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위스키 탱고 폭스트롯>, 전쟁터의 미아들이 선택하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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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위스키 탱고 폭스트롯>, 전쟁터의 미아들이 선택하는 길
  • 김기범 영화 기자
  • 승인 2016.11.10 16: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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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의 길목에서 택한 전쟁 드라마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김기범 영화 기자) 

▲ 영화 <위스키 탱고 폭스트롯> 메인 포스터 ⓒ다자인 소프트

미국이 수행했던 이라크 전쟁에 대한 섬세하면서도 현실적인 묘사로 82회 아카데미 시상식을 휩쓸었던 <허트 로커> 는 보이지 않는 긴장과 흡입력으로 스크린을 감싸는 연출과 편집이 돋보인 수작이다. 

미국 최고의 여류 감독인 캐슬로 비글로우는 <허트 로커> 를 통해 기존 전쟁 영화의 공식인 미국식 패권과 액션의 진부한 서사를 떠나, 군인 이전에 인간이 전쟁에서 갖는 절망과 고통을 적절한 완급 조절로써 다큐멘터리에 버금가는 리얼리티로 치환해 낸다. 

원제인 <The Hurt Locker>는 전쟁으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 등을 겪고 난 뒤 물리적, 감정적 고통에 갇혀 있음을 뜻하는 미군의 속어다.

무수한 인명이 (때로는 이유 없이) 살상되어야 하는 전쟁 특유의 긴장감과 살아남았을 때의 희열에 마약처럼 중독되어버린 주인공이 일상에서의 무료함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사랑하는 가족 곁을 떠나 다시 전장으로 되돌아가는 모습에는 전쟁의 속성에 무감각해지는 인간 본성에 대한 통렬한 성찰과 애틋한 동정이 동시에 상존한다. 

<허트 로커> 가 이라크에서의 참혹하고 끝없는 전쟁의 쾌감에 중독되어 빠져 나올 수 없는 군인의 뒷모습을 보여 주었다면, 티나 페이의 <위스키 탱고 폭스트롯> 은 아프가니스탄의 한 민간인 여기자가 일과 위험, 그리고 사랑에 중독되는 과정을 그려낸다. 

이 영화는 겉으로는 블랙 코미디를 표방하지만, 실상은 킴 베이커라는 실존 인물의 자서전에 기초하여 전쟁과 전장의 실제 이면을 종군 여기자의 눈으로 포착해 낸 드라마다. 

영화의 배경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발발한 지 얼마 안 된,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상과 직장에서의 압박감에 지쳐 자의반 타의반으로 아프가니스탄의 종군 기자로 나선 주인공은 모든 초보들이 으레 그렇듯 전혀 생소한 문화와 환경, 주변인들에 둘러싸여 시행착오 속의 적응과 부적응을 반복한다. 

자신들이 속해 있던 현실 사회에서 벗어나 전쟁터의 광기 속에 존재하는 아이러니한 느슨함에 서서히 녹아들어 긴장 속의 자유를 즐기고자 하는 인간 본능은 <허트 로커> 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유효하다. 

더불어 방종에 가까운 전쟁터에서의 일탈을 누리는 서구인들과는 달리 현지인들에게는 엄연한 현실인 전쟁 이면의 아픔을 전달하고, 그동안 TV 밖의 이방인들에게는 미지였던 아프가니스탄의 문화와 정서를 최대한 선보이려는 나름대로의 접근도 시도한다. 

그러나 현지인은 주변부로 남은 채 외지인의 시각과 논리를 중심으로 그려지는 후진국의 모습은 여전하고, 코미디와 드라마의 어중간한 경계에서 영화의 주제가 관객들에게 어설프게 다가올 수 있는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캐릭터에 빠져들 만한 인물 간의 갈등도 극적이지 못하지만, 촌철살인의 미국식 유머와 위트를 대신하고자 했을 등장인물들의 거친 입담도 아쉽다. 

취재전쟁이라는 또 하나의 전투 속에서 풀어 헤쳐지는 성적 욕망과 언어유희는‘Take on Me’나‘Without You’등의 추억의 팝송과 어우러지는 일상의 본능 같지만, 이는 진지한 다큐멘터리 드라마에 가까워지는 후반부와는 완벽히 융화되지 못하고 겉돌기도 한다. 

아프가니스탄의 현지인들을 위해 선정을 베푼다고는 하나, 정작 그들의 본질과 문화를 이해 못해 황당해 하는 빌리 밥 손튼의 허탈한 표정이야말로 그나마 영화가 내세우는 블랙 코미디가 제일 잘 스며든 압권이다. 

결국 접점 없이 자신들의 관념에만 의존하는 외지인들의 단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무지의 편린이다. 

그러면서도 여론과 돈이 지배하는 현대전과 이를 규명해야 하는 저널리즘의 한계와 현실적 문제에 대한 자조는 잊지 않는다. 

여론의 미명하에 상업적 이익을 추구하는 미국의 저널리즘처럼, 인간보다 무기의 채산성과 국방 예산에 집착하는 자본의 논리가 어느새 지배하게 된 미군의 양상은 그들의 현재를 여실히 노정한다. 

결국 <위스키 탱고 폭스트롯> 의 주인공은 일과 전장의 환경에 함몰되는 여타 저널리스트들과는 달리, 더 나은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전쟁터를 빠져나오는 길을 선택한다. 

전쟁 속에 공존하는 광기와 희열에 녹아나는 인간의 모습은 주전자 속에서 천천히 데워지는 물의 온도에 아늑함을 느끼며 탐닉하다 자기 몸도 익혀지고 있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해 죽어가는 개구리에 다름 아니다. 

누군가는 그 편안한(?) 전쟁터에 동화되기도 하지만, 분명 누군가는 탈출을 시도하는 법이다. 다만 우리 모두는 선택의 여지가 있는, 전쟁터의 미아가 될 뿐이다. 

그 누구도 탓할 수 없으며 각자의 길을 계속해서 가야 한다는 상이군인의 대사는 옳다고 생각하는 자신의 길을 걸어야 하는 우리 사회와 개인들의 삶을 현실적으로 조망한다. 

명콤비인 에이미 폴러와 함께 골든 글로브 시상식 등의 단골 MC로 출연자들을 쥐락펴락하는 티나 페이는 연예계에 오프라 윈프리 못지않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명실상부한 미국 코미디의 여왕이다. 

그런 티나 페이가 주연과 제작을 겸한 영화이기에 자칫 그녀의 특기인 풍자와 해학이 깃든 식상한 코미디라거나, 요즘 대세로 떠오르고 있는 마고 로비에 초점을 맞춘 영화라는 선입견은 <위스키 탱고 폭스트롯> 에 대한 확연한 오해이며 편견이다. 

분명 <위스키 탱고 폭스트롯> 은 2008년의 미국 공화당 부통령 후보였던 사라 페일린을 패러디해 에미상을 거머쥔 티나 페이의 또 다른 색깔과 매력이 한껏 도드라지지는 작품이다. 

그러나 그보다는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현재 미국에 대해 한 진보의 아이콘이 바라보는 적나라한 시선일지도 모른다. 

11월 10일 개봉한다. 15세 이상 관람가. 

 

뱀의 발 : 영화 제목으로 차용된 <위스키 탱고 폭스트롯> 은 W, T, F 의 포네틱 코드, 즉 미군의 알파벳 통신 암호다. 영화의 배경인 전쟁터의 일면과 함께 그 안에서 펼쳐지는 술과 춤의 연회를 나타낸다고도 할 수 있지만, W T F 는 미국인들이 어이없는 상황에 대해 탄식할 때 흔히 쓰는 비속어의 약자이기도 하다. 영화가 내세우는 중의적 표현이다.

★★★

·영화 저널리스트
·한양대학교 연구원 및 연구교수 역임
·한양대학교, 서원대학교 등 강사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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