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깅'하는 '칼국수 대통령'이 그립다
스크롤 이동 상태바
'조깅'하는 '칼국수 대통령'이 그립다
  • 박근홍 기자
  • 승인 2016.10.05 11: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자수첩>김영란법, 진정한 '소통의 시대'를 열어라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박근홍 기자)

▲ 미국 방문 중에 백악관에서 美 클린턴 대통령과 조깅하는 YS(고 김영삼 전 대통령) ⓒ 대통령기록관

우리나라의 사회 각계 위정자들은 오늘날이 바야흐로 소통의 시대임을 강조한다. 국가를 운영하는 대통령부터 작은 소모임을 주관하는 장(長)까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소통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고 역설하고, 모두의 이야기를 듣겠다고 공언한다.

그러나 이들의 말과는 달리, 이 시대를 사는 국민들은 소통에 대한 갈증을 심각하게 느끼는 눈치다. 지난달 27일 국가미래연구원과 한 일간지는 '빅데이터로 본 2017년 대선 시대정신 예측 보고서'를 통해 다가올 시대정신 중 하나로 '소통'을 꼽았다. 국민들이 극한 대립과 갈등을 청산할 수 있는 소통의 시대가 오길 갈망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위정자들은 '소통의 시대'에, 국민들은 '소통 없는 소통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왜 이런 괴리가 생긴 걸까.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최근 시행된 '김영란법(부정청탁및금품등수수의금지에관한법률)'에 주목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김영란법은 '언론인과 사립학교 교직원을 포함한 공직자가 직무 관련성과 상관없이 100만 원을 초과하는 금품을 받으면 형사처벌을 받는 법'이다. 대한민국 사회 전반에 고착된 접대 관행에 대대적인 변화를 이끌 수 있는 혁명과 같은 법이라는 게 세간의 중론이다. 접대 관행이라 함은 '소통의 변질'이다. 그런 측면에서 김영란법의 본질은 '소통의 정상화'라고 볼 수 있다.

언제인가부터 우리나라에서는 사람과 사람 간 소통에 조건이 붙기 시작했다. 한정식 집에서 수만 원 짜리 식사를 해야만 격식 있는 만남으로 인식됐고, 골프장에서 만나 수십에서 수백만 원대에 이르는 선물을 주고받아야만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경조사비에도 조건이 붙었다. 친한 사이면 5~10만 원, 덜 친한 사이면 3~5만 원이라는 의아한 공식이 통용됐다. 진정한 축하와 추모의 마음은 찾기 어려웠다.

이처럼 '경제력'이 소통의 도구가 되다보니, 소통 그 자체가 변질돼 버렸다. 봉투에 얼마나 담겨있느냐가 그 사람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만연했다. 바로 이 대목이 앞서 거론한 위정자와 국민들의 괴리가 발생한 이유로 보인다.

▲ 김영란법을 의식한 일부 국회의원들이 2만5000원짜리 호화 도시락을 먹었다고 홍보해 국민들의 공분을 샀다. ⓒ 뉴시스

사회 각계의 위정자들은 보통 자신들의 분야에서 막대한 기득권을 지니기 마련이다. 그들에게는 권력이 있고, 경제력이 있고, 힘이 있다. 그리고 이를 도구로 활용해 그들만의 소통을 이어갔다. '장자연 리스트 사건' 등 정재계 성접대 의혹, '한나라당 차떼기 사건' 등 각종 정치자금 로비, 그리고 최근 불거진 '미르재단·K스포츠재단 논란'이 대표적인 그들만의 소통의 예다.

'소통 없는 소통의 시대'에 국민들이 소통에 목마른 사이 위정자들은 이처럼 '소통의 시대'를 맘껏 향유하고 있던 것이다. 배임·횡령·뇌물죄 등 현행법은 그들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그들이 가진 기득권이 '소통의 특권'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김영란법이 시행됐지만, 위정자들과 국민들 사이의 괴리는 좁혀질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소통의 변질 현상도 여전해 보인다. 사람들은 '3·5·10'이라는 숫자에만 주목하고 있을 뿐, '소통의 정상화'라는 동법에 담긴 진정한 의미를 애써 외면하는 눈치다.

'소통의 시대'를 나 홀로 즐기던 위정자들은 소통의 특권을 내려놓기 아쉬워서, '소통 없는 소통의 시대'에 소통의 갈증을 느끼던 국민들은 그나마 있었던 소통의 도구를 잃을까 두려워서 '소통의 정상화'를 기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특권을 누리고 있는 위정자들이 먼저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생각이다. 김영란법은 그 취지 자체가 아래로부터의 개혁이 아닌 위로부터의 개혁이다. 기득권자들이 특권의식을 내려놓아야 진정한 소통의 시대를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 이 땅의 위정자들은 여전히 과거와 같은 특권의식을 고수하는 눈치다. 최근 온 국민을 공분케 했던 국회의원 도시락 파문이 대표적인 예다.

김영란법 시행을 하루 앞둔 지난달 27일 공항공사 국정감사 질의를 마친 일부 의원들은 인천공항 식당에 모여 2만5000원짜리 도시락을 점심 식사로 먹었다. 이는 김영란법을 의식한 의원들의 홍보 전략이었다. 특권의식이 작용하지 않았다면, 조금만 국민들의 마음을 헤아렸다면 고가의 도시락이 아닌 3000~5000원대의 편의점 도시락을 꺼내들었을 것이다.

청와대 호화만찬 논란도 마찬가지다. 값비싼 송로버섯, 철갑상어 알을 소금에 절인 캐비어, 상어지느러미를 이용한 샥스핀 등 부르는 게 값인 각종 특급 요리가 지난 8월 새누리당 지도부 초청 오찬 자리에 올랐다. '경제 위기'를 외치는 입으로 정작 호화스런 음식을 즐겼으니 이 또한 특권의식의 발호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 YS(고 김영삼 전 대통령)은 칼국수 한 그릇으로도 충분히 소통다운 소통을 꾀할 수 있었다(사진제공= 최재영 사진가) ⓒ 뉴시스

그들에게 YS(故 김영삼 전 대통령)를 반추(反芻)해 보라 조언하고 싶다. YS는 칼국수 한 그릇과 조깅만으로도 거산(巨山)다운 소통을 충분히 꾀할 수 있었다.

세간에 널리 알려진 것처럼 YS는 항상 칼국수를 즐겼다. 정치인 만찬장이든, 외국 대사를 초청한 자리든, 각료들과의 점심식사든 자리의 경중과 지위고하를 가리지 않고 칼국수를 식탁 위에 내어놨다. 오늘날 대다수의 국민들이 YS를 '소탈하고 검소한 대통령'으로 추억하는 이유가 별다른 게 아니다. 그의 소통에는 특권의식이 없었다.

또한 YS는 변질된 소통의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도 원활한 소통을 지속했다. 고가의 선물이 아니라 고향 특산품 멸치를 주변에 돌려 자신의 이미지를 각인시켰고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 흔한 골프장 미팅 대신 조깅으로 대화의 장을 열었다. 1995년 방미 당시 클린턴 대통령과 백악관에서 조깅을 함께하며 대소사를 논했던 YS를 기억하는 이들이 아직도 많을 것이다.

이제 위정자들은 바뀌어야 한다. 자신들이 먼저 변화해야 사회 전반을 변화시킬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소통의 정상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칼국수'와 '조깅'이 더는 그립지 않은 시대, 진정한 '소통의 시대'가 곧 도래하길 기대한다.

담당업무 : 건설·부동산을 중심으로 산업계 전반을 담당합니다
좌우명 : 隨緣無作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