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무리울에서] 남경필 지사와 모병제의 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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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무리울에서] 남경필 지사와 모병제의 허실
  • 권혁식 논설위원
  • 승인 2016.09.06 11: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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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권혁식 논설위원)

 남경필 경기지사는 더불어민주당 김두관 의원과 함께 5일 국회에서 '모병제 희망모임' 토론회를 열고 현행 징병제를 대체하는 ‘모병제 도입’을 주장하고 나섰다.

 과거에 박찬석 의원(2006년·열린우리당), 김재윤 의원(2012년·민주통합당) 등이 간간이 모병제 도입을 주장한 적이 있으나 보수정당 인사가 이를 제기하고 나선 것은 이례적이다.

 남 지사는 모병제 도입 사유로 "현재의 인구 추이라면 2025년 인구절벽에 따라 병력을 유지하기 어렵다"면서 "작지만 강한 군대를 육성하기 위해 개인의 자유의지에 바탕을 둔 모병제가 필수적으로 검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남 지사, 대선공약으로 승부수 띄울 수 있어
 그는 이어 "내년 대선에서 모병제 이슈를 국가적 아젠다로 설정해 공론화해야 한다"면서 "차기 대통령 임기인 2022년까지 모병제로의 완전 전환이 필요하다"고 했다. 여차하면 자신의 대선공약으로 채택해 승부수를 띄울 수 있음을 시사했다.

 남 지사는 국군을 30만 명 정도로 감축하고, 월급 200만원을 책정할 경우 한해 약 3조 9000억 원의 예산이 더 들 것으로 예상했다. 만연한 방산비리를 척결하면 소요예산 확보가 어렵지 않다고 덧붙였다.

마이클 샌델, 공리주의 관점에서 '모병제'가 최선

 우리에게 정의론으로 유명한 마이클 샌델 교수는 ‘정의란 무엇인가’란 저서에서 ‘징병제’와 ‘자원군(모병제)’를 논한 적이 있다. 우선 징병제는 ‘자유지상(至上)주의자’ 관점에선 강제성을 띤 일종의 ‘노예제’라서 부당하다고 평가했다. 그에 비해 자원군은 병사 모집에 시장원리를 적용한 것으로 봤다. 국가에서 필요한 군인 수와 자질을 고려해 적절한 급여와 복리후생 수준을 제시하면, 그에 맞춰 국민들이 그 일을 할지 말지 알아서 결정하면 되는 것이다. 따라서 ‘공리주의’(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추구) 관점에서 보면 자원군이 최선의 선택이라고 할 만하다. 양측 다 좋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군 자원한다면 징병과 다름없는 ‘강제’

그러나 샌델 교수의 논의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자원군이 겉보기만큼 자발적이지 않을 수 있으며, 실제로 강압적 요소가 끼어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즉,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사회에서 더 나은 선택을 하지 못하고 입대를 결정했다면 징병과 자원군은 형태만 다를 뿐 둘 다 ‘강제’라고 했다. 징병은 법이, 자원군은 경제적 어려움이 강제한다는 것이다.

미국은 베트남 전쟁(1960∼1975년)이 끝나갈 무렵인 1973년 베트남에서 미군을 단계적으로 철수시키면서 징병을 모두 자원병으로 대체해 지금은 모병제 국가다. 그런데 샌델 교수는 저서에서 미국사회의 특권층 젊은이들이 모병제 하에서 얼마나 군 복무를 기피하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설명했다.

미국 모병제 하에서 일류대학생 군 입대 극소수

 “프린스턴 대학의 경우 1956년 졸업생 750명 가운데 과반수 인 450명이 졸업 후 군에 입대했다. 그에 반해 2006년에는 졸업생 1108명 가운데 입대한 사람은 고작 아홉 명에 그쳤다. 다른 일류대학에서도 상황은 비슷하다. 의회 의원 가운데 자녀가 군에 입대한 경우는 2%에 불과하다.”

사회지도층은 군 복무를 뺀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주력

남 지사는 이와 관련해 "부모님의 재산이 많은 사람,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따라 더 많은 사회적 공헌을 하는 제도를 만들면 우리 군을 강하고 튼튼하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애매한 표현이지만, 사회 지도층과 그 자제들이 군 복무만 면할 수 있게 해주면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입각해 금전이나 세금으로 강군(强軍)을 뒷바라지할 것이라는 의미로 들린다. ‘금수저’에 해당되는 남 지사와 군 생활에 부적응했던 아들의 조합을 이 명제에 대입하면 나름대로 모병제의 효용성은 인정할 만하다.

그러나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원래 취지는 사회 지도층이 전쟁에 참여해 희생도 불사하는 전통까지 포함하는 말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한국전쟁 때 아이젠하워 전 미국대통령과 밴 플리트 8군 사령관의 아들이 참전했다. 중국의 최고권력자 마우저뚱의 아들도 참전해 전사했다. 케네디 전 미국대통령은 세계 2차대전 시 해군장교로 참전했고, 영국의 앤드류왕자는 포클랜드전투에 직접 전투기를 몰고 참전한 것으로 유명하다.

아이젠하워 대통령 당선자는 1952년 한국전선을 방문한 자리에서 지휘관에게 "내 아들이 포로가 되지 않도록 부탁한다"고 했다. 대통령의 아들이 적군의 포로가 돼 악용당하는 불상사는 막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전투부대에 있던 아이젠하워 소령은 이를 거부하다가 막판에 사단본부 근무로 옮겼다.  밴 플리트 사령관 아들은 1952년4월 압록강 남쪽 순천 지역을 정찰 폭격하기 위해 출격했다가 실종됐다. 밴 플리트 장군은 아들에 대한 공군의 수색작업이 오래 지속되자 "그 정도면 충분하다. 이제 구출 작전을 중지하라"고 명령했다. 이와는 별도로 한국전선에서 죽은 하버드 졸업생은 17명에 달하며 학교 안에는 추모교회가 있다고 한다. 따라서 남 지사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알맹이는 빼놓고 껍데기만 논하는 것처럼 들린다.

"모병제는 지도층에게 병역비리로부터 해방 효과"

남 지사는 이날 다른 매체인 JTBC 'Talk 쏘는 정치'에 출연해서 “(지금은) 돈 있는, 지위 있는 사람들이 (병역) 비리로 아이들을 빼돌리고 있거든요. 근데 이렇게 되면(모병제를 도입하게 되면)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모병제 도입의 효과가 ‘돈 있고 힘 있는 사람들’에게는 알량한 ‘노블레스 오블리주’ 발현보다는 ‘병역비리로부터 해방’ 효과가 더 와닿을 것이란 점을 본인도 예견하고 있는 셈이다.

요즘처럼 부와 소득의 양극화, 흙수저·금수저 논란, 졸부들의 천민자본주의 등으로 청소년들의 박탈감과 자조감이 극에 달한 시기에 그나마 우리사회의 평등의식과 공정성을 지탱하고 있는 것이 ‘의무 공교육’과 ‘병역의무’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이마저도 ‘유전무죄 무전유죄’처럼 ‘유전무병(有錢無兵), 무전유병(無錢有兵)’이 된다면 우리 사회에 마지막 남은 자존감마저 뿌리째 흔들릴 것이다. 이달 28일부터 시행되는 ‘김영란법’이 뿌리를 내려 공직사회에 부정부패가 줄어들고 전관예우 같은 병리현상도 사라진 뒤에나 모병제를 검토해볼 만할 것이다. 그 전에는 징병제에 단점과 부작용이 있더라도 그것대로 개선과 보완을 해가며 유지할 필요가 있다.

돈으로 사고팔 수 없는 공동선 중 하나가 ‘군 복무’

게다가 샌델 교수는 모병제에 대해 ‘경제적 어려움이 강제할 수 있다’는 문제점만 지적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우리 사회에는 돈으로 살 수 없는, 시민으로서 지켜야할 미덕(美德)과 공동선(共同善)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군 복무’ 같은 것이라고 했다. 군 복무는 민주사회의 시민의식을 일깨워줄 뿐 아니라 심화시킨다. 우리처럼 남북한 대치 상황에선 일상에서 경험하기 힘든 조국애와 국가관을 젊은이들에게 심어줄 수도 있다. 세상에 돈으로 사고팔 수 없는 공동선도 있다는 점은 적어도 국가 공동체를 이끌어가려는 정치 지도자라면 늦게라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 석사

前 영남일보 서울 정치부 기자

現 시사오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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