소를 하나. 나는 제명을 택하겠다. 구속을 해도 전혀 두렵지 않소.”

김재규도 물러서지 않고, 설득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이 나라도 총재님도 불행해 집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막아야 됩니다.”

“나를 죽이겠다고…. 박정희가 먼저 죽을 거요. 김 부장도 조심하시오.”

그러면서 김영삼은 “더 이상 할 말이 없으면 갑니다”고 하자 김재규는 따라 나와 차문을 열어주며 “총재님 또 뵙겠습니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영삼은 단호히 말했다.

“김 부장을 다시 만난 일은 없을 거요.”

김영삼의 말처럼 그 후 박정희는 비참한 최후를 맞았고, 김재규는 다시 만날 일이 없게 됐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