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짓 존스의 베이비>, 사랑의 정량을 믿지 않는 이들의 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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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짓 존스의 베이비>, 사랑의 정량을 믿지 않는 이들의 향연
  • 김기범 영화평론가
  • 승인 2016.09.20 14: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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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범의 시네 리플릿> 세월이 진화시킨 로맨틱 코미디의 명품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김기범 영화평론가)

▲ 영화 <브리짓 존스의 베이비> 포스터 ⓒUPI 코리아

남녀평등이 늘 쟁점화 돼 있는 현대 사회에서 젠더 역할에 대한 논의는 필연적으로 끊임없이 유발되고 지속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 중심에 세칭‘골드미스’나‘싱글녀’라 불리우는 현대 여성들의 성과 결혼, 육아 및 직업에 대한 담론과 관심 또한 지대하게 자리 잡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산업화와 개인화, 그리고 경제적 문제 등에 따른 자유로운 연애관이나 비혼 등의 문제는 모든 사회의 전통적 가족상의 해체와 함께 출산율 저하 등의 사회적 문제도 수반하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의사와 결정이 반영되는 것이니만큼, 국가나 사회에서 왈가왈부할 성질의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세상의 모든 남녀들은 여전히 자신의 환상적인 사랑을 꿈꾸며, 더 나아가 이상적인 결혼과 육아에 대한 바람도 완전히 저버리지 못한다.

세상이 변할지언정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본능이고 욕구이기 때문이다.

르네 젤위거가 12년 만에 다시 선보이는 <브리짓 존스의 베이비> 는 런던의 아름다운 도시 풍광을 배경으로, 그 본능과 욕구에 대한 한 여자의 지고지순하면서도 끈질긴 천착과 희열을 보여준다.

시리즈의 신화를 일구었던 2001년 작 <브리짓 존스의 일기> 의 샤론 맥과이어 감독이 다시 메가폰을 잡은 <브리짓 존스의 베이비> 는 주인공의 새로운 직장과 주변인 캐릭터를 적극 활용하며, 유머가 깃든 장면과 대사를 감각적인 코미디로 승화시키는 전작의 무드를 매끄럽게 이어간다.

기존의 로맨틱 코미디 장르에서 나타날 수 있는 남과 여의 단순 성 대결이 아닌, 어느새 중년이 된 주인공들의 여전히 미진한 사랑에 대한 부담스럽지 않은 웃음과 감동은 시리즈의 완결편을 향해 그렇게 나아간다.

비록 관객들에게 뻔히 보이는 결말이지만, 세월에 찌든 여주인공이 일련의 예기치 않은 사건을 계기로 궁극의 남자를 찾아가는 과정은 자신의 삶을 영위하는 동시에 엄마로 다시 태어나는 한 여인의 현실적인 모습들을 분주하게 그려낸다.

물론 르네 젤위거가 분한 여주인공의 상대남들은 늘 완벽하다.

잘 생기고, 세련된 매너와 사회적 지위로 여심을 자극하는 남자들을 바라보고 설레어 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신데렐라 콤플렉스에 대한 지적을 면키는 힘들다.

더구나 그 여주인공은 임신이 어려울 수도 있는 나이에까지 이르러서도 (자의에 의해 만들어진 것은 아니겠지만) 처한 현실보다는 사랑에 대한 소녀적 감수성을 떨쳐 버리지 못한다.

(어언 15년 전부터 시작된 시리즈 1, 2 편의 포스터 속 남녀 주인공들의 피부 상태와 현재의 실상은 누가 봐도 극명한 차이를 이룬다.)

숱한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명가로 익히 아성을 굳힌 영국의 워킹 타이틀은 2004년 작 <브리짓 존스의 일기 - 열정과 애정> 을 통해 관객들이 예상했던 주인공의 해피엔딩을 그렇게 뒤집으며, 나이 든 여주인공의 신데렐라 콤플렉스의 여지가 깃든 사랑을 또다시 보여준다.

로맨틱 코미디의 정석이라 할 수 있는 만남과 오해, 그리고 재회와 해피엔딩을 그대로 따라가는 뻔한 공식이지만, 그 뻔한 공식을 효과적으로 살려내고 극대화시킨 감독의 연출력과 르네 젤위거 특유의 편안하면서도 천연덕스런 연기는 시리즈의 명성을 퇴색시키지 않는다.

시리즈 전편에 걸쳐 (고지식하고 답답하지만) 늘 모범생의 전형적 캐릭터를 잇고 잇는 콜린 퍼스는 여전하고, 거부할 수 없는 최상의 조건으로 여자를 흔드는 패트릭 뎀시의 호연도 만만치 않다.

콜린 퍼스의 진중함과 패트릭 뎀시의 푸근함은 서로 상호 교차하며 캐릭터의 온도차를 조율하고, 이들의 신사적인 심리적 다툼은 여주인공의 사랑스러움을 얽히고설키게 하면서도 돋보이게 만든다.

특히 패트릭 뎀시는 전작과는 달리 사고사(?)로 인해 부재한 휴 그랜트가 내뿜는 존재감의 간극을 잘 메꾸었다.

여느 후속편들처럼 간간히 얼굴을 비추는 전편의 주변 친구들 대신, 이번에는 엠마 톰슨의 조역이 빛을 발한다.

다만 앞에서도 언급했듯, 이야기 구조가 기존 장르의 공식을 그대로 답습한 만큼 뻔한 스토리텔링과 함께 주연 배우들의 연기 역시 로맨틱 코미디 캐릭터의 이미지를 반복하는 총론은 벗어나지 못한다.

장르상의 새롭고 신선한 기본 얼개가 아쉬울 수도 있는 부분이다.여기에 로맨틱 코미디 특유의 재치 있는 대사나 상황을 통해 영화를 이어가는 이야기를 어떻게 세련되게 가공하는가는 부가적인 부담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전작들의 톤 앤 매너를 흐트러뜨리지 않은 채, 오히려 주인공의 성과 사랑 그리고 세월이 흐른 만큼 여기에 덧대어 출산에 대한 이슈를 훈훈하고 달콤하게 포장하는 기교는 가히 진화라 불리울만 하다.

2001년부터 이어져 온 작품답게, 영화 내내 울려 퍼지는 여러 OST 의 적극 삽입과 같이 보다 젊었던 시절의 향수와 정서를 이어주는 영악한 장치도 잊지 않는다.

이 시리즈의 영원한 테마곡이라 할 수 있는 셀린 디옹의‘All By Myself’의 재활용은 전혀 식상하지 않다.

또한 <사관과 신사> 의 명장면을 연상시키는‘Up Where We Belong’과 같은 추억어린 OST 의 깨알 같은 삽입도 같은 주제곡을 답습했던 역대 영화들과 비교할 때 전혀 촌스럽지 않고 매끈하다.

태생적 부실을 상쇄하고자 프랜차이즈의 인기에 편승하기 위해 전작의 코드들을 어설피 차용하여 그 명성을 오히려 갉아 먹는 대다수 국내외 영화들에게는 훌륭한 본보기가 될 만하다.

그것만으로도 많은 연인들이 손잡고 이 영화를 볼 가치는 충분하다.

물론, 연인들보다는 수치나 양으로 단순히 치환될 수 없다고 믿는 심쿵한 사랑을 애타게 기다리는 세상의 많은 여자들에게 이 가을은 영화의 감성을 더 명징하게 만들 것이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 부터 이어진 한 여자의 사랑 찾기 대장정은 결국 15년 만에 그렇게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린다.

(이번 편이 시리즈의 완결이라 믿고 싶지만, 하긴 사랑이 늘 그렇듯 솔직히 그 앞날을 어찌 알겠는가?)

9월 28일 개봉한다. 15세 이상 관람가.

뱀의 발 : 영국의 유명 가수 에드 시런이 카메오로 출연하지만, 상대적으로 낯선 국내의 일반 관객들에겐 어느 정도의 잔재미를 줄지는 미지수이다. 그보단 그 애드 시런과 한국인이라면 자다가도 귀가 쫑긋할, 반가운 음악과 대사가 영화의 파티 장면에 나온다.

★★★★

·영화 저널리스트
·한양대학교 연구원 및 연구교수 역임
·한양대학교, 서원대학교 등 강사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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