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당 주류는 왜 트럼프를 싫어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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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당 주류는 왜 트럼프를 싫어하나
  • 정진호 기자
  • 승인 2016.07.19 16: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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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당 전통 가치 부정하는 정책…지지층 양분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 공화당의 전통적 가치를 공유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 뉴시스

미국 공화당의 ‘축제’가 개막했다. 한국시각으로 19일, 도널드 트럼프를 대선 후보로 공식 선출하는 공화당의 전당대회가 시작됐다. 전통적으로 공화당의 전당대회는 거물급 정치인들이 대거 참석해 찬조 연설로 분위기를 띄우고, 마지막 날 대선 후보의 수락 연설을 듣는 것으로 피날레를 장식하는 ‘출정식’의 성격이 짙다.

그러나 이번 전당대회는 분위기가 다르다. 트럼프의 후보 선출에 반대하는 시위가 행사장 안팎에서 이어지고 있고, 폭력 사태에 대비해 총으로 중무장한 경찰과 주 방위군까지 배치되는 등 전운이 감돌고 있다. 이대로라면 트럼프는 ‘공화당원의 비토를 당하는 공화당 후보’가 될 전망이다.

이처럼 공화당원들이 트럼프에게 거부감을 나타내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그의 과격한 언행 때문이다. 백인남성우월주의자라는 의심을 받고 있는 트럼프는 인종차별적·성차별적 발언을 서슴지 않아왔고, 이는 공화당 내부의 흑인·히스패닉 등 소수 인종과 여성으로부터 비판받는 주된 원인이 됐다. 심지어 골수 공화당원으로 알려진 멕 휘트먼 HP 최고경영자는 트럼프를 아돌프 히틀러에 비유하며 힐러리 클린턴 지지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치 전문가들은 트럼프에 대한 공화당의 비토가 단순히 ‘괴팍한 성품’ 탓만은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그 이전에, 트럼프의 공약과 정책 자체가 공화당의 가치·철학과는 거리가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보수 정당인 공화당의 철학적 기반은 시장지상주의다. ‘레이거니즘’으로 대표되는 공화당의 경제 정책은 조세 감면과 사회복지지출 억제를 기본으로 한다. 공화당은 시장을 가장 자연스러운 체제로 이해하며, 인위적으로 시장에 개입해 ‘자연스러움’을 무너뜨려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공화당이 자유무역주의를 옹호하고 과도한 조세와 사회복지지출을 거부하는 것은 시장에 모든 것을 맡기고, 시장 질서를 파괴하는 모든 시도를 부정적으로 파악하는 가치관에 기인한다.

또한 공화당은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강력한 힘을 동원하는 경향이 있다. 질서는 역설적으로 다수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한 필요조건이므로, 강력한 처벌을 통해 타인의 자유와 시장의 질서를 무너뜨리지 않도록 유도한다. 이는 대외 정책에도 그대로 이어져, ‘악의 축’을 무력으로 공격해 세계의 질서를 유지하는 국제개입주의를 선호한다. 인지심리학자 죠지 레이코프는 저서 〈프레임 전쟁〉에서 공화당의 성격을 ‘엄격한 아버지’로 정의했다. 최대한의 자유를 허용하되, 타인의 자유를 침범하는 데 대해서는 강력한 처벌로 대응하는 것이 공화당의 철학이라는 뜻이다.

반면 트럼프는 공화당의 철학과 가치를 정면으로 부정한다는 지적이다. 우선 트럼프는 부자들의 세금을 올리고, 중산층과 서민의 과세액은 줄이며, 최저임금은 인상하겠다고 공약했다. 인위적으로 부를 재분배하는 이러한 정책은 공화당의 시장지상주의적 전통에 반하는 것이다. 미국인을 보호하기 위해 보호무역주의를 채택하겠다는 주장 또한 시장에서의 경쟁이 전체적인 효용을 증대시킨다는 공화당의 무역 정책과 궤가 다르다.

국제 정책에서도 트럼프는 공화당의 전통에서 벗어나 있다는 말이 나온다. 공화당은 세계 질서를 유지한다는 명목으로 ‘경찰국가’를 자임해왔다. 공정하고 자유로운 인적·물적 교환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질서를 위협하는 ‘악의 축’을 제거해야 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개입주의가 불가피했다. 그러나 트럼프는 ‘미국이 대외적 개입을 줄이고 국내에 눈을 돌려야 한다’는 고립주의적 정책을 추구하겠다고 공언했다. 현지 언론에서는 트럼프의 정책이 ‘오랫동안 공화당이 견지해왔던 대외정책과는 거리가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실제로 공화당 원내 1인자인 폴 라이언 하원의장은 지난 5월 “아직 트럼프를 지지할 준비가 돼있지 않다”며 “트럼프가 보수주의 가치와 원칙을 공유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지방 한 사립대 교수는 19일 〈시사오늘〉과의 통화에서 “트럼프의 말은 당장 듣기에는 좋지만 지나고 보면 아무짝에도 쓸 데가 없는 말”이라며 “불량식품과 똑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대선이 가까워질수록 공화당 내 트럼프 비토 세력이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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