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을 대변할 사람은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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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을 대변할 사람은 없는가?
  • 김재한 대기자
  • 승인 2009.04.30 17: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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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을 위한 변명②
  노무현을 위해 대변하고 항변할 사람이 없다

아프리카의 적도 부근에 사는 피그미족들은 다음과 같은 단계로 질병과 죽음을 표현한다. 열이 있음. 열이 아주 많음. 죽음. 완전히 죽음. 영원히 죽음 등의 단계이다.

최근 노무현 전 대통령(이하 존칭 생략)과 관련한 불미스러운 사건 또한 마찬가지다. 우선 노무현과 밀접한 관련 있는 후원자인 박연차, 강금원씨의 불법과 비리를 시작으로 그의 형인 노건평씨, 정상문씨, 조카 사위인 연모씨, 그리고 노무현의 아들, 마지막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직결된다.

불법과 비리의 실체도 밝혀지기 전에 한 정치인이, 그것도 전직 대통령이 검찰의 실황중계와 언론과 여론의 도마 위에서 몰락했다. 노무현의 범법사실은 법정에서 가려질 일이다. 그런데 재판도 하기 전에 검찰의 일방적인 이야기만 믿고, 진실을 파헤쳐보기도 전에 단안을 내리고 한쪽 방향으로 가고 있다.

▲     ©뉴시스

 
그런데 노무현의 입장을 대변하고 항변해줄 사람은 없다. 노무현을 위한 변명은 없는가? 왜 최소한의 방어권도 주지 않는가? 그것은 부정과 불법 등 비리를 방어하라는 것이 아니다. 지금 흘러가는 일련의 사건들 중에 절차상 잘못되었거나, 잘못 흘러가는 것이 있다면 시시비비를 지적해줄 사람이 있어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법과 이성보다, 감정과 정서가 우선시되고, 여론재판으로, 노무현 스스로가 말한 것처럼, ‘도덕적 명분’을 상실한 상태에서 법리논쟁과 자기방어는 아무런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이성이 지배하고, 법과 원칙이 살아숨쉬는 나라가 발전하는 것은 기본이다. 합리성이 나라를 지배할 때, 이성이 살아숨쉴 때 나라가 발전한다. 5년의 과거를 한 순간에 다 묻어버리겠다는 말인지 묻고싶다.

노무현을 대변할 사람은 없는가. 그는 한때, 5년간 이 나라 대통령을 역임한 사람이다. 노빠는 어디에 갔는가? 왜 그들이 노무현이라는 사람을 좋아했으며, 어느 부분 때문에 그 사람에 매료되었으며, 노무현의 공(功)은 무엇이며, 노무현의 허물은, 잘못은 무엇인가를 이야기할 때 우리의 역사는 발전한다.

숨는다고, 지난 과거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무엇이 잘못되었다고, 어떻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인가를 제시할 때 불행한 역사의 점철은 밟지 않게되는 것이다. 권력의 향수는 누리고, ‘역사의 패자’의 허물은 가지지 않는 세력이 많을 때, 우리의 역사는 더 불행해진다.

노무현은 자기를 지켜줄 정당도 지역도 지지기반도 없다

우리에게는 전직 대통령이 없다.
 
수인(囚人)만 있다. 역사적으로 대통령을 지낸 사람들이 영어의 몸으로 여론의 질타를 받는데, 어떻게 존경의 문화가 만들어지겠는가. 국가의 어른이어야 할 전직 대통령이 개인적인 불법과 비리로 국민의 지탄을 받는데, 어떻게 평화로운 정권교체와 깨끗한 정치문화가 만들어지겠는 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나, 김대중 전 대통령 또한 마찬가지이다. 자신들은 대통령의 직분과 관련된 일로 영어(囹圄)의 신세를 면했지만, 두 전직 대통령의 아들이 구속되는 비극도 있었다. 더 중요한 사실은 두 전직 대통령이 국민적 존경을 받고 있는가. 한 사람은 본인의 통치기간동안 일어난 경제위기로 인해 실패한 대통령으로, 다른 한 사람은 영호남의 지역간 갈등, 남남갈등과 이념대립으로, 한국인으로 유일하게 받은 노벨평화상조차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두 사람이 전직 대통령으로 구속자의 신세가 되지 않은 것은 어디에 있는가? 지역정당. 명사정당(名士政黨)의 정치문화 속에 지지기반이 있는 사람이다. 보호해줄 세력이 있었다. 그러나 노무현은 자기를 지켜줄 정당도, 지역도, 지지기반과 지지세력이 없는 사람이란 차이뿐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엄청나다.

왜 우리 스스로 전통을 만들지 못하는 가? 왜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할 줄 모르는가? 조그마한 허물이 있어도 덮어주고, 이해해주지 못하는 가 하는 점이다. 범법과 부정은 지탄의 대상이요, 또한 처벌을 받아야 할 사항은 분명 맞다. 그러나 그 후유증이 가져올 결과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영원히 존경하는 전직 대통령을 가질 수 없는 역사를 간직할 수 밖에 없다. 다만 종교인과 가까운 청렴과 도덕을 갖춘 대통령을 선택한다면, 가능할 수 있지만 현실은 쉬운 일이다. 모든 것이 정치라는 틀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요,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이 많기 때문이다.

데이비드 크론버그(David Cronberg)의 말을 음미해보자.
"당신이 지금 분뇨통에 빠져 있다면, 당신이 볼 수 있는 것은 분뇨뿐이다. 그러나 어찌하다가 그 위에 떠오른다면, 이제는 그것을 다른 관점에서 보게 될 것이다. 게다가 다른 것들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노무현이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노무현은 깨끗한 선거문화, 권위주의 타파, 지역주의 극복 노력, 퇴임후 탈서울(지방행)과 비정치적인 행보 등 많은 시도를 하였다. 그러나 대부분 미완성에 거쳤으며, 도덕성 상실과 스스로의 지지기반 붕괴로 최소한의 사실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노무현의 대통령 당선은 “노력해서 성공할 수 있다”라는 것을 만천하에 보여주었다. 노무현이 시도한 정치실험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일각에서 나올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정치실험은 분명 실패한다는 사실이다.

허망한 전직 대통령 노무현을 두 눈으로 목도하면서 ‘돈’으로 부터는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또한 ‘권력은 유한(有限)하고 명예는 무한(無限)하다’는 사실과 다변(多辯)은 말로써 망한다는 교훈을 되새기게 한다.

중세 유럽에는 예수님의 성배(聖杯)를 찾아 그 성배로 물을 마시면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는 전설이 있었다. 수많은 리더들이 영원하지는 않더라도 오랫동안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는 그 무언가를 간절히 찾아 헤맨다. 리더들은 “어느 잔으로 물을 받아 마셔야 부작용이 없이 험한 경쟁을 뚫고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라고 묻는다. 우리가 해줄 수 있는 말은 “모든 이해관계자들을 만족시키세요”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어렵다. 다만 균형과 조화속에 만족보다는 불만을 줄이라는 말을 할 수 있다.


▲     © 시사오늘

 
노무현은 태생적으로 생명력을 갖지 못한 리더

 
노무현 이라는 전직 대통령이 오랫동안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모든 이해관계자(국민)들을 만족시킨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만족 보다는 비판세력을 줄이는 길 밖에 없다. 현실적으로 국민적 지지도가 낮은 노무현으로써는 이미 태생적으로 생명력을 가지지 못한 리더중에 한 사람이었다.

“아무리 얇게 썰어도, 소시지는 소시지인 것이다.”(알프레드 스미스. Alfred E. Smith). 우리는 노무현의 정치적 한계를 인정하지 않고, 그의 이상주의에 더 몰입되어 있었는 줄 모른다. 지역정당인 민주당 출신의 대통령, 당내 조차 기반이 없는 대통령, 이러한 지지기반에서 출발한 리더십, 무엇보다 비젼만 가지고는 그 능력을 펼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각인된 노무현의 이미지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런데도 노무현은 스스로의 한계를 인식하지 못하고 다양한 정치실험을 시도하려고 했다.

한번 만들어진 인지 지도를 고치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믿어주세요. 이 뱀은 당신을 물지 않습니다.” “알겠습니다” 이런 대화가 오간다해도 한번 비틀어진 시각은 여간해서 바로잡기가 힘들다. 어떤 문화안에 왜곡된 것이 자리를 잡고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하면, 잘못된 인지 지도를 바꾸는 것은 말로 되는 일이 아니다. 그러나 노무현은 행동보다 말로써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했다. 행동으로, 실천으로 국민들에게 믿음을 주기보다 말로써 상대를 설득하려고 했다. 그는 말로써 국민을 설득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했다.

노무현에게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도록 모든 이해관계자(국민)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지지기반이 없었다. 정권재창출에 실패한 전직 대통령이 겪는 한계도 그에게 남아 있다.

우리는 노무현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컸다. 그 무엇보다도 그에게는 '깨끗함'과 '도덕성'을 가장 많이 기대했다. 또 그것이 그 스스로도 다른 사람과 자신을 가장 차별화짓는 기준이기도 했다. 우리는 지난 십수 년 동안 전직 대통령들이 사회로부터의 존경이 아닌 냉소적인 시선 속에 감옥으로 향하는 것을 보아왔기에 노무현만은 그렇지 않기를 바랐을 것이다.

노무현에게 묻고 싶다. 왜 전직 대통령이 돈이 필요한가? 권력과 명예, 그것도 시정잡배처럼 돈을 모아야만 살아갈 수 있는 가 하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는 “과거는 중요하지 않다. 현재 또한 중요하지 않다. 우리가 신경쓰고 다루어야 할 것은 바로 미래이다”라고 말한다. 그의 말처럼 미래만 중요한가. 아니다. 잘못된 과거라도 우리는 과거를 무시하거나 부정할 수 없다. 다만 잘못된 과거의 반성을 통해서, 새로 태어날 수 있을 때 그 과거의 의미는 중요하다.

그러나 노무현과 그 주변 사람들의 면면의 행동을 보면서, 왜 우리는 아직도 잘못된 과거를 이어가고 있는 가 하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변화는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의 변화, 우리 스스로의 변화 속에서 출발할 때 그 변화와 혁신의 의미와 강도는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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