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무리울에서] 계파정치의 생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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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무리울에서] 계파정치의 생명력
  • 권혁식 논설위원
  • 승인 2016.07.13 11: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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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권혁식 논설위원)

새누리당 8·9 전대를 앞두고 당대표 경선이 ‘친박’ 대 ‘비박’ 대결구도로 흐를 조짐을 보이고 있다.  당초 계파색이 옅은 주자들이 출발선상에서 몸을 풀고 있었으나 시간이 갈수록 계파정치의 진한 그림자가 다가오고 있다.  친박계의 맏형 서청원 의원이 강경파의 요청을 받아들여 출마를 선언하고, 그에 맞서 비박계 나경원 의원까지 출마대열에 합류하면 계파대결의 '완결판'이 된다. 

MB정부 때 ‘수평적 당청관계’

친박 주자들이 일반적으로 내세우는 출마 명분은 ‘박근혜 정부의 성공’과 ‘정권 재창출’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다.  정권 재창출은 논외로 치더라도 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바라는 마음은 새누리당 당원뿐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크게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성공’의 잣대가 ‘국가발전’과 ‘국민행복’에 얼마나 공헌했는가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공’을 위한 수단의 하나로 ‘당청관계’를 논하게 되면 입장이 갈린다.  ‘수직적 당청관계’를 비판하는 ‘수평적 당청관계론’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 때는 수평적 당청관계가 몇차례 실효적으로 작동한 적이 있다.  2009년 미디어법 국회 통과 때와 2010년 세종시 수정안 부결 및 원안 가결 때였다.  여당 내 비주류였던 친박계는 MB 행정부의 정책 방향을 ‘확실하게’ 틀어놓았다. 

친박 주자들의 ‘이유 있는’ 출마 명분

현 정부 들어 2015년 유승민 전 원내대표가 시도했던 수평적 당청관계는 실패로 끝났다.  유 전 원내대표는 ‘경제민주화’, ‘증세론’, ‘사드 의총’ 등을 제기하며 행정부와 차별화한 정책목표를 추구했다.  여당 원내대표의 예상치 못한 행보로 국정운영에 다소 혼선이 빚어졌던 것은 사실이다.  유 전 원내대표는 정권의 성공을 위한 간언이라는 입장이지만, 받아들이는 쪽에서는 알레르기 반응이었다.  적어도 현 정부에서는 수평적 당청관계는 성공할 수 없는 모델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친박 주자들이 ‘현 정부의 성공을 뒷받침하겠다’면서 출마에 나선 것은 일견 타당해 보인다.  대신에 정권의 성패(成敗)에 따른 ‘영광’ 또는 ‘책임’은 청와대와 친박 몫으로 돌아갈 것이다. 

계파정치의 보상책 ‘계파공천’

‘국정 뒷받침’ 등이 계파정치의 ‘의무’라면 ‘보상’은 다른 데서 얻는다.  4년마다 돌아오는 총선공천 과정에서 발휘되는 계파의 힘이 그것이다.  2008년 18대, 2012년 19대, 2016년 20대 3차례 공천에서 잇따라 ‘계파공천’이 이뤄졌다.  늘 ‘개혁공천’, ‘물갈이 공천’의 요구는 있기 마련이니, 상대를 희생양으로 내모는 방식이다.  ‘선빵’은 친이 측에서 날렸지만 2타, 3타는 친박에서 먹였다.  ‘학살’ 현장의 잔상이 국민과 의원들 뇌리에 지금도 강하게 남아 있다.  4년 뒤에 반복되지 않는다는 확신이 서지 않는 이상, 계파정치는 계속 생명력을 충전할 개연성이 높다.

지금 경선 무대에 드리워지는 계파의 그림자도 그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8·9 전대에서 특정 계파의 대표성이 강한 당 지도부가 들어서면 계파정치는 내년 대선 정국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당권을 가진 주류 측과 그에 맞서는 비주류 측은 각자 대권 후보를 내세워 생사를 걸고 경선에서 맞붙을 것이다.  이후 전개될 계파 갈등은 ‘2007년 이후’의 복사판이 될 수도 있다. 

조선사화(士禍)와 ‘공천학살’

계파정치가 전적으로 악(惡)이라고 할 수는 없다.  같은 보수정당 내에서도 성향이 좀 달라 계파가 분화되는 것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여·야 간의 견제와 경쟁처럼 당내 주류와 비주류 간의 그것도 정당 발전에 순기능적일 수 있다.  그러나 현재 한국정치의 계파정치가 정당 발전에 얼마나 보탬이 되고 나아가 국가발전에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지는 좀 생각해볼 일이다.  단적으로 조선시대 4대 사화와 3차례 공천학살 사이에는 몇가지 해악(害惡)이 닮았다.  국가 인재의 무차별적인 폐기(廢棄)가 그중 하나다.  반대파에 대한 음모적 ‘숙청’은 공정사회를 꿈꾸고 투명사회를 바라는 국민 정서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어느 시점에서든 현 계파정치의 악순환 고리를 끊기 위한 고민을 한국의 정치인들이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 석사

前 영남일보 서울 정치부 기자

現 시사오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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