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의사소통의 단절과 성(聖)과 속(俗) 사이에서 고통 받는 한 여인의 삶…<테레즈 데케루>
스크롤 이동 상태바
[서평]의사소통의 단절과 성(聖)과 속(俗) 사이에서 고통 받는 한 여인의 삶…<테레즈 데케루>
  • 정은하 기자
  • 승인 2016.07.30 22: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의사소통의 단절과 인간의 유한성이라는 고통과 절망 속에서 몸부림치는 여인, 테레즈"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정은하 기자)

프랑스의 19세기 소설가 프랑수와 모리아크는 프랑스 보르도의 기독교적으로 독실하고 엄격한 중상류 집안에서 태어났다. 독실했던 카톨릭 신앙자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수녀가 운영하는 학교에 다니기도 했던 그는 의사소통의 단절과 성과 속 사이에서 고민하며 신을 믿지 않아 고통을 받는 <테레즈 데케루>라는 작품을 쓰며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작품은 주인공 테레즈 데케루가 공소 기각으로 법정에서 풀려 나와서 랑드 지방의 저택으로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의 회상으로 시작하고 있다. 자신의 어린 시절, 베르나르 데케루와의 결혼, 그리고 딸 마리의 탄생, 테레즈의 시동생이자 친구인 안과의 우정, 장 아제베도와의 만남 등.

'그녀가 그에게 무슨 말을 할 것인가? 어디서부터 고백할 것인가? 욕망, 결심, 예측할 수 없는 행동의 뒤엉킨 타래를 과연 몇 마디 말로 풀어낼 수 있을까? 자신의 범죄를 아는 다른 모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자백하는 거지? ‘나는 내 죄가 뭔지 몰라. 사람들이 내게 씌우려던 범죄는 낸가 원치 않았던 거야. 내가 원했던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어. 내 안에서, 그리고 내 밖에서 맹렬히 치밀던 이 힘이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지 난 전혀 몰랐어. 그 힘이 나아가면서 파괴한 것을 보며 스스로도 공포를 느꼈었어.’ p39

아르즐주르 저택으로 돌아와 남편에게 왜 비소의 복용량을 늘림으로써 남편을 죽이려 했었는가를 설명하려 해 보지만 도저히 뛰어 넘을 수 없는 단절감으로 포기하고 만다. 남편도 그 이유에 대해서는 더 이상 캐물으려 하지 않는다. 그에게는 가문의 체통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아내의 죄의 인정도 있을 수 없고 이혼도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관대하게 용서하고 받아주는 대신에 그는 조건을 제시한다. 사람들의 소문을 막기 위해 그들 부부의 화합된 모습을 보여 주되, 테레즈는 더 이상 집안일에 관여하지 않고 유폐생활을 하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테레즈는 자기 방에 스스로 갇혀버린 채 삶의 의욕이 전혀 없는 생활을 유지해 나간다. 어느 날 그녀의 수척한 모습에 놀란 가족들은 그녀를 파리로 풀어주기로 결정한다. 마지막 파리의 어느 카페의 테라스에서 그녀는 마지막으로 남편에게 자신의 행동의 원인을 설명해 보려고 애쓰지만 결국 포기한다.

모리악의 작품은 끊임없이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벌어지는 음울하고 준엄한 심리 드라마이다. 그의 작품에서 핵심이 되는 것은 죄악, 은총, 구제라는 문제와 시름하는 종교적 영혼이다. 모리악은 악에 바쳐진 것 같은 인물들에 대하여 남다른 기호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그 인물들은 불안으로 고통스러워한다. 주인공 내면에 자리 잡은 악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온 것인가?

'어쩌면 결혼을 통해 지배욕이나 재산 욕심보다는 피난처를 찾았는지도 모른다. 그녀를 결혼으로 몰아붙인 것은 공포감이 아니었을까? 실리적인 소녀이자 가정적인 딸이었던 그녀는 자신의 지위를 지키고 최종 자리를 찾는 것을 서둘렀었다. 그녀는 뭔지 모를 위험에 대항해 안정을 찾고자 했다. 약혼 시절만큼 그녀가 이성적응로 보였던 때도 없었다. 그녀는 새로운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 뿌리를 박고, ‘자기 자리를 잡았’으며 관습을 따르게 되었다. 그렇게 그녀는 스스로를 구원했다.' p56

어렸을 적부터 이중적인 존재였던 그녀가 결혼을 하게 된 이유는 특별한 삶을 영위하고픈 마음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결혼을 하나의 도피처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결혼은 아무중요성이 없었기에 결혼과 딸은 단조롭고도 일상적인 삶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삶의 권태와 혐오감으로 인한 죽음인 것이다. 테레즈의 행동 하나하나는 우리에게 삶의 권태, 생의 무의미를 느끼게 해준다. 그리고 무언가 구속된 모습을 창살이 쳐진 새장을 머리에 그려봄으로써 보여주는 듯도 하다.

'테레즈의 어린 시절은 깨끗한 눈에서부터 가장 더러운 강의 상류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었다. (중략) 테레즈는 자문했다. ‘내가 정말 그렇게 행복했었나? 그렇게 천진했었나? 내 기억 속에 결혼 전의 모든 삶은 이렇게 순수하기만 해. 첫날밤의 지워지지 않는 더러움과는 대조적이야. 아내로서, 어머니로서의 지금 나의 삶 이전, 고등학교 시절은 천국이었던 것 같아. 그때는 그걸 몰랐지. 이런 삶을 살기 이전의 내가 그 당시의 삶이 진정한 삶이라는 걸 어찌 알았겠어? (중략) 후회도 생기지 않는 순수한 아픔이었지. 고통과 기쁨은 가장 순수한 쾌락에서 태어나는 거니까.’ p43

주위의 온갖 사물 속에서 그녀는 허위와 기만을 본다. 행복이란 절대로 존재하지 않는 걸 그녀는 뼛속 깊이 실감한다. 다만 끝없는 권태와 온갖 높은 사명과 고귀한 의무의 결여, 나날이 야비한 습관밖에는 아무것도 기다릴 수 없다는 사실, 또한 어떤 위안도 없는 영원한 고독, 그녀는 허무감을 뼛속까지 체험하고 그 허무의식이 곧 악의 존재로 변해가는 것이다. 그녀는 또 자신이 신에게 버림 받았다고 생각하며 잃어버린 그녀의 모습을 찾고 싶어 한다. 이것은 모리악이 그 당시 인간 내면에 존재하고 있는 선과 악의 문제를 악한 주인공과 함께하면서 신에 의해서 인간의 구원문제까지 생각해볼 수 있게 하였다.

사실 테레즈의 모든 불행은 그녀 스스로 불러들인 것으로 보인다. 가만히 있었다면 아무 일도 없었을 테고 주위의 누구도 다치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생의 에센스를 원했기에, 열정에 충실했기에 폐허가 되어 버린 것이다. 또한 그들의 영혼에서는 순수를 향하여 향수를 느끼고 신성한 사랑을 목말라하기 때문이다. 주인공 테레즈 역시 잃어버린 순수성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으며 선을 향한 의지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이 다만 악의 정념으로 변해가면서 그녀는 철저한 희생자가 되어버리게 되고 인간 사회에서 타인에게 사랑과 인정을 받지 못한 그녀는 그녀 자신의 문제도 남에게서 답을 얻으려고 발버둥 친다.

담당업무 : 공기업과 재계를 담당합니다.
좌우명 : 變係創新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