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다음 침공은 어디?>, 노회한 다큐 작가의 고군분투 행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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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다음 침공은 어디?>, 노회한 다큐 작가의 고군분투 행군기
  • 김기범 영화평론가
  • 승인 2016.09.07 17: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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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범의 시네 리플릿>한 미국인의 잊고 살았던 자화상 찾기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김기범 영화평론가) 

▲ 영화 <다음 침공은 어디?> 포스터 ⓒ판씨네마

2002년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그는 미국의 신자유주의에 대한 노골적 비판으로 조그마한 명성을 얻었을 뿐인, 반골 기질이 다분한 일개 TV 외주제작사의 대표에 불과했다. 

특히 1995년도에 제작한 <커네이디언 베이컨> 이라는 그의 첫 극영화는 평단과 관객에게서 엄청난 혹평과 버림을 받은 흑역사로 기록된 바 있다. 

그럼에도 미국 주류 사회에 대한 그 특유의 거침없는 조소의 배짱과 맹렬한 비난의 기세는 멈출 줄을 모른다. 

그런 그에게 1999년도의 콜럼바인 고교 총기 난사 사건은 다큐멘터리라는 장르를 미국 사회의 치부를 보다 강도 높게 드러내기 위한 치명적인 무기로 장착하게 되는 중요한 시발점이 된다. 

미국 역사에 있어 그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닌 총기에 대한 미국인들의 집착, 그리고 여기서 비롯된 폭력 문화에 대한 비판을 감행했던 2002년도의 <볼링 포 콜럼바인> 은 그렇게 국내외를 넘어 엄청난 파장을 불러 일으켰으며, 결국 이 다큐는 그에게 2002년 칸 영화제 특별상과 2003년 아카데미 장편 다큐멘터리 부문 수상이라는 쾌거를 안긴다. 

여기에 다큐멘터리로서는 이례적인 <볼링 포 콜럼바인> 의 부가적인 흥행성과 또한 그의 성취가 한 장르에서 어떠한 신지평을 열었는지를 방증한다. 

이후에도 그의 거침없는 행보는 멈추지 않는다. 

911 사태로 촉발된 부시 정권의‘테러와의 전쟁’은 결국 이 사내에게 <화씨 911> 이란 문제작을 만드는 계기를 제공하였고, 2004년의 칸은 마침내 그에게 황금종려상을 내주고 만다. 

미국의 패권주의와 신자유주의, 그리고 자본가 및 거대 기업과 같은 미국 보수 기득권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박수를 보내는 좌파와 찬동 세력에게까지 신랄한 독설과 항쟁을 멈추지 않는 그의 이름은 미국을 대표하는 다큐 감독인 마이클 무어다. 

마이클 무어가 다큐에서 그려내는 주제는 미국 입장에서는 잘 다루지 않는, 아니 정확히는 미국의 국민들이 애써 숨기고 인정하고 싶지 않는 이슈들이다. 

그러나 그가 늘 선정하는 제반 문제들은 단순히 미국 국내에서만 한정되지 않는다. 

금융과 재정위기, 전쟁 등 미국 내부의 이슈에서 출발한 그의 다큐 여행은 결국 극한을 향해 치닫고 있는 현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과 유일 초강대국이 빠져들 수 있는 제국주의적 행보에 대한 우려를 야기한다. 

결국 현재 미국 사회의 치부에 대한 마이클 무어의 통렬한 지탄과 냉소로부터 시작된 주제의식은 국제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여타 문제점들과 자연스레 연동되는 시의성을 표출해 왔다. 

그러나 이번에 새로이 개봉하는 이 독설가의 <다음 침공은 어디?> 라는 다큐는 국제문제와 연결될 수 있는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나 현재 미국 사회가 잃어 가고 있는 지도 모르는, 자신들의 헌법과 제도상의 정신과 제 가치들을 하나하나 희구해 나가는 여정기를 그려낸다. 

그런데 영화 제목에서 풍기는 것처럼 초강대국 미국의 특기(?)인 무력 침공에 의한 전쟁을 통해서가 아닌, 늙어가는 한 다큐 감독이 유럽 제국을 종횡무진 거쳐 가며 미국의 과거와 현재를 되짚어 보는 고군분투 행군기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볼링 포 콜럼바인> 과 <화씨 911> 로 자국의 대통령에게 일갈하며 전 세계인에게 논쟁의 불씨를 안겼던 열정과 패기의 그 젊은 남자 대신, 성조기를 들고 다니며 외국을 넘보고 부러워하는 한 노인의 모습은 마치 과거의 영광을 염원하는 늙고 노회해진 제국의 일면을 보는 듯하다. 

무거운 주제를 상쇄하는 마이클 무어 특유의 신랄한 풍자와 냉소어린 유머가 유효한 만큼, 교묘한 편집과 지극히 주관적이고 편향적인 사실의 나열, 그리고 특정 정치 세력에 대한 조소와 비난이라는 그의 전가의 보도 또한 여전하다. 

다만, 과거의 날선 지적과 비판 대신 보다 우회적이고 은유적인 그의 표현 방식은 거칠 것이 없을 것 같았던 마이클 무어에게 차라리 세월의 무상함이란 연민을 느끼게 한다. 

과거의 국제문제를 떠나 미국적 가치에 대한 현안과 문제점을 고찰함으로써 새로운 돌파구를 찾자는 주제의식은 단순히 미국 한정의 이슈에 국한시키는 것 같으나,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조국과 사회에 대한 애정 어린 질타와 문제 해결에 대한 추동 의지에서 비롯된다. 

그를 과연 단순한 극렬 좌파 선동주의라고 칭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드는 이유다. 

물론 <다음 침공은 어디?> 에서 피력된 이탈리아의 유급휴가와 사원복지 제도, 프랑스의 학교 급식과 핀란드의 의무 교육 제도 등에 대한 부러움은 물론, 하물며 상대적 빈곤 국가라 할 수 있는 튀니지의 여성 인권과 슬로베니아의 대학 교육 제도 등에 대한 한 미국인의 질시는 의아스러울 정도의 과장이 뒤섞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유일 초강대국이라는 위상에 심취한 나머지 타국의 문화에 대한 호기심조차 방기할 수 있는 자국의 오만과 오류에 대한 일말의 가능성을 상기시키고, 타산지석의 심정으로 자기 자신을 돌아보려 하는 이 노회한 작가의 애국주의적 발상은 쉽게 폄하될 정도는 아니다. 

다큐에서도 그려졌듯, 알고 보면 타국에서만 존재한다고 여겨졌던 그 모든 것들이 실상은 자국으로부터 비롯되었으며, 다만 그것을 잊고 살았다는 것을 깨우치는 교훈적 요소는 미국인들의 영원한 동화인 <오즈의 마법사> 를 보는 듯하다. 

이 영화에서 내내 묘사되고 있는, 마치 동전의 양면과도 같이 국방비와 인구 당 감옥에 가는 비율이 동시에 전 세계 부동의 1위인 자본주의 종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엄청난 가계 부채와 학자금 대출, 취업난, 세금 문제 등의 사회 현상이 왠지 낯설지가 않다면 그것은 단순한 기분 탓일 수도 있겠다. 

그래도 자국의 국기를 둘러매고 외국에 대한 침공이라는 말을 거침없이 내뱉으며, 일국의 대통령과 면담할 수 있는 일개 다큐 감독의 그 호방한 기백도 실은 자국의 힘이 담보되는 자신감의 발로임은 자명하다. 

미국 사회에 대한 마이클 무어의 다음 행군지는 과연 어디일지 궁금해지는 것은 아무래도 그 부러움에서 연유하는 것이리라. 

9월 8일 개봉한다. 15세 이상 관람가.  

★★★☆

·영화 저널리스트
·한양대학교 연구원 및 연구교수 역임
·한양대학교, 서원대학교 등 강사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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