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과 추미애의 ‘이상한 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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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현과 추미애의 ‘이상한 화해’
  • 오지혜 기자
  • 승인 2016.09.11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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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보여주기식 ‘통합행보’에 불과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오지혜 기자)

▲ 정계에서는 '통합 정신'을 주도할 타이밍을 엿보고 있었다. 최근 여야 대표가 나란히 시도한 '호남과 화해 주선'은 이같은 맥락에서 나왔다. 사진은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와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 ⓒ 뉴시스

"가족들도 지겨워하는 상처가 될 줄 알았다면 운동 같은 거 안 했을 거요."

광주 트라우마센터는 5·18민주화운동 등 국가폭력 생존자의 트라우마를 치료하기 위해 3년 전 설립된 곳이다. 당시 취재차 만난 관계자의 이야기는 슬프다기보다 암담했다. 그는 지난 1980년 고향인 광주에서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것을 후회한다고 말했다.

예상치 못한 대답에 말이 턱 막혔다. 그는 "기자들에겐 새로운 내용일지 모르겠지만, 우리에겐 벌써 30년 넘게 반복되는 악몽"이라고 덧붙였다.

민주화의 훈장이 밖에선 지역차별로 왜곡됐다. 설움이 쌓이고 경제적인 어려움이 이어졌다. 본인도 주위 사람들도 지쳤다. 이미 몇 해 전부터 호남지역에서는 '피해자의 피로감'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정계에서는 '통합 정신'을 주도할 타이밍이었다. 최근 여야 대표가 나란히 '호남과 화해 주선'을 시도한 것은 이같은 맥락 아니었을까?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지난 19대 재보궐선거에서 '예산폭탄'과 '호남인물의 중앙 등용'이라는 공약을 내세우면서 바람을 일으켰다. 새누리당 간판으로는 첫 호남지역 당선을 이뤄낸 데 이어 20대 총선에서는 지역 의석을 2개로 늘렸다.

이 대표는 기세를 몰아 '예산의 징검다리'에서 '화해의 주선자'를 자처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는 지난 5일 국회 교섭단체 연설에서 "새누리당과 새누리당 전신, 지금의 새누리당 정부와 이전의 보수 정부가 본의든 본의가 아니든 호남을 차별하고 호남인의 자존심을 상하게 한 측면이 없지 않았다"며 "보수 우파를 지향하는 새누리당의 당 대표로서 호남과 화해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에 질세라 야당 대표도 '화해 행보'에 나섰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전통 텃밭인 호남을 대표해 5·18민주화운동의 가해자인 전두환 전 대통령의 예방을 기획한 것.

추 대표는 논란이 일자 결국 예방을 취소했지만, "전당대회 당시 '죄는 미우나 사람은 미워하지 않는다'는 DJ정신을 약속했다. 전 씨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확인을 해보고 싶었다. 그래야 화해가 됐을 테니까"라고 해명했다.

결과적으로 이들의 화해 주선은 실패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각각 생물학적 출생지와 정치적 인연을 내세워 지역 민심을 대변한다고 주장하면서도, 화해의 전제조건인 진정성 있는 반성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다.

화해와 용서는 필요하다.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더욱 절실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선행돼야 할 것은 가해자의 제대로 된 사과와 반성이다.

광주민주화운동 이후 지역민들은 염원해 온 것은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광주정신 계승이다. 이같은 과제가 아직 미완인 까닭은 당시 발포명령 등 핵심 의혹을 부인하고 있는 전두환 전 대통령 탓이 크다.   

특히 전 전 대통령 측은 지난 5월 민주화운동 기념식을 앞두고 자서전 계획과 함께 "광주에 가서 돌을 맞아 5·18 희생자 유가족들의 오해가 풀린다면 뭘 못 하겠느냐"며 "하지만 나는 발포를 명령한 적이 없다"고 밝혀 지역 여론이 크게 분노한 바 있다.  

때문에 추 대표의 화해 주선은 애초에 성립되지 못하는데도 "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들이 너무나 많은 상처를 안고 있다"며 "DJ의 통합도 우여곡절이 있었듯이 제가 안고 가야 할 문제"라며 내부 토론도 없이 전 전 대통령에 대한 예방을 결정했다.  

이정현 대표도 마찬가지다. 호남출신의 보수정당 대표로 과거의 지역차별에 대해 공식 사과한 것은 진일보한 측면이 분명 있지만, 진정성 여부에는 의문이 따른다.

이 대표는 지난 6일 호남의 대표적 정계인사인 故김대중 전 대통령(DJ) 부인 이희호 여사를 예방한 자리에서 "DJ정권 시절 야당으로서 잘 도와드리지 못해 사과드린다"면서 "DJ는 존경하는 정치인으로 어렸을 때부터 많이 배웠다"며 치켜세우기에 열중했다.

그러나 이 여사는 "세월호 사고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로 철저한 진상조사를 해야 한다"며 "이러한 비극이 재발되지 않도록 이 대표가 세월호 참사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길 부탁드리고 싶다"며 예상밖의 답변을 건넸다. 

민주·인권·평화로 요약되는 오월정신은 세월호 참사와 백남기 농민 사고와 연장선상에 있다. 지난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세월호 유가족과 백남기 농민의 가족이 함께 연대한 것은 이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이 대표는 "여사님께 여러 가지로 걱정을 끼쳐드려 정말 죄송하다"며 고개 숙이면서도, "세월호는 제가 봤을 때 여러가지로 복합적이고 아주 많은 것이 잘못된 과정을 거쳐 생긴 것 같다"고 강조했다. 같은 날 새누리당은 세월호특조위 활동기한 연장을 무산시켰다.

이때문에 이 대표가 지역정서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진정성 있는 화해를 청하기보다 정치공학적인 구도만 바라보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실질적인 행동에 나서기 보다 말로만 사과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 총선 결과에 이어 여야 전당대회에서 호남출신의 새누리당 대표와 영남출신의 더민주 대표가 선출되자 정계는 흥분한 모습이다. 견고했던 지역주의 구도에 균열이 보인다는 희망 때문이다.

이정현 대표와 추미애 대표는 앞다투어 화해 주선에 나섰지만, 알맹이 없는 보여주기식 '통합 행보'에 불과했다. 지역민심은 준비가 됐는데, 화해를 주선해야 할 정치권은 머릿속 계산기만 돌리고 있는 판국이다.    

담당업무 : 국회 및 야당 출입합니다.
좌우명 : 本立道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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