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공항 해프닝과 한국사회의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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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공항 해프닝과 한국사회의 민낯
  • 김병묵 기자
  • 승인 2016.06.22 10: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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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포퓰리즘·지역주의·한탕주의의 교훈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김병묵 기자)

동남권 신공항 건설이 21일 김해공항 확장으로 우회하며 사실상 백지화됐다. 신공항에 대한 사전타당성 연구용역을 맡은 프랑스 파리공항공단 엔지니어링(ADPi)은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갖고 “현재 김해공항을 확장하는 방안이 최적의 대안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거의 ‘해프닝’으로 끝맺으며 논란은 일단락 됐지만, 한국 사회의 ‘민낯’을 드러내며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우선 포퓰리즘이다. 정책의 현실성이나 가치판단을 외면하고 우선 급한 표부터 얻으려고 공약을 내놓다 보니, 공약 불이행과 철회가 예사가 됐다.

신공항 사업은 지난 2003년 1월 당시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가 언급하며 등장한 사안이다. 그 다음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07년 영남권 신공항을 대선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됐으나, 2011년 타당성 조사 결과를 이유로 백지화된 바 있다. 하지만 신공항 공약은 얼마 지나지 않아 박근혜 대통령과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대선공약으로 다시 부활했었다. 2016년, 결국 신공항 공약은 공수표(空手票)만 남발한 채 흩어졌다. 밀양과 가덕도를 각각 지지했던 이들에게 허탈감만 안겼다.

포퓰리즘에 대한 유권자들의 인식도 문제다. 공약을 지키지 못한 데 대한 비판보다도, 자신의 평소 지지나 선호에 따른 평가가 많다. 예를 들어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가 공약을 지키지 못할 경우, ‘그 공약은 지키지 않는 게 맞다’고 주장하는 유권자도 있다. 그 결과 돌아온 것은 선거철 포퓰리즘의 만연과 신공항 사태와 같은 혼란이다. 회고적(回顧的) 투표의 실패다.

다음으론 지역주의다. 이번 신공항 유치 경쟁은 대구경북(TK)과 부산경남(PK)의 대립 구도가 됐다. 엄밀히 말하면 대구경북경남과 부산의 대결구도지만, 기본적으로 영남지역의 남북 싸움이다. 매번 거대한 국책사업을 앞두고 벌어지는 유치경쟁, 그리고 님비(NIMBY)현상 등은 점점 지역이기주의 심화를 낳았다.

정치권이 거들며 이러한 지역대립구도는 더 심해졌다. 서병수 부산시장은 ‘공항 유치 실패 땐 사퇴’라는 초강수를 뒀고, 문 전 대표는 ‘부산에 국회의원 5명을 만들어주시면 공항을 유치하겠다’고 호언했다. 실제로 최인호 의원을 비롯한 더불어민주당의 부산 의원들 5인은 가덕도 유치운동의 최선봉에 섰다.

TK쪽도 가만있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의원(대구수성구갑)은 밀양 유치를 위해 직접 전단지를 돌리기도 했고, 부산을 제외한 대구경북울산 등의 지자체장들이 모여 대책회의를 열기도 했다. 이 와중에 ‘TK 정권의 PK 홀대론’이 나오는 등, 신공한 유치경쟁은 감정싸움으로 번지며 지역간 갈등이 악화일로를 걸었다.

또한 ‘한탕주의’의 그늘도 반영됐다. 신공항 백지화 발표와 함께 관련된 주식, 부동산 투자자들은 일대 혼란에 빠졌다. 한 순간에 땅값이 요동치며 경남 밀양과 부산 가덕도 인근 토지를 매입했던 이들은 망연자실했고, 김해공항 인근 부지의 가치는 치솟기 시작했다. 소위 ‘테마주’라고 불리는 관련주가도 큰 폭으로 떨어졌다. D증권사의 한 관계자는 지난 21일 신공항 백지화 발표 뒤 <시사오늘>과의 통화에서 “신공항 관련 투자자들의 큰 피해가 예상된다”며 “테마주 폭등을 노리고 빚을 내는 등 무분별한 투자를 한 경우, 손실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와 관련, 한국 사회에 만연한 투자를 넘어선 투기(投機)심리가 드러났다는 지적도 나왔다.

서울에서 부동산을 운영하는 한 업계관계자는 22일 <시사오늘>과의 통화에서 “부동산은 좀처럼 손해를 보지 않는 상품처럼 인식되고 있지만, 한방에 폭등으로 인한 차익을 노리는 사람들이 너무 늘어났다”며 “그간 신화(神話)처럼 전해진 몇몇 잘못된 사례들 때문에 혹해서 달려들었다가 ‘쫄딱 망하는’ 이들을 여럿 봤다. 신공항 관련해서도 틀림없이 많은 피해가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신공항 백지화 판단 자체는 정부와 전문가들의 몫이고, 최종적으로 어떤 귀결로 맺어질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번 해프닝을 겪으며 상처만 남기기엔 너무도 허무하다. 이참에 알게 된 우리의 환부(患部)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고 넘어가야 하지 않을까.

 

담당업무 : 게임·공기업 / 국회 정무위원회
좌우명 : 행동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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