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30대를 위한 자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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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30대를 위한 자리는 없다
  • 정진호 기자
  • 승인 2016.10.28 14:2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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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나고 싶다’는 30대의 절규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김현정 기자)

청년실업률 9.4%. 지난 12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6년 9월 고용동향 자료에 따르면, 올해 9월 청년층 실업률은 1999년 통계 작성 이후 최고치였다. ‘단군 이래 최고 스펙’이라는 수식어가 무색하게, 거리를 배회하는 청년층은 늘어가고 있다. 수많은 청년들이 어두운 동굴 속에서 헤매고 있지만, 출구를 알리는 빛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청년 실업자’라는 타이틀조차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나라 청년실업률 통계는 15~29세를 대상으로 한다. 만 30세가 넘는 순간, 국가는 ‘청년실업자’라는 딱지조차 빼앗아버린다. 2013년 제정된 청년고용촉진특별법 역시 청년의 범위를 15~29세(공기업·공공기관은 34세)로 정해뒀다. 사기업에 취업하려는 사람들은 29세가 넘는 순간 어떤 지원도 받지 못한다는 뜻이다.

기업도 외면한다. 지난해 취업정보포털사이트 〈잡코리아〉가 인사담당자 238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73.9%가 ‘신입사원 채용 시 지원자 나이를 살핀다’고 답했다. 또 인사담당자들이 생각하는 신입사원 적정 연령은 남성이 28세, 여성이 25세였다. 심지어 취업을 위한 스터디 모임에서마저 30대는 설 자리가 없었다. 취업정보포털사이트 〈인크루트〉 조사 결과, ‘나이가 많아서 스터디 가입에 실패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무려 12%에 달했다.

〈시사오늘〉은 30대 취업준비생의 어려움을 알아보기 위해 서울 시내 한 대학교를 나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다가 실패, 서른 살이 넘는 나이에 취업 준비를 시작한 A씨(30세)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본 기사는 A씨와 인터뷰·동행취재·추가취재 한 내용을 1인칭 시점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 2016년 9월 청년실업률이 9.4%로 1999년 통계 작성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러나 이 청년실업률 통계에는 30대 취업준비생이 포함되지 않는다 ⓒ 통계청

불합격.

올해만 벌써 일곱 번째 받는 불합격 통보다. 처음에는 기분 나빴다. 고생고생해서 써낸 이력서와 자기소개서가 단 세 글자로 휴지조각이 되다니. 하지만 2년째 같은 일이 반복되니 오히려 세 글자가 고맙다. ‘저희 ○○회사 사원모집에 지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로 시작하는 장문의 불합격 통지는 더 큰 절망만 부른다. ‘불합격 통지라도 받고 싶다’는 사람들은 마음이 단단한 사람이거나, 아직 취업 전선에 뛰어든 지 오래되지 않은 사람일 것이다.

어정쩡한 학벌, 어정쩡한 학점, 어정쩡한 대외활동 경험. ‘어정쩡함’ 그 자체였던 나는 대학 졸업을 1년 앞두고 노량진으로 들어갔다. 내세울 만한 학벌도, 남들 다 간다는 교환학생이나 어학연수 경험도 없던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공무원 시험이 전부였다. 공무원이 적성에 맞는다거나, 꼭 해보고 싶었던 일이라는 생각은 손톱만큼도 없었다. 노량진은 내게 도피처였을 뿐이다.

그러나 그곳은 도피처가 아니었다. 전쟁터였다. 새벽같이 일어나 스터디를 하고, 강의를 듣고, 밤늦게까지 독서실에 앉아 있는 날이 2년 넘게 지속됐지만 합격의 영광은 언제나 남의 이야기였다. 공무원 학원에서 우연히 사귀게 된 친구가 말했다. “그거 알아? 이 강의실에서 합격해서 나가는 사람은 두세 명이래.” 그 강의실에는 100명이 넘는 ‘공시생’들이 앉아있었다.

노량진에서 3년을 허비하고 학교로 돌아왔다. 내게 남은 시간은 1년. ‘적어도 남들 같은 스펙은 쌓아야지’라는 생각으로 1년을 보냈다. ‘공시생’ 신분은 벗어났지만, 생활은 그대로였다. 새벽같이 기상해 스터디를 하고, 강의를 듣고, 독서실에서 공부를 했다. 차이가 있다면, 언제 나올지 모르는 기업 공채 발표를 늘 주시해야 했다는 것. 그리고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작성이라는 과정이 하나 더 들어갔다는 것이다. 

▲ 노량진 공무원 학원에서는 수많은 ‘공시생’들이 땀을 흘리고 있다. 그러나 이들 중 합격의 영광을 손에 넣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 뉴시스

공백기의 덫

자기소개서를 작성할 때마다 ‘특별한 경험’을 써달라는 항목 앞에서 멈칫거린다. 재수 1년 공무원 준비 3년 취업 준비 1년. 5년이 넘는 공백기 앞에 키보드를 두드리던 내 손가락은 갈 길을 잃는다. 내 나이 만 서른. 사회생활 경험 없이 ‘마지노선’을 넘었다는 생각에 가슴이 내려앉는다.

답답한 마음에 취업컨설팅 학원을 찾았다. “제 나이가 만으로 서른인데, 취업이 가능할까요? 공무원 준비 때문에 공백기도 길고 경험은 없고….”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컨설턴트는 망설임 없이 대답한다. “나이는 중요하지 않아요. 기업에서는 사람이 필요해서 뽑는 거잖아요. 그럼 그 직무에 어울리는 사람을 뽑는 거지, 젊은 사람을 뽑는 게 아니에요.”

그러면서 그는 내가 준비해간 자기소개서를 훑어본다. “자기소개서에 내가 무슨 직무를 잘할 수 있는지 어필이 하나도 안 돼 있어요. 토익 900점, 오픽 IH, 한국어 2급, 한국사 1급 이런 건 누구나 다 갖고 있는 자격증이에요. 자기소개서에서 충분히 어필을 해야지.”

나이가 중요하지 않다는 대답이 너무 반갑다. 마음이 놓인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증을 지울 수가 없다. “그럼 인사담당자들이 신입사원 채용할 때 지원자 나이를 보고, 여자 나이 28살 넘으면 취업 어렵다고 하는 뉴스는 왜 나오나요?”

컨설턴트는 잠시 숨을 고르더니, 다그치듯 말한다. “같은 스펙, 같은 자기소개서 쓰면 당연히 어린 사람을 뽑죠. 본인 스펙이 다른 사람보다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해요? 자기소개서는요? 본인 생각은 어때요? 우리 역할은 다른 사람과 비슷한 스펙과 인생 속에서 기업이 필요로 하는 부분을 끄집어내 주는 거예요.”

그러면서 100만 원 대부터 300만 원 대까지 잘 정렬된 가격표를 내민다. 한 달에 20~30만 원 꼴. 토익 학원비를 생각하면 엄청나게 비싼 금액은 아니다. 그래도 ‘전업 취준생’에게는 결코 만만한 액수가 아니다. 컨설턴트에게 조금 더 생각해 보겠다고 말하고 학원을 나섰다. 미묘한 기분. 무너진 자존감 더미 속에 희망의 끈 하나가 달랑거리는 느낌이다. 

▲ 길을 찾지 못한 취업 준비생들은 ‘취업 컨설팅 학원’의 문을 두드린다. 그러나 취업 준비생 입장에서 월 20~30만 원에 달하는 학원비는 적잖은 부담이다 ⓒ 뉴시스

바보야, 문제는 나이야

“너보다 나이 많은 사람이 후배로 들어오면 좋겠냐?”

대기업 인사팀에서 일하는 친구가 말했다. 친구는 단언했다. “능력이 엄청 뛰어나면 나이 상관없이 뽑지. 근데 신입 능력 차이가 그렇게 크겠냐? 결국 시키는 일 잘 할 사람 뽑는 건데, 나이 많은 사람이 들어오면 일시키기 어렵잖아. 그럼 당연히 나이 어린 사람 뽑는 거야. 다른 회사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솔직히 ‘능력만 있으면 나이 상관없이 뽑는다’는 건 말장난이라고 본다.”

‘나이는 문제가 아닐 거야, 자기소개서 때문일 거야.’ 취업컨설팅 학원에서 들었던, 마지막으로 붙잡고 있었던 희망의 끈조차 끊어버린 친구의 촌철살인(寸鐵殺人)이 폐부를 찌른다. 실제로 한 취업포털사이트 설문조사 결과 인사담당자 10명 중 7명 이상이 신입사원 채용 시 지원자 나이를 고려한다고 응답했다고 한다. 또 인사담당자 10명 중 6명 이상이 신입사원 적정연령이 있다고 답했으며, 이들이 밝힌 여성 신입사원의 적정연령은 25세였다. 나이가 중요 평가요소인 이유는 ‘조직 내 질서를 위해서’라고 한다. 심지어 어떤 조사에서는 인사담당자 4명 중 1명이 ‘만 30세 이상 지원자는 무조건 탈락시키거나 감점을 줬다’고 대답했다.

특히 ‘나이 많은 여성’은 더 불리하다. 재작년에 취업한 친구는 취업전형 내내 남자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숨겼다. 면접 때마다 나오는 “결혼은 언제 하느냐”는 질문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친구는 첫 면접에서 “남자친구가 있다”고 대답했다가 “그럼 곧 그만 두겠네…”라는 면접관의 혼잣말을 들어야 했다. 그나마 그 당시 친구는 스물여덟 살이었다. 지금 나는 많은 나이와 ‘결혼 가능성’이라는 두 개의 산을 넘어야 한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어차피 퇴로는 없다.

스터디에도 진입장벽이 있다

“취업스터디를 한 번 해봐.” 아무렇지도 않게 던진 친구의 말에 스터디를 뒤지기 시작했다. 궁지에 몰린 취업준비생의 귀는 창호지보다도 가볍다. 하지만 스터디조차도 들어가기가 쉽지 않다. 취업준비생 카페에 가입하고, 스터디에 수없이 지원해도 연락이 오지 않는다. 요즘 스터디는 이력서 수준의 정보와 스터디 경력까지 요구한다. 아무래도 많은 나이와 무경험이 문제인 모양이다.

기업 서류 전형 탈락도 모자라 스터디 모집에서까지 우수수 탈락하니 자신감은 날로 떨어진다. 문득 얼마 전 읽은 ‘스터디에도 진입장벽이 있다’는 기사가 떠오른다. ‘나이가 너무 많아서 떨어졌다’고 대답한 12% 중에 나 같은 사람이 포함돼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 취업 준비생들은 스터디 모임을 통해 정보를 교환하고 위로를 나눈다. 하지만 스터디 모임에도 ‘진입장벽’이 존재한다 ⓒ 시사오늘

어렵사리 스터디를 구했다. 수요일 오후 7시 신촌. 한 카페에서 모여 인사를 나눴다. 남자 셋 여자 셋. 나이는 스물넷에서부터 스물여덟 살까지 다양했지만, 나처럼 ‘여자 서른 살’은 없었다. “△△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했고, 토익 900점에 오픽 IH, 한국어 2급, 한국사 1급, 컴활 2급 자격증 있습니다. 열심히 해서 이번 하반기에 꼭 다 같이 붙었으면 좋겠습니다.” 작은 박수가 나오고, 질문이 들린다. “몇 살이세요?” 가장 듣기 싫은 질문. 어쩔 수 없이 대답한다. “서른하나, 생일이 빨라서 만으로는 서른 살이에요.” “아….” 아무렇지 않은 척하지만 놀란 게 틀림없다.

다시 태어나고 싶어요

스터디를 시작한 지 반년이 다 됐다. 이 스터디에는 몇 가지 규칙이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세면대를 촬영해 단체대화방에 인증사진을 올린다. 제 시간에 일어나서 씻고 공부를 시작한다는 표시다. 그 다음에는 인·적성검사 문제집을 몇 페이지까지 풀겠다고 보고하고, 다 푼 다음 사진을 찍어 단체대화방에 올린다. 화장실을 가거나 식사를 할 때, 중간 중간 휴식할 때도 ‘점심식사 30분’, ‘휴식 10분’ 식으로 보고한다.

일주일에 두 번씩은 스터디원이 모여서 각자 써온 자기소개서를 첨삭하고, 면접 준비를 한다. 이런 생활이 어느덧 6개월. 그러나 변한 것은 없다. 6개월이 넘는 동안 내가 기록한 성적은 서류전형 2승, 면접 무승이다. 패수는 일곱 번째 이후 세기를 포기했다. 차라리 노량진 생활이 나았다 싶은 생각이 든다. 적어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할 때는 두 가지 확신이 있었다. 나이는 문제가 안 될 거라는 확신, 열심히 하면 언젠가는 붙을 거라는 확신. 지금은 아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시간은 내 편이 아니다. 내가 저들과 같은 입장이 되려면, 다시 태어나는 방법밖에 없다. 노량진에서 공부하던 시절, ‘이생망’이라고 떠들며 웃는 남학생들을 본 적이 있다. ‘이생망’은 ‘이번 생은 망했어’라는 뜻이라고 했다. 그래, 이번 생은 망했다. 다시 태어나고 싶다.

내 청춘의 찬란함을 믿는다
어떤 수식어도 필요 없을 내 청춘의 찬란함을 믿는다
가장 뜨겁고 아름다운 청춘이길
조그만 감정에도 가슴 뛰는 청춘이길
커다란 감정에도 함부로 흔들리지 않는 청춘이길

헤르만 헤세 〈청춘은 아름다워〉 中

내 나이 겨우 서른. 하지만 내게 뜨거운 청춘 따위는 없다.

 

담당업무 : 국회 및 국민의힘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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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진 2016-11-26 17:4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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