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장마철, 물을 만만하게 보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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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장마철, 물을 만만하게 보지 마세요
  • 글 이성촌 구조대장/정리 박근홍 기자
  • 승인 2016.07.03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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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촌 구조대장의 출동 이야기(7)>시원함을 넘어서는 서늘한 공포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글 이성촌 구조대장/정리 박근홍 기자)

장마가 찾아오고 있다. 예전처럼 많은 비가 내리지는 않지만 해마다 이 계절이 되면 우리 구조대원들은 비상이다. 늘 긴장한 상태로 근무에 임할 수밖에 없다.
 
2011년 7월 26일, 시간당 100mm에 가까운 폭우가 내리던 날이었다. 특별한 출동이 없어서 다행스럽다고 생각하던 오후, 출동벨 소리가 들려왔다. 16시 40분경 서대문구 남가좌동 홍남교 다리 밑에서 단시간에 급격히 불어난 물로 인해 시민 6명이 고립돼 있다는 내용이었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를 오전부터 눈으로 확인했던 터라 긴박한 상황임을 인지하고 신속하게 현장으로 출동했다.

현장에 도착했을 때 6명은 다리 밑 중간지점 쯤에 고립돼 있었다. 우리 구조대원들뿐만 아니라 지나가던 시민들이 모두 걱정스럽게 그들을 바라봤다. 그들은 무릎 정도까지 차오른 물속에 있었지만 생각보다 물도 많이 불지 않은 상태였고 물살도 그리 세지 않아 신속하게 구조하면 그리 어려운 작업이 될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순간에도 비는 계속 내렸고, 물은 육안으로 식별이 될 정도로 급격히 불어나기 시작했다. 점차 물살도 격해졌다. 서둘러 구조작업을 시작해야만 했다.

우선, 고립된 인원이 물살에 휩쓸리지 않도록 대원들이 로프를 타고 내려가 요구조자들의 안전을 확보했다. 그 와중에도 수위는 점점 더 높아져가고 있었다. 요구조자들을 신속하게 안전지대로 구조하기 위해서는 로프를 이용하기 보다는 사다리를 이용해 교각 점검을 위해 설치해 놓은 발판으로 구조하는 게 안전할 것 같다는 판단이 섰다.

이내 사다리를 고정시킨 뒤 사다리 아래쪽과 위쪽으로 대원들을 배치해 요구조자를 1명씩 안전지대로 구조하기 시작했다. 6명의 요구조자 중 5명까지는 큰 문제없이 수월하게 구조작업이 이뤄졌다.

이제 한 명만 더 구조하면 되는 상황이었는데 그때 일이 터졌다. 마지막 요구조자를 올리려는 찰나, 그가 힘없이 쓰러지면서 가슴에 확보한 안전확보줄까지 빠져버렸다.

처음 현장에 도착하고 요구조자들의 상태를 확인했을 때는 약간의 음주사실을 발견한 것 외에는 특이사항이 없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술기운이 오르고 물살에 맞서 적지 않은 시간 버티고 있어 기운도 많이 상한 것이다.

물은 이미 허리까지 차올랐다. 교각 밑이라 다른 곳보다 유속도 빨라 혼자 서있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그런데 요구조자는 자신의 몸을 가눌 수조차 없는 상태인지라 대원에게 몸을 의지해 버렸다. 매우 위험천만한 상황이었다. 자칫 요구조자를 놓칠 수도, 더욱이 우리 대원의 안전조차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요구조자를 잡고 있던 대원은 거센 물살 속에서 구조작업을 진행하느라 체력이 빠진 상태였다. 더욱이 요구조자를 맨손으로 잡고 있는 상황이라 매우 힘겨워 보였다. 혼자서 만취한 요구조자에게 풀어진 안전줄을 다시 묶고 구조작업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신속하게 한명의 대원이 안전줄을 확보하고 물속으로 뛰어들어 구조작업을 도왔다.

요구조자의 의식이 혼미한 상태였기 때문에 로프와 사다리만으로 작업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판단해, 바스켓들것을 이용하기로 했다. 로프로 안전을 확보한 바스켓들것을 물속에 있는 대원들에게 내려 보냈다. 두 명의 대원이 힘겹게 요구조자를 들것에 실었다. 대기하던 대원들이 모두 투입돼 들것을 올렸고, 요구조자는 사투를 벌인 물살에서 겨우 벗어날 수 있었다. 요구조자는 즉시 구급차로 병원에 이송됐다. 건강상에 별 문제는 없었다고 한다.

그날 그분들처럼 더운 여름 날씨에 야외로 나가 다리 밑에서 약주도 한잔 하고, 서로 어울려 시간을 보내는 것은 누가 봐도 잘못된 일은 아니다. 자연스럽게 피서를 즐겼을 뿐이다.

다만 기상상황이 좋지 않을 때는 상당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하천이나 계곡물은 매우 단시간에 불고 물살도 순식간에 세지기 때문이다.

사실 어린아이가 아니라면 누구나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지만, 이러한 사고를 당하는 이유는 이를 너무 쉽게 생각하거나 만만하게 보는 안전불감증 탓이 크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무더운 여름 시원함을 느끼게 해주는 하천이나 계곡물이 비로 인해 불면, 시원함을 넘어서 서늘한 공포를 가져다준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구조작업을 마치고 그전에 구조한 5명의 요구조자는 괜찮은지 확인하려 했으나, 그들은 이미 아무런 말없이 자리를 피했다고 한다. 본인들도 물을 만만하게 봤던 사실이 창피하다고 느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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