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구조조정 '잔인한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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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구조조정 '잔인한 5월'
  • 최진철 기자
  • 승인 2009.05.03 00: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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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개 대기업 계열 중 10개안팎 '고강도 구조조정'
5월부터 대기업과 중대형 해운업체에 대한 구조조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금융업계에 따르면 채권은행들은 4월 중 빚이 많은 45개 대기업 그룹에 대한 재무구조 평가와 38개 해운업체에 대한 신용위험 평가를 마무리 짓고 구조조정 대상을 확정해 발표할 계획이다.

현재까지 나온 채권은행들의 평가를 보면 대기업 12곳 정도와 해운사 7곳 정도가 구조조정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드러났다.
 
▲     © 뉴시스

 
◇구조조정 대상 대기업·해운사 등 최대 19곳
주채권은행들은 2008회계연도 재무제표를 기준으로 45개 주채무계열의 재무구조를 평가한 결과, 지금까지 12곳 안팎을 불합격 대상으로 잠정 분류했다. 주채무계열은 금융권 총 신용공여액의 0.1% 이상을 차지하는 기업집단이다.

주채권은행별로는 산업은행이 5~6개 그룹에, 우리은행.외환은행.하나은행.신한은행.농협 등이 1~2곳씩에 불합격 점수를 준 것으로 알려졌다.

불합격 그룹은 5월 중 채권단과 재무구조 개선 약정을 맺고 구조조정을 추진해야 한다. 다만 실제 약정을 체결할 그룹 수는 다소 유동적으로, 10개 정도로 줄어들 수 있다.

12개 대기업을 평가하는 산업은행은 5곳 안팎의 기업에 불합격 판정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A사와 B사는 작년에 약정을 체결했던 곳으로 올해도 재무상황이 크게 호전되지 않아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 C사는 주력계열사가 법정관리중이고, D사는 작년말 재무제표상으로는 합격점을 받았지만, 잠재적부실 우려가 있어 부채권기관과의 최종 조율을 거쳐 약정 대상에 오를 수 있다. 이밖에 부채비율이 높은 E사, F사, G사 등도 거론되고 있다.

17개 대기업을 평가하는 우리은행의 경우 업종별 특성을 감안해 H사 한 곳 정도만 약정을 맺을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 외환은행이 평가하는 I사, 신한은행이 맡은 J사, 농협이 담당한 K사 등도 MOU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주채권은행들은 개별 대기업의 평가 결과를 부채권기관과 금융당국에 통보해 최종 협의를 거친 후 다음달까지 재무구조개선약정(MOU)을 맺을 예정이다. 약정을 맺으면 채권단은 은행업감독규정에 근거해 해당기업에 자산매각, 증자 등 강도높은 재무구조 개선을 요구할 수 있다. 약정 불이행시 대출중단·회수라는 강력한 제재가 이어진다. 다만 외환위기 당시처럼 강제적 퇴출 절차를 밟는 기업은 없을 전망이다.

금융당국은 특히 2008회계연도 재무제표상으로 합격을 받았더라도 지속적인 업황 부진 등 잠재적부실이 나타난 기업에 대해서는 구조조정을 유도한다는 계획이어서, 막판 조율 과정에서 당국의 의지가 강하게 반영될 수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과거 무리한 덩치확장에 나섰던 기업들은 계열사 매각을 통한 군살빼기 등 강도높은 자구노력을 기울여야한다"고 강조했다.

해운업체 가운데는 7개 가량이 구조조정 대상으로 분류되고 있다.
 
◇대기업 '재무개선 약정' 어떤 수순 밟나
재무구조평가에서 탈락한 대기업그룹(주채무계열)은 은행과 재무구조 개선약정을 맺고 고강도 자구계획을 이행해야 한다.

기업은 경영지표 관리 및 자금조달·지출 등 통상적인 기업운영 뿐 아니라 계열사 인사까지 사전협의해야 하는 등 큰 부담을 지게 된다. 또한 신규사업이 제한되고 수익성이 떨어지는 사업은 통폐합해야한다. 인력구조조정도 피하기 어렵다.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은행은 신규여신 중지, 만기도래 여신회수, 자구대산 자산처분 촉구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외국환업무 취급중지 같은 적극적인 조치도 가능하다. 수출입 거래가 많은 대기업에게는 사실상 '사형선고'다.

"재무구조개선 약정 기업은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업체나 다름없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약정' 표준안에 따르면, 약정기업들은 △부채비율 감축 및 종합신용평가 계획 △추정 대차대조표·손익계산서 △자금수지표 △자구 및 차입금 상환계획서 △계열 구조조정 계획 △기업지배구조 개선계획 등의 서류를 은행에 제출해야 한다.
이를 통해 부채비율, 자구계획 이행여부, 종합신용평가 등 3가지 항목의 평가가 반기마다 이뤄진다.

가장 중요한 건 부채비율(절대수치 40점+달성도 60점)이다. 부채비율 평가점수가 50점 이상이면 나머지 2개 항목 점수와 무관하게 약정을 이행한 것으로 판정한다. 부채비율 점수가 30점 이상~50점 미만이면 자구계획과 종합신용평가를 따진다. 그 이하면 약정이행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자구계획은 자산매각, 계열사정리, 외자유치(지분참여), 유상증자, 채무보증 해소계획 등 5개 항목으로 구성된다. 각 항목별 달성률(목표대비 실적)을 산출해 자구계획 이행여부가 평가된다.

종합신용평가는 3가지(이자보상배율 1.0 이상, 매출액영업이익률과 총자산회전율은 업계평균 이상) 항목으로 평가한다. 기준을 만족하는 계열사들의 자산을 합계해 평가한다. 배점은 절대수치 40점, 달성도 60점이다.

자구계획을 전체적으로 이행했으나, 종합신용평가 세부항목이 모두 30점 미만이면 미이행으로 판정된다. 자구계획을 이행하지 못했어도 종합신용평가 세부항목이 모두 80점 이상이면 이행한 것으로 본다.

약정을 이행하는 데 가장 효율적인 것은 계열사 매각이다. 부채비율을 개선하는 효과가 있는데다 자구계획, 종합신용평가 등에서도 배점을 얻을 수 있다. 산업은행이 유동성 압박을 받아온 동부그룹에 동부메탈 매각을 권유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계열사 경영권은 유지하되 보유 지분 일부매각을 통해 자금을 확보하는 것도 방법이다.
 
◇재무개선약정 맺었더라도 워크아웃까지는 안갈수도
채권은행들은 재무구조개선약정이 곧 구조조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말 그대로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중장기 플랜을 짜는 것으로, 계열사 매각이나 인원 감축 등을 목적으로 하진 않는다는 것이다. 약정에 들어가는 주요 항목도 유상증자, 부채비율 등을 비롯한 재무 요소에 초점이 맞춰진다. 기업구조조정촉진법에 따라 실시하는 워크아웃과 달리 재무구조개선약정은 채권은행과 민간기업 간에 맺은 사적인 계약이기 때문에 법적 구속력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호황기에는 기업이 약정을 이행하지 못해도 채권은행이 반드시 제재조치를 취하지도 않는다.

재무구조개선약정은 원래 1997년 외환위기 당시 기업들의 부채비율을 200% 이하로 끌어내리기 위해 고안된 장치다. 당시에는 강도 높게 운용되다 2000년대 중반 경기 호황으로 유명무실한 제도가 돼 버렸다.

이와 관련해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지난해까지는 호황으로 대기업이 '갑'이고 은행은 '을'이었다"며 "유보자금이 풍부한 기업들이 은행에 손 벌릴 일이 적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올해는 재무구조개선약정이 대기업 구조조정을 촉진하는 촉매가 될 전망이다. 은행들이 칼자루를 쥐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감독당국 관계자는 "올해는 채권은행들이 예년에 비해 훨씬 강도 높은 수준으로 재무구조개선약정을 맺고 이행 여부도 철저하게 평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채권은행들이 재무구조개선약정 내용과 이행 평가를 외환위기 당시에 준하는 수준으로 엄격하게 적용한다는 것이다.

정부로서도 대기업 재무 개선은 지난해 말부터 추진해 온 선제적 구조조정의 결정판이어서 금융감독당국과 채권은행들이 건설사 구조조정처럼 흐지부지 넘어갈 수도 없다. 약정을 체결한 기업들도 채권은행들이 만기 연장을 안 해준다든지 채권을 회수한다든지 하는 극단적 카드를 꺼내보이면 자산 매각과 재무구조 개선에 적극 나설 수밖에 없다.

다만 은행들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재무구조개선약정을 활용할지는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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