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임건의안]대통령이 꼭 받아들여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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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임건의안]대통령이 꼭 받아들여야 할까?
  • 정진호 기자
  • 승인 2016.09.26 17: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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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정 이래 해임건의안 가결된 5명 장관 모두 물러나…학계 다수설은 ‘구속력 없음’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 헌정 사상 최초로 국무위원 해임결의안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한 박근혜 대통령 ⓒ 뉴시스

차기 대선 전초전(前哨戰)이 시작됐다. 제20대 국회 개회 직전 손을 맞잡고 다짐했던 협치(協治)는 온데간데없고, 내년 12월을 대비한 기(氣) 싸움만 남았다. 청와대와 정부여당도, 거대 야당도 물러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전투의 최전선은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해임건의안이다. 청문회 과정에서 불거진 다수 의혹을 뒤로 한 채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4일 김 장관을 전자결재로 임명하면서 양측의 감정싸움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됐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은 공조를 통해 김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을 제출했고, 지난 24일 있었던 표결에서는 국민의당까지 가세해 해임건의안을 통과시켰다.

이러자 박 대통령은 곧바로 ‘수용불가’ 입장을 밝혔다. 정 대변인은 “임명된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장관에게 직무능력과 무관하게 해임을 건의했다는 점과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제기된 의혹은 모두 해소됐다는 점, 새누리당에서 해임건의안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요청한 점을 감안해 김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다”고 전했다.

야당도 양보 없이 맞섰다. 더불어민주당은 “오만과 불통의 극치”라며 “국회와 국민을 무시하는 용납할 수 없는 처사”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국민의당 또한 “여야가 합의해 통과시킨 상시청문회법을 거부해 의회에 선전포고하더니, 이제는 전쟁하듯 의회를 적대시하고 있는 듯하다”면서 “이는 의회주의의 부정이요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해임건의안 수용 여부를 두고 청와대·정부여당과 야당이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을 벌이는 모양새다.

헌정 이래 국무위원에 대한 해임건의안이 가결된 사례는 임철호 농림부 장관(1955년), 권오병 문교부 장관(1969년), 오치성 내무부 장관(1971년), 임동원 통일부 장관(2001년), 김두관 행자부 장관(2003년)까지 총 다섯 차례 있었다. 이중 임철호 농림부 장관과 권오병 문교부 장관, 오치성 내무부 장관은 해임건의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반드시 사퇴해야 했던 당시 헌법에 따라 곧바로 해임됐다.

강행규정이 없어진 1987년 헌법 하에서 해임건의안을 받아든 임동원 통일부 장관과 김두관 행자부 장관 역시 사임하는 형태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국민을 대표하는 ‘선출직’ 국회의원이 ‘임명직’ 국무위원의 해임을 건의한 만큼, ‘국민의 뜻을 따른다’는 차원에서 사의를 표명하는 것이 관례로 자리 잡았다.

실제로 2001년 임동원 통일부 장관의 해임건의안 통과 당시 김종필 명예총재는 “국회에서 결의된 사항은 바로 국민의 뜻”이라며 “민의를 즉각 수용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야당이 박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으로 정의한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박 대통령의 결정이 ‘레임덕이 무서워 무리수를 둔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 해임건의안이 대통령을 구속할 수 없다는 것이 헌법학계의 다수설이다 ⓒ 시사오늘

다만 학계에서는 대통령의 해임건의안 수용 여부에 대한 논란이 있다. 우선 헌법학자인 서울대학교 성낙인 총장은 〈헌법학입문〉에 “국회가 해임 건의한 국무총리·국무위원에 대하여 대통령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해임하여야 한다”고 썼다. 그는 “국무위원 해임건의권의 본질이나 연원은 의원내각제로부터 비롯됐으며, 건의든 의결이든 간에 국회의 대정부 정치적 책임 추궁수단으로서 의원내각제에서 차용한 제도”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직접적인 해임의결권은 아니라 하더라도 사실상 정부의 존속에 개입하는 제도적 장치”라고 주장한다.

반면 한국헌법학회 회장을 지낸 새누리당 정종섭 의원은 〈헌법학원론〉에 “국회의 국무총리 또는 국무위원에 대한 해임건의는 법적 성격상 대통령을 구속하지 않는다”고 적었다. 정 의원은 구속력 여부가 ‘건의와 요구의 차이’라면서 “대통령은 국회의 건의가 부당하다고 판단하는 경우에는 이를 수용하지 않을 수 있다”고 밝혔다.

2011년부터 2012년까지 한국헌법학회 회장을 역임한 강원대학교 김학성 교수 역시 〈헌법학원론〉에서 “해임건의가 있을 때 대통령은 반드시 해임을 하여야 하는가가 문제된다”며 “대통령을 법적으로 구속할 수 없다고 보는 견해가 다수설”이라는 견해를 내세웠다. 이론(異論)이 있지만, 학계에서는 해임건의안이 대통령을 구속할 수 없다는 것이 다수설이다. 전례(典例)와 달리, 학계의 의견은 박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뒷받침하고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해 강상호 한국정치발전연구소 대표는 26일 〈시사오늘〉과의 통화에서 “대통령이 유임시키더라도 법리적으로는 하자가 없다”면서도 “하지만 국무위원은 정무직이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일반적 관료라면 모르겠지만 국무위원은 정치적인 성격을 갖고 있는 자리”라며 “그런 차원에서 본다면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 하더라도 해임건의안을 받아들이거나 사퇴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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