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대 시위①] '학생'만 있고 '어른'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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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시위①] '학생'만 있고 '어른'은 없다
  • 오지혜 기자 정은하 기자
  • 승인 2016.08.01 14:43
  • 댓글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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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스케치> 총장이 학생들 상대로 경찰투입 요구…˝경악했다˝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오지혜 기자 정은하 기자)

"학생증 확인해 드릴게요."

땡볕이 내리쬐는 오전 11시, 이화여대 본관 앞에 학생들이 줄지어 있었다. 총장실이 위치한 건물이다. 본관에 들어가려는 학생들은 지갑에서 학생증을, 더러는 모바일 신분증을 보여줬다.

학생증을 확인한 또 다른 학생이 보라색 스티커와 하얀 마스크를 함께 건넸다. 스티커는 외부인을 막기 위한 장치고, 마스크는 취재진의 무분별한 촬영으로부터 인권을 지키기 위한 도구다.

본관 앞에 야외용 방석을 깔고 모여 앉아있는 학생들은 연신 땀을 닦고 있었다. 서로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를 나누기도 했지만, 금세 결연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모자를 깊게 눌러쓴 채 주변을 정리한 몇몇은 "어제 밤 새서 좀 자다 나와야 할 것 같다"며 자리를 떴다. 벌써 5일째 이어지고 있는 점거 농성이다.

▲ 1일 이화여대 본관 앞에 야외용 방석을 깔고 모여 앉아있는 학생들은 연신 땀을 닦고 있었다. 서로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를 나누기도 했지만, 금세 결연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 시사오늘

이화여대에선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단과대학인 '미래라이프대학' 설립 계획을 두고 학교와 학생이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갈등이 깊어졌다.

학생 측은 지난달 28일 대학평의원회 회의에서 미래라이프대학 설립 계획을 폐기하라는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점거 농성을 시작했다.

학교 관계자는 '사회에 진출한 여성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학생들은 이미 평생학습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는 점을 들어 '돈벌이를 위한 학위 장사'라고 반박하고 있다.

이화여대의 점거 농성에 대한 논란이 불거진 것은 시위 사흘째인 지난달 30일 경찰이 농성장에 투입되면서다. 이 과정에서 학생 10여 명이 다쳤다.

이날 오전 농성에 참여한 졸업생 류 모씨(28)는 "졸업한 지 꽤 됐지만 학교가 학위 장사에 나서는 걸 보고만 있을 수 없어 반차를 내고 나왔다. 특히 SNS를 통해 어린 후배들이 경찰에 끌려 나오는 것을 보고 놀랐다. 심지어 공권력 투입이 총장의 요구에 따른 것이었다니, 어른으로서 학생들 상대로 그게 할 짓인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학교가 학생들 시위에 직접 공권력 투입을 요청했다는 논란이 일자, 이대 홍보팀은 그다음 날인 31일 일부 언론을 통해 "경찰 병력을 학교에서 요청한 게 아니다"며 해명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서대문경찰서는 "경찰에서는 이대 총장을 비롯한 학교 측의 명시적인 요청으로 학내에 경력을 투입하게 됐다"고 정면 반박했다.

▲ 이화여대 학생 측은 지난달 28일 대학평의원회 회의에서 미래라이프대학 설립 계획을 폐기하라는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점거 농성을 시작했다. ⓒ 시사오늘

특히, 학생들이 배신감을 느끼는 부분은 학교 측이 대화에 나서겠다는 공식 문자를 보낸 직후 경찰 투입을 요청했다는 점이다.

실제 <시사오늘> 취재 결과, 이대 학생지원팀은 지난달 30일 오전 11시 '오늘 총장님과 학생들의 조건 없는 만남을 진행하고자 총학생회 및 중앙운영위원회와 사전 면담을 제안합니다. 이에 대해 중운위 논의 후 가능한 빠른 연락 바랍니다. 본관 서문에서 기다리겠습니다'라는 공식 문자를 발송했다.

그러나 해당 경찰서 보도자료에 따르면, 불과 그 15분 뒤에 최경희 이대 총장은 학생처장의 연결로 서대문서 정보과장과 직접 통화, 경찰병력 투입 의사를 최종 확인한 것으로 밝혀졌다.

학교 측은 지난달 28일 미래라이프 설립 논의를 위해 본관에 모인 평의원회 교수와 직원들이 학생들의 농성으로 인해 약 46간에 걸쳐 '감금' 당한 상황에서 구조요청을 한 것일 뿐, 대규모 병력을 요청한 적은 없다는 입장이다.

일부 언론에서 학생들의 농성을 두고 '감금' '폭력'이라는 표현이 나오는 데 학생 측은 "감금이 아닌 대치 상황이었다"면서 "회의실에서 식사와 커피, 에어컨, 화장실 등 평의회 의원들에 제공 가능한 모든 편의를 제공했으며, 휴대전화를 통해 언제든지 외부 접촉이 가능했다"고 밝혔다.

학생 측은 '폭력적'이라는 일부 비판을 반박하기 위해 지난달 30일 '공부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날 학교 정문 근처에서 <시사오늘>과 만난 졸업생 이 모씨(25)는 "시험 준비로 직접 참여하지 못한 입장에서 인터뷰에 응하는 게 미안하다"면서도 "학생들 시위에 학교가 나서서 공권력을 투입했다는 사실이 놀랍다"며 학교의 태도에 불쾌함을 숨기지 못 했다.

이 씨는 "그런데도 학생들이 동요하기 보다 '다만세'를 함께 부르며 질서를 지키고 공부 시위를 벌이는 등 평화 농성을 이어가는 모습이 자랑스러웠다"고 강조했다.

앞서 지난달 30일 학생들은 경찰 병력과 대치한 상황에서 걸그룹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를 제창하며 질서를 독려, 관련 영상이 화제가 된 바 있다.

▲ 1일 이화여대를 찾은 외국인 관광객이 본관에 멈춰서 무슨 일인지 묻자, 학생증을 확인하던 학생들이 SNS를 통해 영어로 작성, 공유된 설명문을 보여줬다. 스마트폰 속 내용을 유심히 읽던 이들은 곧 황당한 표정이 됐다. ⓒ 시사오늘

한편, 짜증날 법한 더운 날씨에도 차례를 지키며 본관으로 들어서는 학생들 모습에 캠퍼스를 찾은 외국인들도 멈춰섰다.

외국인 관광객 10여 명이 무슨 일인지 묻자, 학생증을 확인하던 학생들이 SNS를 통해 영어로 작성, 공유된 설명문을 보여줬다. 스마트폰 속 내용을 유심히 읽던 이들은 곧 황당한 표정이 됐다.

미국 뉴욕에서 관광차 이대 캠퍼스를 찾은 데브라와 말리사는 <시사오늘>과 만나 "학생들이 학교의 주인인데 의견을 묻지 않았다는 점이 문제"라면서 "특히, 총장이 학생들 농성을 막기 위해 경찰 투입을 요구했다는 부분은 매우 충격적"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학교 측이 '학생은 4년 뒤에 졸업하기 때문에 학교의 주인이 아니다'라고 주장한 데 대해 "말도 안 된다"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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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님 2016-08-06 00:58:40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바탕으로 작성된 기사를 볼 때마다 마음이 좋지 않았는데, 기자님이 쓰신 기사를 보니 힘이 났어요
감사드립니다!

화이팅요 2016-08-02 19:16:37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홧팅 2016-08-02 12:44:11
교육부와 학교에서 취소결정이 날때까지 함께합시다!

meju 2016-08-02 12:35:42
이대가 제대로 보여주세요. 돈으로만 평가하는 교육부나 대학에 대해 본때를 보여줍니다.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다 2016-08-01 23:15:33
좋은기사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