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말벌 한 통, 그리고 김치 한 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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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말벌 한 통, 그리고 김치 한 통
  • 글 이성촌 구조대장/정리 박근홍 기자
  • 승인 2016.07.10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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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촌 구조대장의 출동 이야기(8)>할머니의 항아리에 담긴 119 사랑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글 이성촌 구조대장/정리 박근홍 기자)

무더운 열대야 속에서의 야간근무, “아휴 더워, 아휴 더워”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흘러나온다. 정부의 에너지 절약 시책에 동참하느라 마음대로 에어컨을 틀지도 못하고, 그나마 사무실의 뜨거운 열기를 조금이나마 씻어주던 선풍기 몇 대도 시간이 흐르면서 온풍기가 돼 버린다.

출근하자마자 환복한 근무복에 땀자국이 스멀스멀 물들 때 즈음, 출동 지령이 떨어졌다. 아니나 다를까 ‘말벌 출동’건이다. 해마다 이맘때면 말벌이 기승을 부릴 때다. 말벌과의 전쟁 선포로 대한민국 119대원들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현장에 도착해 보니 신고자 할머니, 그리고 대여섯 살 남짓으로 보이는 두 명의 손주 녀석이 우리들을 반겼다. “119 아저씨 저기요, 저기”, “나도 구경해야지. 누나도 빨리 와아!” 신난 듯이 말벌이 있는 곳을 안내한다.

녀석들이 가리키는 처마 밑에는 축구공만한 크기의 말벌통이 달려있었다. 손가락 한마디만한 말벌들이 연신 그곳을 들락날락거렸다. 마치 우리가 온 것을 알기라도 한듯 ‘웽웽’거리는 소리가 점점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일단 안전을 위해 아이들을 집으로 들여보내고, 우리 대원들은 말벌 퇴치를 위한 복장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건물 옥상으로 올라가 로프를 단단히 동여 맨 뒤, 옥상에서 하강해 포대자루에 수백 마리의 말벌들을 일망타진! 지상으로 내려온 우리 대원의 이마에선 구슬 같은 땀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말벌에게 한 방도 쏘이지 않았음을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처마 밑에 달린 말벌집을 처리하는 119 대원 ⓒ 은평소방서

그렇게 말벌과의 싸움은 우리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났다. 신고자 할머니께 안전하게 말벌을 퇴치했음을 알리고, 나머지 주의사항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을 해드리는데 할머니께서 손에 들고 있던 김치 한 통을 불쑥 내미셨다.

“이거 아까 금방 담근거여. 가져다 드셔! 막 담가씅께 오늘 바로 먹지 말고 내일이나 먹음 맛있을겨.” 당황한 우리는 “아닙니다. 할머니, 괜찮아요. 저희가 할 일을 했을 뿐이에요. 마음만 감사히 받겠습니다”하고 공손히 말씀드렸다.

그러자 할머니, “이깟 김치가지고 뭘 그랴. 119 아자씨들이 월매나 고생이 많은디”하며 더 막무가내시다. 내가 한 술 더 떠서 “할머니, 그러다가 맛있어서 만날 담가 달라고 하면 어쩌시려고요”하고 말씀을 드리니까, 돌아오는 말이 정겹다.

“에고, 이깟 거 월매든지 담가주지 뭐”

이것을 받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한참을 고민하다가, 우리가 기분 좋게 받아야 할머니 마음도 조금은 편하실 거라는 생각에 결국 김치가 든 항아리를 들었다. 감사히 먹겠다고 인사를 드리고 서로 복귀해서 김치를 꺼내 늦은 저녁을 먹는데,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김치 솜씨도 솜씨지만, 할머니께서 우리 119를 바라보는 그 따뜻한 시선의 맛, 119를 사랑하는 애정의 맛이 서로 잘 양념돼 어우러진 김치의 담백한 맛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께서 주신 김치 한 통의 의미를 소중히 여기고, 그 항아리에 담긴 사랑만큼, 아니 그 이상의 사랑을 시민들에게 돌려드려야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우리 119는 또 다시 차고문을 열고 출동차에 몸을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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