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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대, "사드에 좌지우지, 朴정부는 가짜 안보"
김종대 국회의원
"朴대통령, 사드배치 긴급 결정은 직접 '핸들링'한 것"
"국가안보, 보수의 전유물로 전락…이데올로그 득실대"
"노무현의 첫인상은 '영민함'…7시간 안보정책 토론"
"20대 국회, 안보민주화 위한 입법활동에 주력하겠다"
2016년 07월 30일 (토) 오지혜 기자 윤슬기 기자 sisaon@sisaon.co.kr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오지혜 기자 윤슬기 기자)

이른바 '사드 정국'이다. 정부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배치 결정으로 나라 안팎이 시끄럽다. 특히, 사드배치 소식에 강력히 반발한 중국 발 후폭풍이 지난 24일 아세안지역안보포럼을 통해 그 전조현상을 드러냈다. 그 외에도 동시다발적인 사드 논란은 정국 현안을 모두 집어삼킨 모양새다.

이 가운데 한 야권 소수정당의 군사전문가가 이목을 끌고 있다. 20대 국회에서 여의도 첫 입성을 이뤄낸 정의당 김종대 의원은 사드 논란으로 여느 때보다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다. 그는 최근 국방위부터 대정부질문, 긴급현안질의까지 정부의 사드배치 논리를 조목조목 지적하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시사오늘>은 지난 2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김 의원을 만났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일정 탓인지 표정에서 피로함이 느껴졌지만, 막상 인터뷰가 시작되자 꼬박 한 시간을 채웠다. 그는 무엇보다 '안보민주화'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안보 현안이 보수진영의 전유물로 전락하는 순간, 국가안보는 전략가가 아닌 이데올로그의 차지가 된다고 주장했다.

   
▲ 김종대 의원은 <시사오늘>과 인터뷰에서 "1987년이 출발점이었다. 의미 없고 지겹고, 또 지옥 같던 군대 생활이 내 삶의 '로고테라피'가 된 셈이다. 로고테라피는 홀로코스트를 몸소 체험했던 정신분석학자 빅터 프랭클이 창안한 것으로, 생존 비결은 삶의 의미부여에 있다는 이론이다. 당시 경험은 군 인권과 양심수 보호, 나아가 평화에 대한 관심으로 확대됐다"고 말했다. ⓒ 시사오늘

"군에서 맞은 1987년, 평생의 진로 결정했다"

-대학 전공이 경제학인 걸 알고 놀랐다. 군사안보 분야에 관심을 가진 계기는.

"1987년 6월 항쟁 당시 군대에 있었다. 계엄군으로 소요사태가 발생하면 인천의 인하대로 출동하게 돼 있었다. 매일 시위진압과 차량탑승 훈련을 했다. 당시 광주항쟁으로부터 7년이 지난 시점이었는데, '제2의 광주'가 발생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게 군 지휘관들이 노골적으로 부대원들을 동요시켰다. 인천 시내로 나가면 너희들 세상이라면서 중국집 쳐들어가서 마음대로 먹어도 된다고 하거나. 다행히 평화적으로 마무리됐지만, 그때 경험으로 다시는 군이 권력의 사병이 돼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면서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어렴풋이나마 자각했다."  

-군 생활이 평생의 진로를 결정하게 된 셈이다.

"1987년이 출발점이었다. 의미 없고 지겹고, 또 지옥 같던 군대 생활이 내 삶의 '로고테라피'가 된 셈이다. 로고테라피는 홀로코스트를 몸소 체험했던 정신분석학자 빅터 프랭클이 창안한 것으로, 생존 비결은 삶의 의미부여에 있다는 이론이다. 당시 경험은 군 인권과 양심수 보호, 나아가 평화에 대한 관심으로 확대됐다."

-대학 졸업 후에는 국회에서 보좌관으로 일했다.

"군을 제대하고 학교에 돌아와 복학생협의회를 만들고 시민단체를 통해 양심수후원사업 등에 참여했다. 그러던 중 뜻밖의 기사를 봤다. 당시 1992년 총선을 앞두고 있었는데, 어떤 한 인물이 정규 육군사관학교 출신으로는 사상 처음으로 김대중 당시 총재가 이끄는 민주당에 입당한다는 내용이었다. 그가 바로 육사 17기 임복진 전 장관이었다. 지금이야 아무 일도 아니지만, 그때만 하더라도 예비역 장성이 야당에 입당한다는 건 '목숨 걸어야 할' 일이었다. 그 기사를 보고 밤새 한숨도 못 잤다. 시민단체 활동에서 한계를 느낀 참이었는데 제도 정치권에서 뜻을 같이 할 분이 있다는 게 설레서. 임 장관을 무작정 찾아가 일하게 해달라고 했고 그분도 선뜻 받아주셨다."

"북풍에도 DJ 대선 승리…국방위 보좌관으로서 자부심 느꼈다"

-보좌관으로 임명된 1993년엔 국방 현안이 쏟아졌다. 

   
▲ 김종대 의원은 <시사오늘>과 인터뷰에서 "임복진 전 의원 보좌관으로 일했던 지난 1997년은 한순간도 잊을 수 없다. 특히 군사전문가로서 북풍 등 안보 문제가 선거의 중심 의제가 됐을 때 그나마 성공적으로 관리됐다는 점에서 큰 자부심을 느꼈다"고 말했다. ⓒ 시사오늘

"어마어마했다. 문민정부가 출범하면서 율곡비리 사건과 하나회 척결, 12·12 국정조사 등 폭풍처럼 쏟아졌다. 모든 국정 현안이 국방위로부터 시작됐다. 군사 정권에서 민간 정부로 교체되는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국회에서는 군 장성 출신의 의원들이 대활약 했고, 무명의 감사원장이던 이회창이 일약 국민적 스타가 됐다. 모두 국방위로부터 나온 일들이다."

율곡비리는 지난 1993년 군전력 현대화 사업인 율곡사업과 관련해 국방부 장관과 장성들이 뇌물을 받은 사건이다. 이와 관련, 이회창 당시 감사원장은 전직 국방부장관을 비롯해 전직 해·공군참모총장, 전직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등 6명을 수뢰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는 등 엄정한 직무수행으로 '대쪽'이라는 별명이 회자되기도 했다.

-임복진 전 의원 보좌관으로 일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1997년 대선을 앞두고 거센 북풍(北風)이 불어닥쳤다. 이른바 '황장엽 리스트'와 '오익제 편지' 사건이다.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인사였던 오익제가 북한 간첩 목록인 황장엽 리스트에 올라와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마자 월북한 뒤, DJ에 편지를 보낸 것이다. 안기부는 DJ를 직접 조사하겠다며 대선 사흘 전까지 출두하라는 명령서를 보냈다. 대선 판을 깨려는 의도였다. 이때문에 임복진 전 의원이 당시 안기부와 기나긴 협상을 통해 조사 일정을 대선 후로 연기했다. DJ는 이같은 최대 고비를 무사히 넘기고 불과 39만 표 차이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헌정사상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룬 것을 바라보며 나 역시 대장정을 마친 기분이었다. 그해는 한순간도 잊을 수 없는데, 특히 군사전문가로서 북풍 등 안보 문제가 선거의 중심 의제가 됐을 때 그나마 성공적으로 관리됐다는 점에서 큰 자부심을 느꼈다."

황장엽 리스트와 오익제 편지 사건 등 당시 대선에 활용된 북풍 소재 대부분은 DJ 집권 이후 공작된 사실임이 밝혀졌다. 

-북풍은 선거철 단골 메뉴다. 지난 2012년 대선 때도 등장했다. 

"(한숨을 쉬며) 지난 2012년 선거에서 제주 강정마을과 NLL이 북풍 소재로 활용됐다. 얼마든지 관리 가능한 사안이었다. 그런데도 야당이 선거에서 지는 걸 보고 DJ 시절 교훈을 잊었구나 싶었다. 오랫동안 이같은 문제를 지켜본 입장에서는 매우 안타까웠다."

-선거캠프에 뚜렷한 군사전문가가 없었다는 의미인가.

"군사안보 전문가가 아니라 정치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자신의 전문성을 접목시킬 줄 아는 일종의 제너럴리스트가 필요했다고 본다. 또 당시 야당과 문재인 후보는 특정 정보에 대해 전문가의 의견이 아니라, 상당히 잘못된 당의 보고에 의존했다. 그러다 보니 NLL 논쟁에서 말실수를 연발했고 결국 보수층을 결집시켜 패배한 것이다. 당시 여론조사 대부분이 야당의 승리를 점쳤다. 한나라당이 국회선진화법을 만든 것도 그 때문 아닌가. 한마디로 '어이없는 패배'였다."

-문재인 대선캠프 당시 정책자문을 맡았다. 직접 이야기해보지 않았나.

"선거캠프에서 NLL 관련 대비가 필요하다고 지속적으로 조언했다. 그런데도 얻어맞겠다고 버티더라. 어차피 선거 이긴다고 확신했던 거다. 선거캠프가 가진 안일함이었다. 또 전문성 결여와 의사결정 왜곡도 문제였다. 민주당은 이보다 더 큰 역경과 시련도 이겨낸 경험이 많았는데. 당에 관여한 이래 가장 크게 실망한 일이었다."

"노무현의 첫인상은 '영민함'…7시간 동안 안보정책 토론"

-보좌관 생활을 마치고 군사평론가로 변신한 시절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만났는데.

   
▲ 김종대 의원은 <시사오늘>과 인터뷰에서 "노무현의 첫인상은 대단히 영민하다는 것이었다. 또 궁금한 건 끝까지 물어봐야 하는 사람이었다. 예를 들어, 2시간 토론을 잡아놓고 7시간이나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고 말했다. ⓒ 시사오늘

"지난 2000년에 국회를 나와서 2년간 군사평론가로서 활동했다. 언론에 자주 출연했지만 불규칙한 수입에 불안을 안고 지냈던 것 같다. 그러던 중 노무현을 만났다. 당시에는 나도 노무현 본인도 대통령이 되리라는 생각은 꿈에도 못 했던 시기였다. 노무현의 첫인상은 대단히 영민하다는 것이었다. 또 궁금한 건 끝까지 물어봐야 하는 사람이었다. 예를 들어, 2시간 토론을 잡아놓고 7시간이나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당시 민주당은 '정풍(整風) 파동'으로 혼란스러웠을 때인데 노무현은 한번 공부를 시작하면 목적이 달성될 때까지 자리를 안 일어섰다. 대권 후보 대다수를 만나봤지만 30분 이상 시간을 내지 않는다. 그런데 노무현은 토론의 깊이도 있고 대화가 재밌어서 가까워졌다. 그 인연이 이듬해 인수위와 참여정부로 이어진 셈이다."

정풍 파동은 지난 2000년 새천년민주당 최고 실세였던 권노갑 최고위원이 정동영 최고위원의 요구로 지도부를 사퇴하고 결국 정계를 은퇴하게 된 사건이다. 당 쇄신이 명목이었다는 점에서, 중국 공산당의 당원 활동 쇄신운동인 정풍 운동에서 따왔다.

-7시간의 토론 내용은 참여정부의 안보정책에 반영됐나.

"가장 중요한 영향을 줬다고 생각한다. 당시 토론에서 내가 자주국방을 거론했더니, 처음엔 '박정희가 했던 구호 아니냐'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래서 왜 자주국방이어야 하는지 설명했는데, 그게 7시간의 토론 주제였던 셈이다. 이후 참여정부에서 '협력적 자주국방' 정책이 나왔다. 전시작전권 환수 등 국방의 자주화를 통해 고양된 주권을 가지고 북한과 중국, 러시아에 접근하겠다는 원대한 비전이다. 그 시작점에 내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 진행 과정에서 여러 의견이 나왔지만 노무현 대통령의 의지가 워낙 강했다."

-참여정부 시절 전시 작전권 환수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임기 마치기 1년 전 전시 작전권을 전환 받기로 미국과 합의했는데 반발이 심했다. 특히, 퇴역 장성들과 정면으로 충돌한 사태가 있었는데 정말 안타까웠다. 노태우 정권에서도 전시 작전권을 환수하겠다는 데 거센 반발이 일었다. 이때문에 타협책으로 나온 게 전·평시를 나눠서 가져오자는 것이었다. YS 정권인 1994년 평시 작전권 환수는 이에 따른 것이다. 그런데 이는 뒤이어 전시작전권 역시 가져온다는 의미다. 전·평시 작전권 주체가 다른 나라가 어디 있나. 가장 비효율적이고 있어선 안 되는 지휘체계 아닌가. 그런데 전시 작전권 환수를 반대하는 것은 군을 이도 저도 아닌 불구 상태로 두자는 거다. 우리나라 안보의 최대 취약점이다. 당시 참여정부 계획대로 갔다면 합참 능력은 일취월장했을 것이다. 당시만 해도 작전계획을 세우고 한미 군사연습을 주도하면서 성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보수정권에 와서 없던 일이 돼버렸다."

"文캠프, NLL 조언에도 안이한 대처…새로움 찾으려고 정의당 입당"

-참여정부에서 핵심적 역할을 했는데, 더불어민주당이 아닌 정의당에 입당한 이유가 궁금하다.

"직접적인 계기는 심상정 대표가 직접 찾아와 제의했을 때다. 보장은 못하지만 힘껏 도와줄 테니 정치인생을 개척해보라고 하더라. 상당히 일목요연하고 허심탄회한 제안이었다. 반면 당시 새정치민주연합은 거듭된 내홍으로 지리멸렬한 상황이었다. 또 앞서 언급했듯이 전문가 조언에도 귀 기울이지 않고, 패배에 익숙한 모습에 실망감이 남아있는 상태였다. 어차피 대선 정국에서는 다 같이 협력할 테고 새로움을 찾아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에 입당했다."

-같은 야권인 더민주와 국민의당의 안보 노선을 비교해 본다면.

"더민주는 지난 총선 직전 테러방지법 필리버스터의 중간 철회와 대북정책에 대한 보수화, 사드배치에 대한 입장을 쭉 살펴보면 꼭 새누리당 같다. 사드배치에 대해 실익이 있다면 반대하지 않겠다고 하는데 이는 찬성으로 봐야 한다. 이처럼 기존 노선에서 상당히 돌아선 모습인데, 과거 선거철마다 공격의 대상이 된 색깔론의 여지를 완전히 제거하겠다는 의도라고 생각한다. 하도 많이 당했기 때문에 이해는 가지만 동의는 할 수 없다. 진짜 색깔론을 극복하려면 더민주만의 안보 철학과 정체성을 갖춰야 한다. 그런데 지금 행보는 보수의 언어를 답습하면서 문제가 해결됐다고 믿는 것과 다름없다. 특히 최근 긴급현안질의에서 이종걸 의원이 '우리 당에는 전문가가 없어 사드배치에 대해 정무적 판단을 했다'고 발언한 걸 보고 믿을 수가 없었다. 결국 외교안보 분야에서 더민주의 역할은 없다는 의미다. 수권 정당으로서 옳은 자세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사드배치 관련 내부 반론도 많다고 해서 조금 더 지켜봐야겠지만 무책임한 태도라는 생각에 아쉬웠다."

-사드배치 반대를 당론으로 정한 국민의당은 어떤가.

"국민의당이야말로 당초 안보는 보수, 경제는 진보를 기조로 세우지 않았나. 그런데 지금은 또 아니라는 점에서 정책의 스펙트럼이 아주 넓고, 예측이 잘 안 되는 정당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선 사드배치에 대한 목소리는 적절했다고 본다. 다만 전문성이 좀 더 뒷받침됐더라면 아쉬움은 남는다. 물론 국민의당 행보의 배경에는 더민주가 못하는 역할에 대한 틈새전략도 깔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 측면에서 조금 더 체질을 강화했으면 좋겠다. 사드 이야기를 한 달 정도 하고 출구전략을 찾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국가안보는 하다 마는 게 아니다. 좀 더 책임감을 가지고 전문성을 뒷받침한다면 제2야당으로 더 발전하지 않을까 싶다."

"朴대통령, 사드배치 긴급 결정은 직접 '핸들링'한 것"

김 의원이 가장 활약하고 있는 안보 현안에 대한 질문으로 넘어가자, 느긋하던 말투가 빨라졌다. 인터뷰 중간중간 쉬던 한숨의 빈도도 잦아졌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이 사드배치 결정을 전적으로 '핸들링' 했기 때문에 일정이 급박하게 추진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대중 외교는 지난해부터 이미 어긋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정부의 사드배치 발표 관련, 가장 비판받는 점이 졸속으로 결정됐다는 점인데.

   
▲ 김종대 의원은 <시사오늘>과 인터뷰에서 "그간 박근혜 정부의 안보 현안에 대한 결정을 살펴보면 놀랄 일도 아니다. 지난해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 결정도 관련 부처 모두 신중론의 입장이었는데도 밀어붙인 거다. 박 대통령의 노선 자체가 강성인 셈이다. 앞서 언급한 결정 모두 당장 북한의 붕괴 또는 항복을 염두에 둔 극단적 전략이다. 이처럼 현실성 없는 구상에 따라 대북 정책을 결정한다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 시사오늘

"사드배치가 얼마나 급박한 결정이었는지 설명해 보겠다. 지난 7일 청와대에서 열린 NSC 상임위원회에서 사드배치가 결정됐다. 그전까지는 국방부에서 결정된 게 없다고 말하던 시점이었다. 그런데 NSC 상임위는 매주 논의할 의제를 사전 통보하는 주례회동이다. 참석자 역시 법적으로 정해져 있다. 직접 확인해본 결과, 당일 NSC 상임위 의제에 사드는 없었다. 즉 현장에서 긴급하게 나왔다는 의미다. 얼마나 급했던지 NSC 상임위가 끝나자마자 중국과 러시아 대사관에 그다음 날 발표 예정이라는 내용이 통보됐다. 발표 당일엔 그 시간마저 오후 3시에서 오전 11시로 당겨졌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백화점 쇼핑'을 갔다고 논란이 됐는데, 그렇게 앞당겨진 줄 몰랐던 거다."

-정부가 그렇게 급박하게 진행한 정치적 배경은.

"사드배치 결정은 당초 9월이나 10월에 발표되기로 했다. 그런데 갑자기 추진된 결정적 원인은 지난달 20일에 발생했다. 이날 유엔안보리의 북한제재결의안, 이른바 '유엔 안보리 결의안 2270호'에 대한 중국의 이행 보고서가 제출됐다. 총 4페이지로 구성됐는데, 내용이랄 게 없었다. 대북제재에 대한 원론적인 선언만 가득할 뿐, 무성의한 보고서에 청와대가 폭발한 셈이다. 그간 박근혜 대통령은 오로지 대북 압박을 위해 정상외교에 투자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아무런 실효성이 없었던 셈이다. 이에 청와대가 대중 카드를 하나 써야겠다고 판단했고, 그게 사드였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국방부와 외교부 등 관계 부처가 따라가지도 못할 긴급한 일정들이 이어졌고, 지난 7일 사전 의제에도 없던 사안을 NSC 상임위에서 논의하게 된 것이다."

-지난해 열병식만 해도 한중 외교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다. 상황이 뒤집힌 이유는.

"열병식 참석이 오히려 화를 불렀다. 지난 9월 중국 전승절 행사에 참여하고 바로 그다음 달 미국에 해명하기 위해서 방미를 결정한 것 아닌가. 연말에 있었던 한일 위안부 졸속 합의와 한미일 합동 군사훈련 역시 같은 맥락이다. 미중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중국과 멀어지기 시작했고 사드배치 결정도 그 연장선상에 있었던 셈이다."

-한반도의 사드배치 결정에 대해 중국 내부에서는 경제적 보복 조치 등 격한 반응이 쏟아졌는데.

"말하자면 아프지 않게 거위털을 뽑는 방식이다. 아프지 않게, 그러나 지속적인 영향을 주는 형태의 조치. 제재라는 표현은 절대 안 쓴다. 이 경우, 북한은 제재 안 하고 남한은 제재한다는 의미가 되니까. 중국의 보복 조치는 아프지 않게, 그러나 지속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형태가 될 것이다. 우리가 알아채기도 전에 작은 것부터 서서히 끊어가는 거다."

-결국 동북아 정세가 격랑 속으로 휘말릴 것으로 보이는데, 한국 외교의 미래는.

"정부는 동북아에서 우리나라의 위치가 중견국가를 바라보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중견 국가는 주변 정세를 주도하고 강대국의 압력에 대해서도 과감히 비토할 수 있어야 한다. 자국의 원칙과 의지를 강대국에 설득해내고 관철시킬 수 있는 품격 높은 나라가 중견 국가다. 과연 우리나라가 한반도 정세를 주도하고 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미국과 일본에 끌려가고 중국 눈치를 보고, 우리가 가고자 하는 방향에 대해서도 효과적으로 설득하지 못한다. 여전히 좌충우돌형의 약소국 외교인 셈이다. 이에 따른 득실에 대해 전략적 판단도 부실하다. 향후 중견 국가로 도약하기 위해선 유능한 외교안보 관료집단이 피요하다. 대통령 1인의 의지에 따라 좌지우지 되는 게 아니라 다양한 전문가의 의견이 반영돼야 한다."

"朴대통령, 대북 확성기 등 강경노선…놀라울 것 없어"

-일각에서는 군 출신의 강경파 참모진이 사드배치 결정을 주도했다는 주장이 나온다.

"군 출신의 강경파는 지난 8일 사드배치 발표에 있어서 상수였지, 변수는 아니었다. 사드배치는 미국에서 요청했고 국방부도 원했고, 청와대 장성 출신들이 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 사실이지만, 이들조차 오는 10월에야 발표될 거라고 예상했다. 즉, 문제의 핵심은 사드배치 결정 자체가 아니라 무리하게 앞당긴 발표 시점에 있다."

-청와대 참모진의 문제가 아니라 박 대통령이 직접 밀어붙였다는 건데.

"그간 박근혜 정부의 안보 현안에 대한 결정을 살펴보면 놀랄 일도 아니다. 지난해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 결정도 관련 부처 모두 신중론의 입장이었는데도 밀어붙인 거다. 올 초 개성공단 전면중단 조치도 불과 3시간 전에 통보했다. 사드배치 지역 발표도 마찬가지였다. 5시간 전에야 경북 성주 군수에게 통보됐다. 이같은 사례를 쭉 짚어보면 외교안보 현안에 대한 의사결정은 대통령이 직접 핸들링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박 대통령의 노선 자체가 강성인 셈이다. 앞서 언급한 결정 모두 당장 북한의 붕괴 또는 항복을 염두에 둔 극단적 전략이다. 이처럼 현실성 없는 구상에 따라 대북 정책을 결정한다는 것이 안타깝다."

"사드, 오히려 안보불안 야기…전자파 영향, 명확하지 않아"

-사드 자체의 문제점도 한두 개가 아니다. 우선 수도권 방어에 제한적이라는 점이 지적된다.

"한민구 장관이 수도권 방어에 대해 패트리엇을 연계한 작전을 구상하고 있다고 하는데, 하나 마나 한 이야기다. 패트리엇 미사일은 사드 못지않게 비싼 무기다. 또 사드가 지역을 방어한다면 패트리엇은 포인트 방어다. 예를 들어 청와대를 방어하려면 청와대 패트리엇이 필요하고, 국회의사당을 방어하기 위해선 국회 패트리엇이 필요한 셈이다. 천만여 명이 모여사는 서울을 방어하려면 대체 패트리엇이 몇 대가 필요한 것인가. 심지어 패트리엇은 재래식 무기인 장사정포도 못 잡는다. 결국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정부여당에서는 '괴담'이라고 하지만, 사드로 인한 전자파 영향에 대해서도 명확히 밝혀진 바 없다.

"정확한 조건에 따른 실험 결과를 보고하지 않고, '내 몸으로 실험하겠다' '뒤뜰에 가져다 두겠다'는 식이니 황당하다. 말도 안 되는 호기다. 사드의 엑스밴드 레이더는 음속의 7배에서 8배 사이의 미사일을 탐지하는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송수신 소자 2만 5천 개에서 강력한 출력의 극초단파를 뿜어낸다.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설명이다. 실제 전문가들이 검증해서 국민들이 믿을 수 있도록 해줘야 하는데, 윽박지르기식이니 답답할 노릇이다."

"진짜 안보, 북핵 동기 근본적으로 제거하는 것"

-사드는 가짜 안보라고 했다. 그렇다면 진짜 안보란.

"방어 무기 하나에 국가의 운명이 좌우되는 건 무조건 가짜 안보다. 진짜 안보는 군사적으로 북한에 대한 억지력을 발휘해 핵무기 사용 동기를 근본적으로 제거하는 것이다. 이미 북한에 대한 억지력은 충분하다. 지난 대정부질문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냉전시대 미국의 전략 사령부가 소련 전역을 초토화하는 데 필요한 핵무기의 위력을 연구했는데, 그 결과 대략 14 내지 15 메가톤이었다. 미국이 한반도의 위기 상황마다 전개하는 B-52 폭격기 한 대의 폭발력이 4 메가톤이다. 그러니까 B-52 폭격기 한 대면 지구상에서 북한이라는 나라가 완전히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폭격기뿐 만 아니라 북한을 수 천 번도 멸망시킬 수 있는 탄도미사일에 재래식 무기까지 있다. 이 같은 억지력을 갖고도 북핵 문제를 다루지 못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북핵이 두렵다면 강경과 온건 정책을 배합하는 스마트한 전략으로 가야 한다."

김종대 의원은 이와 함께 역사적 사례를 소개했다.

김 의원은 서애 류성룡 선생의 <징비록(懲毖錄)>을 언급하면서, 임진년에 조선이 전란에 놓인 것은 대표적 명신 신숙주의 충고를 무시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신숙주는 당시 '일본의 항해술이 발전하는데 조선에 위협이 되니 실화(失和)해선 안 된다'고 유언을 남겼는데 결국 교류가 끊긴 바람에 임진왜란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류성룡은 조선이 그 충고를 잃어버려서 임진년에 화를 당했다며 책을 쓴 건데, 징비록이 일본에서는 베스트셀러가 되고 조선 양반가에서는 안 읽혔다. 결국 300년 뒤에 조국을 잃어버리는 전대미문의 비극을 다시 겪었다. 그런데 그 교훈을 우리가 또 잊고 있는 거다. 북한하고 실화해서는 안 된다. 계속 들여다보고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지금은 모두 단절해버린 상태다 보니 북한의 의도를 더욱 파악하기 어려워 방어 무기 하나에 매달리게 된 것 아니냐."

"20대 국회, 안보민주화 위한 입법활동에 주력하겠다"
 
-마지막으로 20대 국회에서 꼭 이루고 싶은 것은.

"안보민주화를 위한 입법활동에 주력할 생각이다. 안보 현안이 보수의 전유물로 전락하는 순간 국가안보는 전략가가 아닌 이데올로그의 차지가 된다. 오로지 북한에 대한 강압 정책만 펴는 것은 이데올로그의 방식이다. 반면 전략가는 강경과 온건, 장기적인 방안과 단기적인 방안을 스마트하게 결합해 하나의 판을 짠다. 안보는 민주화돼야 한다. 더민주에서는 경제민주화를 강조하는데, 나는 안보민주화가 더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유능한 전략가의 다양한 의견을 반영해 합리적인 의사결정으로 안보를 국민께 돌려드려야 한다.“

오지혜 기자 sisaon@sisaon.co.kr이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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