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스플릿>, 복수의 서사에 파묻힌 스트라이크 파열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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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스플릿>, 복수의 서사에 파묻힌 스트라이크 파열음
  • 김기범 영화 기자
  • 승인 2016.11.01 13: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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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범의 시네 리플릿>끝내 처리 못한 스네이크 아이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김기범 영화 기자) 

▲ 영화 <스플릿> 포스터 ⓒ오퍼스픽쳐스

소위‘각본 없는 드라마’라 일컬어지는 스포츠를 소재로 한 영화 장르의 지향점은 단순하고도 명확하다. 

없는 각본을 만들어 드라마를 극대화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영화 장르는 관객들에게 그 드라마의 감동을 선사하기 위해 스포츠의 묘미인 긴장감과 박진감 넘치는 승부의 명장면 속에서 극한에 몰린 인간의 심리를 낱낱히 파헤치고 묘사하려는 노력을 경주한다. 

이에 대한 최상의 보상을 얻기 위해, 주인공의 일그러진 얼굴 표정이나 땀 한 방울까지 세세하게 잡아내는 클로즈업과 슬로 모션은 주로 인간애와 승리의 감동을 전달하기 위한 스포츠 영화의 더할 나위 없는 전유물이다. 

탄생한지 40년이 지났음에도, 허름한 링 위에서 전전하던 밑바닥 인생의 인간 승리를 그려내어 스포츠 영화의 상징적 아이콘으로 여전히 추앙받고 있는 실베스터 스탤론의 <록키> 시리즈는 그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한 스포츠 영화에 도박이라는 또 다른 긴박감을 첨언하는 장르가 발생한 지도 오래전이다. 

젊은 시절의 폴 뉴먼이 1961년에 찍었던 <허슬러> 는 사각의 당구대 위에서 동선을 구축하는 둥근 공과 직선 큐대가 만들어내는 날카로운 마찰음에 따라 오고가는 돈을 통해 정적인 인간 내면의 욕망과 질투, 사랑과 열정을 그려낸 바 있다. 

이어 <허슬러> 로부터 25년이 흐른 후에야 그 후속으로 발표되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여섯 번이나 연달아 오르고도 고배를 마셨던 폴 뉴먼에게 끝내 오스카를 안겨준 <컬러 오브 머니> 는 <탑 건> 으로 부상하기 시작한 당시의 신성 톰 크루즈를 대중에게 명징하게 각인시킨 계기가 되었다. 

어느덧 국내 영화계에도 스포츠의 감동과 인간애를 주제로 한 장르가 흥행 콘텐츠로 확고하게 자리 잡기 시작했지만, 대개는 국가대표의 실화에 모티브를 둔 일종의 팩션들이다. 

한 때 유행했던 이들 스포츠 팩션들의 흥행 결과가 점차 쇠락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굳이 언급할 필요는 없겠지만, 스릴과 쾌감 넘치는 드라마를 구축하기에도 쉽지 않은 장르에서 초반에 구사되었던 유머와 신파 코드의 혼재가 시간이 흐를수록 구태의연한 천편일률로 변질되었다는 사실은 절대 무시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유지태와 이다윗이 짝을 이뤄 생소한 도박볼링의 세계를 무대 삼아 훈훈한 브로맨스를 보여 주기 위해 기획된 <스플릿> 은 기존의 국내 스포츠 영화와는 다른 참신한 소재와 스토리를 내세웠다는 점에서 평가를 받을 만하다. 

쭉 뻗은 탄탄대로일 것 같은 매끄러운 레인 위로 야심차게 던져지는 볼과 맞물리지만, 볼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핀의 역동성은 바로 우리네 인생에 다름 아니다. 

더구나 희망과는 다르게 흘러가는, 늘 아쉬운 스페어 처리는 누구에게나 완벽한 삶은 없음을 보여 주는 듯하다. 

국내 최초로 <스플릿> 에서 연출되어 레인 위를 힘차게 내달리는 볼의 현란한 스핀과 핀들이 내뿜는 통쾌한 파열음은 스포츠 영화 특유의 스펙터클까지는 아니더라도, 관객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기에 충분하다. 

비록 CG의 존재는 부정할 수 없을지라도, 매 순간 원하는 장면을 얻기 위해 온갖 심혈을 기울였을 현란한 카메라 워크와 편집은 이제 첫 장편연출작에 도전하는 감독의 회심을 느낄 수 있다. 

기존의 세련되고 단아한 이미지에서 모처럼만에 변신을 한 유지태가 뿜어내는 거친 입담과 액션은 그의 눈빛과 어우러져 특유의 아우라를 뽐낸다. 

자폐증 증상을 가진 이다윗의 천진난만하고 순수한 모습은 비록 과장되어 보일 수 있는 연기 폭이지만, 간간히 관객들에게 웃음과 심금의 냉온을 오갈 수 있는 여지를 안겨준다. 

세속에 찌들며 자신의 것을 지키기 위해 악다구니를 쓸 수밖에 없는 이정현의 모습 또한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에서처럼 비록 성실하진 않지만, 자그마한 체구에서 표출되는 그만의 에너지는 여전히 유효하다. 

그러나 볼링이라는 독특한 소재와 발군의 연기력을 인정받은 출연진에 비해 인물간의 갈등 구조를 묘사하는 스토리 라인이 관객들에게 얼마나 어필할 지는 분명한 미지수다. 

스포츠 영화의 유일한 특장점이라 할 수 있는, 승부를 향해 땀을 쥐게끔 하는 극적 긴박감이 후반부로 갈수록 주인공의 복수라는 진부한 서사로 흘러가 묻히는 점이 안타깝다. 

특히 관객들에게 마지막의 거창한 반전으로 인식되어지고 싶어 했을, 유지태와 정성화의 지나간 악연을 보여주는 장면은 마치 예전의 홍콩영화 후반부처럼 구구절절한 내막을 설명하는 스토리텔링을 답습한다. 

일상의 루틴을 유지한다는 전제 하에 특정 분야에서 범인들은 엄두도 못 낼 천부적 역량을 선보이는 자폐 증상을 가진 이들의 이야기 또한 어중간한 드라마로서는 이제 현격한 흡입력을 갖추지 못한다. 

무엇보다도 브로맨스를 이루어야 할 유지태와 이다윗의 케미스트리의 과정은 자폐장애를 가진 이와 그 주변인과의 감동의 여정을 선보였던 과거의 <레인맨> 이나 <말아톤> 의 경지만큼 충분한 설득력을 자아내지 못한다. 

결국 <스플릿> 에서 주안점을 두어야 할 스포츠 세계의 박진감이나 감동은 레인 위를 두드리는 장쾌한 사운드가 주는 기대와는 달리, 도박볼링 세계의 복수극에 파묻혀 그 드라마가 유실되고 만다. 

음성적으로 돈이 오가는 엄연한 도박판에서의 신랄한 승리가 과연 밑바닥 인생의 반격으로 인정되어야 할지는 보는 이들의 몫으로 남긴다 할지라도, 결국 내기바둑판의 음모와 액션이 난무했던 <신의 한수> 가 보여준 평이하고 식상한 복수의 서사를 벗어나지 못함은 부인할 수 없다. 

호쾌한 스트라이크를 노렸으나, 제목 그대로 영화는 7번 핀(스포츠의 극적인 감동)과 10번 핀(인물 감정)의‘스네이크 아이’스플릿을 끝내 처리하지 못한 미진함을 남기고 만다. 

11월 10일 개봉한다. 15세 이상 관람가. 

 

뱀의 발 : 영화의 주요 배경으로 많이 나오는 인천의 오랜 원도심은 주인공들의 처지를 대변하기에 적절한 듯하다.

★★☆

·영화 저널리스트
·한양대학교 연구원 및 연구교수 역임
·한양대학교, 서원대학교 등 강사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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