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와 브렉시트, 그리고 신자유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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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와 브렉시트, 그리고 신자유주의
  • 정진호 기자
  • 승인 2016.06.28 17: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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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反신자유주의의 핵심은 자본 규제…트럼프·브렉시트 공약과는 달라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지난 5월 말,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가 되기 위한 매직 넘버를 돌파했습니다. 모두가 무시했던 ‘막말꾼’이 세계 최강대국의 유력 대선 후보로 이름을 올린 순간이었습니다. 멕시코와 맞닿은 국경지역에 장벽을 설치하고, 테러 위협이 감지될 경우 무슬림 전체의 미국 입국을 금지하며, 불법이민자를 추방하겠다는 그의 공약은 이제 실현가능한 주장이 됐습니다.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난 6월 말,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독일·프랑스와 함께 유럽연합(EU)을 사실상 이끌다시피 했던 영국이 EU 탈퇴(브렉시트)를 선언한 것입니다. 브렉시트를 이끈 이른바 ‘탈퇴파’는 영국민들의 자유무역주의에 대한 반감과 이민자 증가가 가져올 불안감을 자극해 뜻을 이뤘습니다.

이처럼 자본주의의 심장이자 자유주의의 상징과도 같은 미국·영국이 ‘뜻밖의 결정’을 내린 데 대해 일각에서는 미국인과 영국인이 ‘반(反) 신자유주의 바람에 응답했다’는 말이 나옵니다. 이민 제한과 보호무역주의가 ‘우리가 벌어 우리끼리 나눠먹는다’는 성향과 부합하는 까닭에, 노동과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전제로 하는 신자유주의에 반하는 면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의 본질과, 그것이 낳은 양극화의 근본 원인을 살펴보면 트럼프와 탈퇴파의 주장을 반 신자유주의라고 정의하기는 어렵습니다. ‘21세기 자본론’으로 유명한 토마 피케티에 따르면, 역사적으로 자본 소득은 노동 소득을 항상 앞질렀으며, 그 증가 속도 또한 훨씬 빨랐습니다.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평등이 실현됐던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예외적 기간은 누진세의 효과였지요. 즉 자본 소득과 노동 소득의 불균형, 즉 경제적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시장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했다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시장에 대한 불(不)개입을 특징으로 하는 신자유주의는 경제적 양극화를 방관해왔습니다. 반 신자유주의는 바로 이런 흐름에 대한 대안입니다. 다시 말하면, 끝없이 팽창하는 자본에 대한 국가의 적극적인 개입과, 그를 통한 불평등 해소가 반 신자유주의의 본질적 특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트럼프는 경선 과정에서 “내가 대통령이 되면 도드·프랭크법을 손봐 금융규제를 완화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도드·프랭크법은 2008년 리먼 브라더스 사태 이후 금융위기 재발을 막기 위해 도입된 금융개혁법으로, 월가에 대한 대대적 규제 강화를 골자로 하는 법안입니다. 이민 제한, 보호무역주의 등 실물 경제에서는 ‘반 신자유주의’ 깜빡이를 켜놓고, 정작 핵심인 금융에 대해서는 규제 철폐를 내건 것입니다.

이는 탈퇴파도 마찬가지입니다. 탈퇴파는 ‘이민자들이 영국민들의 복지를 줄이고 일자리를 빼앗아가고 있다’는 감정적 호소에만 집중했을 뿐, 자본 규제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트럼프와 탈퇴파의 공약이 신자유주의의 대안이나 해결책으로 기능한다고 보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트럼프는 미국, 특히 백인남성을 중심으로 퍼져있는 우월주의를 자극하기 위해 이민자들을 적으로 돌리는 전략을 취했습니다. 탈퇴파 역시 브렉시트를 성공시키려 영국민들의 이민자에 대한 불안감을 악용했습니다. 이들은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이민 제한과 보호무역주의라는 자극적이고 미시적 해결책을 증폭시키는 데 천착했을 뿐, 신자유주의가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금융과 자본의 문제에는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를 기점으로 신자유주의의 전성기는 막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지금 트럼프와 탈퇴파가 내세우고 있는 이민 제한과 보호무역주의는 신자유주의의 대안이 아닙니다. 표면적인 현상에 시선을 빼앗기기보다는 근본적 원인을 통찰하고 해결하는 태도야말로 신자유주의 시대의 끝에 서있는 우리가 가져야 할 올바른 태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담당업무 : 국회 및 국민의힘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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