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고산자, 대동여지도>, 실증의 목판에 아로새겨진 드라마라는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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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고산자, 대동여지도>, 실증의 목판에 아로새겨진 드라마라는 지도
  • 김기범 영화평론가
  • 승인 2016.08.31 16: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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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범의 시네 리플릿>역사와 허구의 사이에서 길을 잃다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김기범 영화평론가) 

▲ 영화 <고산자, 대동여지도> 포스터 ⓒCJ 엔터테인먼트

대개 역사적 사실이나 인물을 소재로 한 드라마나 영화는 최상의 픽션과 버무려진다는 전제하에 대중성은 물론, 현세의 후손들에게 진한 감동과 교훈을 투척할 수 있다는 면에서 절대 놓칠 수 없는 장르로의 매력을 지닌다. 

그러나 역사물은 그 특성상 다큐처럼 한 인물이나 사건에 대한 정확한 고증과 구현 없이, 원작 소설 등이 내뿜는 허구에 지나치게 의존한다면 사실 왜곡의 논란으로부터 그 책임성을 회피할 수 없다는 양날의 검과 같은 맹점이 있다. 

이것은 과거로부터 현재 이 순간까지 방송 드라마와 영화에서 숱하게 일어나고 있는 오류이며, 딜레마이기도 하다. 

혼탁했던 80년대 말의 학원물을 시작으로 숱한 장르를 넘나들며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켜켜이 쌓아 오늘에 이른 강우석 감독은 명실공히 자타가 인정하는 한국 영화계의 흥행 메이커로서 그 타이틀을 공고히 지켜왔다. 

한때 그가 청춘물을 통해 그려냈던 청소년의 사랑과 방황은 단순한 멜로나 서정성을 지나 어린 영혼들의 상처를 통해 미숙했던 당시 우리의 아픈 자화상을 은유하였고, 이어지는 사회적 메시지가 서린 드라마는 흥행 불패의 한국형 로맨틱 코미디 장르 시대를 여는 개척자의 디딤돌로 작용하였다. 

이어 2000년대부터는 우리의 암울한 현실이나 역사의식을 피력하는 장르로 다시 선회하여 개봉작마다 적지 않은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고, 이후 강우석이라는 이름은 한국영화계의 독보적 흥행 보증 수표로 등식화된다. 

이번에 개봉하는 <고산자, 대동여지도> 는 대중에겐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고산자 김정호의 신산한 삶과 소명의식을 다룸으로써, 연출자의 정치성과 사회성에 대한 잣대를 다시 평가의 연장선상에 등재시킬 수 있는 작품이다.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이름과는 달리 시대를 앞서간 그 찬란한 업적에 비해 고산자라는 실존 인물에 대한 실증 자료는 거의 남아 있지 않기에, 영화는 소설가 박범신이 쓴 동명의 소설에 기초한다. 

영화는 역사에 기록되지 못한 김정호의 감춰진 이야기라고 강변하나, 실상 영화상의 이야기들이 진실이라는 정황은 없이 철저한 허구에 기반한다는 이야기이다. 

그럼에도 관련 문헌이나 자취가 일천한 조선말의 인물에 대해 그나마 고증과 낭설 사이에서 고심한 흔적이 있는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것은 무척이나 다행한 일이다. 

물론 상술하였듯 실존 인물의 일대기와 삶의 방식을 픽션에 기반하여 묘사함으로써 강한 정치사회적 메시지를 관객들에게 부여하는 것은 기존의 많은 작품들이 일궈낸 소산이기도 하다. 

초점은 창작자의 상상력이 가미된 허구적 스토리를 충실히 따르되, 영화 특유의 필치가 얼마나 세련되게 구사되었는지의 여부다. 

우선 감독은 김정호의 지도제작기에 있어서 많은 논란의 여지가 있는 전국답사설과 백두산 등정설, 목판소각설을 그대로 차용하고 있다. 

이것은 검증된 역사적 사실과는 동떨어져 이미 많은 전문 연구자들로부터 교정 대상으로 기정사실화 된지 오래지만, 창작의 스토리를 이끌어가기 위한 기본 장치로서 비판의 대상이 되지는 못한다. 

문제는 원작의 메시지와 감동을 영상적 서사 구조로 구현하는 그 기법이 상당히 시대착오적이며, 보는 이들의 가슴에 와 닿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치 한 편의 역사 다큐를 보는 듯한 교과서적인 드라마와 너무 단선적인 등장인물 간의 갈등은 관객들을 지루하게 만든다. 

당시 쇄국정책을 쓰던 흥선대원군 섭정기의 혼란스런 시대상과 맞물려 김정호의 개인사 또한 처절하게 극화되지만, 분명 영화 줄거리의 기본 뼈대로서 설정되었어야 할 김정호와 대원군 간의 은원과 애증의 갈등 구도는 큰 시너지를 일으키는 플랫폼으로서 그 역할과 기능이 누락되고 방기된다. 

서사 구조 또한 지극히 평면적이어서 강한 흡입력을 뿜어내지 못한다. 

김정호를 지도쟁이의 길로 추동하는 계기는 그 명징한 설득력이 부족하며, 안동 김씨 일문의 횡포는 주인공을 일방적으로 부조리한 수구에 의해 처참히 희생당하는 역사의 순교자로 만들어낼 뿐이다. 

마치 한 편의 종교 영화를 보는듯한 지나친 신파는 관객들과의 동화와 공감을 이끌어내기는 커녕, 거리감만 넓히는 식상한 악재로 작용한지 오래다. 

길 위의 모든 이는 평등하다는 민본주의와 남들이 가지 않는 곳을 걸음으로써 새로운 길이 열린다는 선구자의 신념은 영화 전편의 선연한 주제의식으로 내내 역설되어진다. 

그러나 영화가 떠받들고자 하는 이 훌륭한 메시지는 이미 정해져 출발하지만, 이의 지지대가 되어야 할 충분한 서사의 기본 얼개는 결핍되어 있다. 

요즘 관객들의 시선을 끌기엔 역부족인 연출 속에서 받쳐주는 이 없이 홀로 서낸 주연 배우 차승원의 악전고투만 남는 이유이다. 

마치 한반도의 실측 지도를 편찬하겠다는 일념으로 신고의 세월을 버티고 백두산 정상에 홀로 우뚝 선 고산자의 그 처연함을 보는 것 같다. 

이 와중에 <터널> 이후 불거진 성장기가 과연 어디까지 갈 것인지 궁금한 남지현의 순박한 연기가 이야기의 간극을 조금이라도 채우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즐겁다. 

그나마 우리가 늘 잊고 지냈던 이 땅의 아름다운 산하와 거친 풍광을 장엄한 영상미의 실사로 담아낸 이 영화의 유일한 성과를 바라보듯 말이다. 

9월 7일 개봉한다. 교육성 짙은 역사 드라마답게 전체 관람가다. 

뱀의 발 : 주연인 차승원이 출연하는 인기 예능 프로를 타겟팅한, 개그성 짙은 대사가 나온다. 그러한 주인공의 희화화된 대화체들은 조연인 김인권의 시대를 앞서가는 대사들과 어우러져 영화 초반부터 자주 구사된다. 실소를 자아내게 할 뿐, 적절한 양념으로서 그다지 영양가를 발휘하지 못하고, 영화가 내세우고자 하는 진한 드라마의 맥을 흐린다. 그래서 안타깝다. 

★★☆

·영화 저널리스트
·한양대학교 연구원 및 연구교수 역임
·한양대학교, 서원대학교 등 강사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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