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무리울에서] ‘국감 보이콧’과 국회의원 의무 방기(放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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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무리울에서] ‘국감 보이콧’과 국회의원 의무 방기(放棄)
  • 권혁식 논설위원
  • 승인 2016.09.28 11: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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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권혁식 논설위원)

새누리당이 야당의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건의안 일방 처리에 항의해 26일부터 시작되는 국정감사를 보이콧하고 있다. 이정현 당대표는 “정세균 국회의장이 의회주의를 파괴했다”면서 정 의장의 사퇴를 요구하며 같은 날부터 단식투쟁에 돌입해 28일로 사흘째를 맞고 있다.

도중에 새누리당 소속 김영우 국방위원장은 27일 “의회민주주의의 기본을 지키겠다”면서 국방위 국감 정상화 방침을 밝혀 당 지도부를 놀라게 했다. 당 지도부와 일부 중진들이 국감장으로 향하려는 그의 발길을 3시간 넘게 국회에 붙잡아둔 덕분에 이날은 대오이탈을 막을 수 있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의 소신까지는 무마하지 못한 것 같다.

새누리당 지도부가 국감 보이콧을 결정하면서 국감의 기능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궁금해진다. 정 의장 사퇴를 압박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 대표의 단식투쟁과 함께 국감 보이콧을 결행한 것을 보면, 둘의 성격을 같은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단식투쟁은 스스로 ‘권리 포기’지만 ‘국감 보이콧’은 그렇지 않다

이 대표는 분명히 본인의 권리를 포기하면서 정 의장을 압박하고 있다. 가장 원초적인 먹을 권리다. 정 의장의 사퇴 당위성을 국민들에게 호소하기 위해 스스로 생존 수단을 끊고 결연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국감 거부를 통해 정 의장을 압박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새누리당 지도부도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중요한 권리와 이익 포기에서 그 힘이 나온다고 보고 있는 것인가? 과연 포기되는 것이 권리뿐인가?

국정감사는 헌법 제61조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그 절차와 방법에 대해선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이라는 단일 법률에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국감의 목적과 기능에 대해선 국회 홈페이지에 더 잘 설명이 돼 있다. ‘국회가 하는 일’을 열어보면 국감의 효용으로 △국정운영의 실태 정확히 파악 △입법과 예산심의를 위한 자료 수집 △국정의 잘못된 부분을 적발·시정 등 3가지를 들고 있다. 그리고 목적은 ‘입법·예산심의·국정통제라는 (국회) 기능의 효율 수행’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다시 말해, 국감은 ‘행정부 견제․감시’라는 국회 본연의 기능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중요 수단임을 밝힌 것이다. 특히 국민혈세로 편성되는 내년도 정부예산안 심의를 앞두고, 그간 국정수행 과정에서 예산낭비는 없었는지, 민생현장과 동떨어진 탁상행정은 없었는지, 국민들께 불편과 손해를 끼친 정책오류는 없었는지를 따져 시정과 개선을 요구하고 예산안 심의 때도 증액이나 감액을 통해 국감 결과를 반영하게 된다. 따라서 국감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으며, 그 기능을 국민들은 스스로 뽑은 대표들에게 위임해놓은 것이다. 그 대표들이 바로 국회의원이다.

국감 수행은 국회의원의 권리이자 동시에 의무

따라서 국감 수행은 국회의원의 권리이자 동시에 ‘의무’인 것이다. 이 대표가 단식투쟁을 하면서 원초적 권리를 포기하는 것과 새누리당 의원들이 국감을 포기하는 것은 성격과 차원이 다르다. 국민들로부터 위임받은 기능을 보이콧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방기하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혹여 일각에서 “우리가 포기하는 것은 권리뿐”이라고 주장한다면, 여당의원들의 국감은 장차관에게 큰소리로 호통치며 권위를 과시하고, 야당의 예리한 추궁을 훼방놓으며 피감기관을 비호하는 기능뿐이라고 스스로 폄하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국감은 원래 ‘야당의 잔치’로 평가된다. 행정부의 실정과 정책오류를 파헤칠수록 야당의 존재감을 높일 수 있고 현 정권의 위상을 깎아내려 정권교체 가능성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여당의 국감활동이 무용한 것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야당에 비해 좀더 무게감 있게 행정부의 실정을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보다 내실 있는 국감을 수행할 수도 있다. 여당 의원들도 야당 못지않게 언론을 통해 지역구민들에게 자신의 활동상을 알려야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좋은 아이템 발굴과 설득력 있는 문제제기에 최선을 다한다.

여당의 국감활동도 나름대로 순기능을 한다

때때로 ‘국감 무용론’이 제기되지만 그것은 ‘그렇게 수박 겉 핥기 식으로 대충대충 할 바엔 차라리 안하는 게 낫다’는 냉소적인 의미의 말이지 정말로 소용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만일 국감이 없어진다면 속으로 쾌재를 부를 상대는 피감기관이며 행정부 쪽이다. 지금도 여당의 국감 보이콧이 ‘출구 없이’ 계속되길 바라며 표정관리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1년 365일 중 겨우 20일간 진행되는 국감이지만 이 기간 동안 공직사회에 숨겨진 각종 부조리가 수면 위로 떠올라 공론화되고 개선책이 모색된 사례는 부지기수다. 공공기관 성과급 잔치, 퇴직자 재취업 규정 위반, 공공기관 입찰 비리, 군수품 납품 비리, 대기업의 불공정 관행, 사각지대에 방치된 사회적 약자 등등 국감이 아니면 신문지면을 장식할 기회를 얻지 못했을 사회 이슈들은 무수히 많다.

아무 것도 국감 보이콧을 정당화할 이유는 못된다

김재수 장관이 터무니없는 의혹을 빌미로 인사청문회에서 ‘부적격’ 판정을 받았고, 야당이 세월호특조위 연장과 어버이연합청문회를 받아내기 위해 김 장관 해임건의안을 제출했고, 정 의장이 중립원칙을 저버리고 편파적인 국회 운영으로 해임건의안을 통과시켰다고 하더라도, 국감 보이콧을 정당화할 이유는 못된다. 현행 법체계에서 국감 실시는 ‘조건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국감은 그 자체만으로 국회의원이 수행해야할 신성한 의무에 해당된다.

김영우 국방위원장은 27일 국방위 국감 정상화 방침을 알리기 위해 국방위원들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에서 다음과 같이 적었다. “저는 제가 생각해왔던 의회민주주의의 원칙에 따를 수 밖에 없습니다. 국회는 상임위 위주로 운영돼야합니다. 특히 각 위원회의 국정감사는 국회의 가장 중요한 기능 중에 하나입니다.” 충분히 공감이 가는 글이다.

현실적으로 생업에 바쁜 대부분의 국민들로서는 작금의 정국경색에 대해 ‘정치하는 자들이 또 권력싸움 하는구나’ 정도로 받아들일 수 있다. 조금 더 정치에 관심이 있는 국민은 ‘여소야대 정국에서 서로 기선잡기에 나섰구나’라고 이해할 수도 있다. 여야 간에 미묘한 잘잘못을 직접 판단하기 위해 언론보도를 꼼꼼히 챙기면서 귀한 시간을 할애할 국민이 얼마나 있겠는가?

지난 25일밤 새누리당 심야의총에서 안전행정부 제1차관 출신 박찬우 의원이 ‘국감 보이콧’을 선언한 당 지도부의 재고를 요청하면서 했던 말이 인상적이다. 그는 "국민 눈에 벌어지는 상황은 김재수 장관 해임의 이유에 대해 국민들은 잘 모르고 '왜 또 싸우나' 한다"면서 "국민들은 김 장관 사건에 누가 옳고 그름을 떠나 정치권이 해야 할 일을 안하고 싸운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초선 의원임에도 3선급 중진 이상의 정무감각이라는 평가다.

국민정서법 제1조는 ‘과유불급’

국민들은 어차피 정치판이라는 게 여야 간에 정쟁이 발생하기 마련이고 공방을 주고받으며 때론 명분싸움도, 감정싸움도 하는 곳으로 이해하고 있다. 웬만큼 시끄러워도 ‘그러려니’ 하며 넘어간다. 그러나 인내의 한계를 넘게 되면 국민들도 짜증을 내고 화를 내게 된다. 민심의 역풍이 그래서 일어난다. 정 의장 사퇴 압박에 단식투쟁은 그렇다 치더라도 ‘국감 보이콧’까지 동원된 것은 재고돼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민정서법’ 제1조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 석사

前 영남일보 서울 정치부 기자

現 시사오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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