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 다문 비박계, 3無에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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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 다문 비박계, 3無에 운다
  • 정진호 기자
  • 승인 2016.08.19 16: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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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심점도, 철학도, 명분도 없는 비박계의 침묵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 귀빈식당에서 열린 미래인사포럼 간담회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새누리당 나경원 의원(왼쪽)과 주호영 의원 ⓒ 뉴시스

새누리당이 조용하다. 8·9 전당대회 직전까지 친박·비박으로 나뉘어 이전투구(泥田鬪狗)를 벌였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친박계가 박근혜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수직적 권력구조로 회귀하며 명령 체계를 재편하는 동안, 비박계가 지리멸렬(支離滅裂)하면서 입을 다문 까닭이다. 지금 새누리당에서 친박계 외의 목소리를 듣기는 쉽지 않다.

정치권에서는 이처럼 비박계가 힘을 잃은 원인이 ‘3無’에 있다고 입을 모은다. 구심점이 없는 비박계가 철학도, 전략도 부재한 모습으로 8·9 전당대회에서 패퇴함으로써 자신들의 최대 무기였던 명분까지 잃었다는 분석이다. 이런 상황에서 비박계가 당내 최대 계파인 친박계와 맞서기는 무리일 수밖에 없다.

지난달 29일 당대표 후보자 TV 토론회에서 정병국 의원은 “새누리당에 친박 말고 계파는 없다”고 주장했다. 이는 친박계 해체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비박계의 약점을 관통하는 말이기도 했다. 박 대통령이라는 확실한 구심점을 중심으로 뭉쳐있는 친박계와 달리, 김무성계·유승민계·구(舊) 친이계·독자세력 등을 통칭하는 비박계는 본질적으로 일사불란(一絲不亂)한 통제 체계를 구축하기 어렵다. 실제로 친박계와 비박계의 ‘오더’가 정면충돌했던 이번 전당대회에서, 친박계는 ‘확실한 구심점’의 위력을 보여주며 지도부를 완벽 장악했다.

같은 맥락에서, 비박계에는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명확한 철학도 존재하지 않았다. 친이계·친박계처럼 인물을 중심으로 모이지도, 민주화세력처럼 특정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모이지도 않은 비박계가 내세울 수 있는 전략은 ‘反 친박’이 유일했다.

때문에 서청원·최경환 의원 등 친박계 핵심들이 불출마를 선언하자, 비박계는 자연스럽게 동력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反 친박’ 외에는 마땅한 콘텐츠가 없다 보니 전선이 흐려졌을 때 대응할 수 있는 카드가 마땅치 않았던 것이다.

이에 대해 이준석 전 새누리당 비대위원은 지난 16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구조상으로 봤을 때 비박계가 질 수가 없는 선거”라며 “문제는 비박계 지분을 가진 대주주들이 오락가락한 행보 또는 아주 맥없는 행보를 보임으로 인해 결집이 안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여권의 한 관계자 또한 전당대회 직전 〈시사오늘〉과 만난 자리에서 “서청원·최경환 의원이 출마하지 않으면서 ‘총선 패배 책임론’에 대한 프레임이 흐려지니까 비박계 후보들이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것 같다”며 전략 부재를 꼬집기도 했다.

이렇게 전당대회에서 패퇴하면서, 비박계는 최대 무기였던 명분도 함께 잃고 말았다. 전당대회 전까지만 해도 비박계는 ‘계파 패권주의 청산’이라는 명분이 있었다. 친박계의 전횡(專橫)이 당심(黨心)은 물론 국민의 마음까지 멀어지게 했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전당대회에서 당원들이 박 대통령의 ‘복심(腹心)’으로 불리는 이정현 의원을 당대표로, 친박계로 분류되는 이장우·조원진·최연혜 의원을 최고위원으로 선택함으로써, 비박계는 친박계를 비판할 구실을 완전히 상실하게 됐다. 구심점도, 철학도 없었던 비박계의 전당대회 패배가 ‘총선 패배 책임론’마저도 사그라지게 만든 셈이다.

지난 18일 기자와 만난 여권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비박계가 (전당대회에서) 지면서 새누리당은 혁신의 기회를 완전히 잃었다. 이번에는 무슨 수를 써서든 비박계가 이겨야했는데, 전략도 없이 손익계산만 하다가 진 거다. 전당대회를 통해서 친박계에게 (총선 패배에 대한) 면죄부만 준 꼴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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