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기자의 까칠뉴스]"한글은 촌스럽다" 570돌 한글날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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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기자의 까칠뉴스]"한글은 촌스럽다" 570돌 한글날에 대한 단상
  • 김인수 기자
  • 승인 2016.10.08 10: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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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식 창씨개명 자랑스럽다?…영혼 없는 '언어 사대주의'에 빠진 대한민국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김인수기자)

▲ 광화문 앞에 서 있는 세종대왕 동상. ⓒ 뉴시스

내일 10월 9일은 제570돌 한글날입니다. 한글은 세종대왕이 옛 글자인 가림토를 재정립한 우리 글자입니다. 이 증거는 세종이 만든 훈민정음을 당장 폐기 하라는 최만리 등 상소문에 언문(諺文) 소리가 무려 7차례나 나오는 것을 보면 세종 전에 이미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은 상소문에서 ‘지금 언문은 모든 (옛) 글자를 합해 아울러 쓰고 그 소리의 해석만 변경했으니 (한문)글자의 형태가 아닙니다.’(今此諺文合諸字而並書變其音釋而非字形也)고 주장했습니다. 앞서 김부식은 삼국사기에서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인들은 신지녹도전자, 가림토 등 우리 선조들이 만든 글자를 우리 문자로 알았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 힌글간판으로 가득한 1985년 명동거리(왼쪽)와 영어간판으로 빼곡한 2016년 명동거리. ⓒ인터넷커뮤니티

한글에 대한 기원을 설명하다보니 서두가 길었네요.

한글날만 되면 세종대왕께 부끄러워 낯을 들 수가 없습니다. 글자란 그 민족의 영혼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명동, 이태원, 강남거리는 온통 영어로 된 간판뿐입니다. 심지어 아이들 과자봉지 이름까지도 한글을 찾기가 힘들 정도 입니다. 국적불명의 희한한 말들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한글을 쓰면 촌스럽고 영어를 쓰면 고급스러운가요?

우리의 언어 사대주의는 뼛속 깊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멀리 통일신라 때부터 조선시대까지 1500여년 동안 중국문화와 한문 속에 살았습니다. 최고 통치자를 이르는 ‘왕’이라는 중국 부름말을 처음 쓴 것은 신라 지증왕입니다. 그 전에는 ‘거서간’ ‘마립간’ 차차웅‘ 등 우리식으로 우두머리를 불렀습니다.

겨우 중국 한문으로부터 벗어나려는데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일본어가 그 자리를 채우더니 이제는 힘의 세기가 미국으로 넘어가면서 ‘영어 섬기기’로 바뀌고 있습니다. 회사이름, 건물이름, 상품이름을 영어로 바꾸더니 급기야 정부기관 직제마저 영어로 바꾸고 있습니다.

통일신라 때 언어 식민지가 되던 때와 닮지 않았나요. 일본이 우리말과 글을 죽이고 우리 겨레 뿌리를 뽑아 영원히 식민지로 만들려고 강제로 일본식 창씨개명을 한 것은 탓하면서도 오늘날 스스로 미국식 창씨개명을 하고 있는 것은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는 듯합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NARS’로, ‘자동출입국심사’는 ‘SES’라고 표기한 것을 보면 한심하기 짝이 없습니다. 한글 설명 없이 영어 약자만을 쓰는 것은 국어기본법을 위반한 것입니다. 정부기관에는 이런 표기가 수두룩합니다. 한국토지주택공사는 ‘LH’,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는 ‘Kobaco’, 한국철도공사는 ‘Korail’ 등으로 표기하고 있죠. 이제는 영어 약자가 유행이 돼 버렸습니다. 아니 뿌리박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LG, SK 등은 세계를 상대로 장사를 하니 그렇다 치더라도 NH, SH는 뭡니까. KT&G, K-water, Kogas는 또 무슨 말입니까. 은행권은 어떤가요. KB국민은행, KEB하나은행, IBK 기업은행, 마을금고는 MG라고 까지 하더군요. 은행명 앞에 영어약자를 쓰면 고급스러워 보이나요? 영혼 없는 사대주의의 산물이라고 생각이 들지 않나요?

아파트 이름은 캐슬, 팰리스…. 아파트 이름이 얼마나 고약하면 ‘시골 부모들이 못 찾아오게 그런 이름을 붙였다’는 농담까지 생겼을까요.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나 다름없는 짓입니다.

이런 행태를 보면 ‘삼성’은 참으로 기특합니다. 정부 기관 같았다면 아마도 ‘SS’라고 하지 않았을까요.

참고로 북한은 중국의 전 주석인 ‘후진타오’를 우리가 한자를 읽는 대로 ‘호금도’(胡錦濤)라고 한다는군요. 영국은 피렌체(Firenze)를 Florence라고 쓰고 ‘플로렌스’라 읽고, 프랑스는 런던(London)을 Londres 라고 쓰고 ‘롱드르’라고 읽고, 이탈리아는 파리(Paris)를 Parigi 라고 쓰고 ‘빠리지’라 읽고, 에스파냐는 프랑스(France)를 Francia라고 쓰고 ‘프란씨아’라 읽고, 프랑스는 레오나르드 다 빈치 (Leonardo da Vinci)를 Leonard de Vinci 라고 쓰고 ‘레오나르 드 방씨’라고 읽습니다.

‘吾等은 玆에 我朝鮮의 獨立國임과 朝鮮人의 自主民임을 宣言하노라. 此로써 世界萬邦에 告하야 人類平等의 大義를 克明하며 此로써 子孫萬代에 誥하야 民族自存의 正權을 永有케 하노라.’

무엇인지 아시죠. 독립선언문입니다. 무엇을 느꼈나요? 우리 글자는 토씨 밖에 없습니다. 전 국민이 궐기해야 할 독립선언문이 이 모양입니다. 일반 백성이 알 것이냔 말입니다.

이 나라를 이끌어가야 할 교수, 학자, 언론인 등이 TV토론에서 하는 말은 또 어떤지요.

“그로벌 스덴다드 에 멀티미디어의 뉴 푸론티어가 될 시기에…” 무슨 말인지 아시겠나요? 미국사람 들으라고 하는 말인지 우리 국민 들으라 하는 말인지 도통 알 수가 없습니다.

반면 세계인들은 우리 한글에 대해 극찬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글보다 뛰어난 문자는 없으며 세계의 알파벳입니다.” 미국 언어학자인 로버트 램지 美메릴랜드대 교수가 2009년 10월 6일 주미 한국대사관서 한글날 563돌 기념강연에서 한 한글에 대한 예찬입니다.

교육자 신분으로 고종의 초청으로 우리나라에 온 헐버트는 ‘중국과 일본이 한글을 도입해야 한다’고 했다고 합니다.

1913년 전후 청나라 실권자 원세계(위안스카이)는 헐버트의 한글사용 제안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손문의 ‘신해반란’으로 권력을 상실한 후 없었던 일이 돼 버렸죠. 일본의 한글 사용에 대한 주장은 헐버트의 자전적 회고록인 <헐버트 문서>에 등장합니다.

10여년 전 한 일본 관광객이 한 말이 생각나는군요.

“너희 나라(대한민국)에는 아직 한글간판이 많은 것이 부럽다. 우리나라(일본)에는 우리말(일본어) 간판을 찾아볼 수가 없어 부끄러운데….”

기성세대들은 “요즘 10대들은 정체불명의 외계어로 세대간 단절감을 느끼게 한다”고 아우성입니다. 과연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나요? 

담당업무 : 산업2부를 맡고 있습니다.
좌우명 : 借刀殺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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