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무리울에서]‘녹취록 폭로’로 드러난 막장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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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무리울에서]‘녹취록 폭로’로 드러난 막장 드라마
  • 권혁식 논설위원
  • 승인 2016.07.19 18: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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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지 목표 달성 위해 '불의'를 불사하며 모든 수단 동원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권혁식 논설위원)

윤상현 의원: 까불면 안된다니까.
김성회 전 의원: 이거 너무 심한 겁박을 하는 거 아니냐.
윤 의원: 형이 얘기한 대통령 뜻을 가르쳐 준거 아냐. 정무수석하고, 경환이형하고, 나하고 대통령, 다 그게 그거 아냐.
윤 의원: (서청원 의원) 뒤에 대통령이 있다니까. 대통령 사람이기 때문에 (피해서) 가야 한다니까. 최경환이 또 전화해야 돼?
김 전의원: 최경환 부총리가 전화하면 내가 할게.
윤 의원: 바로 전화하라 할게.
윤 의원: OO지역은 당연히 보장하지.
김 전 의원: 경선하라고 그럴텐데
윤 의원: 경선하라고 해도 우리가 다 만들지. 친박 브랜드로 '친박이다. 대통령 사람이다.'
김 전 의원: 형이 일단 전화해. 빨리. 형 안하면 사달 난다니까. 형! 내가 별의별 것 다 가지고 있다니까, 형에 대해서. 아이 참.

최근 ‘TV조선’이 보도한 새누리당 친박 핵심 윤상현 의원(인천 남을)과 18대 국회의원을 지낸 김성회 전 의원이 가진 전화통화 녹취록이다.  20대 총선을 앞두고 지난 1월말 윤 의원이 김 전 의원에게 서청원 의원 지역구인 경기 화성갑에 예비후보등록한 것을 철회하고 다른 곳으로 옮길 것을 종용하는 내용이다. 

평소 국회의원들의 공식적인 발언 모습만 보다가 사적인 통화내용을 접하게 되면 그들 의식구조의 한 단면을 들여다 볼 수 있다.

목표 달성 위해 모든 수단 동원
먼저 윤 의원은 김 전 의원의 생각을 바꿔놓기 위해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는 느낌이다.  대통령도 팔고(대통령 뜻을 가르쳐준 거야. 뒤에 대통령이 있다니까.),  호가호위도 하고(나하고 대통령, 다 그게 그거 아냐), 겁도 주고 (까불면 안된다니까?) 당근도 제시했다(OO지역은 당연히 보장하지)  평소 ‘승자독식’ 선거구조에서 생존법을 익히다보니  ‘성공’을 위해 다걸기(올인)하는 성향이 엿보인다.

발언 중 백미는 “형! 내가 별의별 것 다 가지고 있다니까, 형에 대해서. 아이 참.”이다.  통화 내내 김 전 의원을 ‘형’, ‘형’이라고 부르며 친근감을 보이면서도 이 대목에서는 ‘협박 카드’를 살짝 내보였다.  김 전 의원이 끝내 거부하면 이미 확보한 ‘약점’이나 ‘치부’를 흔들 수 있다는 의미로 그를 압박했다. 

한 문장에 ‘꿀’과 ‘칼’을 모두 담아
언행의 이중성을 표현하는 말 중에는 ‘구밀복검(口蜜腹劍)’이 있다.  1차적 의미는 입에는 꿀이 있고 배 속에는 칼이 있다는 것이다.  의역하면 ‘말로는 친한 듯하나 속으로는 해칠 생각이 있음’을 뜻한다.  이는 보통사람이라면 ‘꿀’과 ‘칼’은 각각 입과 배 속에 따로 있으며 한 곳에 있기 어렵다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다. 

그런데 윤 의원의 경우 문장 하나에 두 가지가 같이 들어 있다.  말로 친근감을 표시하면서도 뱃속에 있어야할 칼을 입까지 끌어내는 신기(神技)를 가진 듯하다.  만일 김 전 의원이 윤 의원의 얼굴을 보고 대화 중이었다면, ‘형’, ‘형’이란 말 사이에 입안에서 번뜻이는 칼날의 섬광을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마지막 수단은 ‘공수표(空手票)’ 발행
윤 의원이 마지막으로 동원한 수단은 ‘공수표(空手票)’였다.  윤 의원은 김 전 의원이 지역구를 옮기면 그곳 공천을 보장할 것처럼 약속했으나 결과적으로 김 전 의원은 공천을 받지 못했다.  처음부터 이행이 어렵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런 약속을 한 것인지, 아니면 본인의 ‘폭언과 탈당’ 등 예기치 않은 사정으로 약속을 못지킨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그러나 김 전 의원이 이번에 녹취록을 폭로한 것을 보면, ‘약속 이행에 충실하지 않았다’는 불만이 깔려 있는 듯하다.   

최 의원도 연대보증 책임
공수표 책임에선 친박 좌장인 4선 최경환 의원(경북 경산)도 자유롭지 못하다.  윤 의원에 이어 김 전 의원과 통화한 최 의원도 ‘공천을 보장하겠다’는 취지의 약속을 했기 때문이다. 

김 전 의원: 거길 꼭 (공천을) 보장을 해주셔야 한다고, 저를..
최 의원: 그래, 그건 XXX도 보장을 하겠다는 거 아냐..

김 전 의원: 그것이 VIP 뜻이 확실히 맞는 거예요?
최 의원: 그럼, 그럼, 그럼, 그럼. 옆에 보내려고 하는 건 우리가 그렇게 도와주겠다는 것이고..

윤 의원만큼 분명한 어조로 말한 것은 아니지만 얼버무리는 말이라도 결과적으로 윤 의원의 발언을 뒷받침해 줬다.  윤 의원이 자기 코가 석자라서 약속이행을 못했다면, 최 의원은 연대보증인으로서 책임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부당한 거래 제안’, ‘약속 불이행’ 둘다 비난 대상
‘특정인에게 공천을 보장해 준다’는 것은 당헌당규에 어긋나며 결코 정당화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 점이 이들 의원들의 약속 불이행과 식언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약속을 안지켜도 괜찮다’고 생각할 정도로 ‘불의’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면 처음부터 그런 ‘밀거래’를 제안하지 말았어야 옳다.  오로지 목표 달성을 위해 전직 의원에게도 그런 공수표를 날릴 정도라면 일반 유권자들은 어떻게 대할지 걱정이 앞선다.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 석사

前 영남일보 서울 정치부 기자

現 시사오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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