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과 차지철, 그리고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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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현과 차지철, 그리고 민주주의
  • 정진호 기자
  • 승인 2016.11.17 11: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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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비박이 3金이면 이정현은 차지철인가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지난 16일 “3김(金) 정치에 완전히 오염된 사람들이 그분들의 행태를 그대로 이어가고 있다”고 비박계를 싸잡아 비난했다 ⓒ 뉴시스

서번트 리더십(Servant leadership).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지난 7월 당대표 선거에 출마하면서 ‘섬기는 리더십’을 내세웠다. 그는 “국민의 눈으로 정치에 특권이 발붙이지 못하도록 모든 기득권을 철저히 때려 부수고, 서번트 리더십으로 국민을, 민생을 찾아가는 당으로 만들기 위해 당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치겠다”며 “대한민국 정치의 고질병인 권력에 줄 서는 수직적 정치 시스템을 수평적 구조로 바꾸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당선 3개월이 지난 지금, 이 대표는 자신의 약속을 절반만 기억하고 있는 듯하다. ‘섬기겠다’는 약속은 철저히 지키고 있지만, 누구를 섬겨야 하는지는 잊은 모습이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최순실 게이트’ 국면에서 “나도 연설문 쓸 때 친구에게 의견을 물어본다”거나 “세월호 때도 거의 900억 원 모금을 금방 했다고 한다”는 등의 실언으로 빈축을 샀다.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비박계를 향해서는 “(지지율이) 다 합해서 9%도 안 되는데 자기 앞가림도 못 하면서 이정현만 물러나라고 한다”며 ‘막말’까지 던졌다. 지난 16일에는 “3김(金) 정치에 완전히 오염된 사람들이 그분들의 행태를 그대로 이어가고 있다”고 비박계를 싸잡아 비난했다. 박 대통령 지지율이 5%까지 떨어지고, 100만 명이 광화문광장에 모여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는 상황에서도 ‘대통령 지키기’에만 혈안이 된 모양새다.

하지만 비박계를 3김에 비유한 이 대표의 언행은 역설적으로 박정희 정권 때의 대통령 경호실장 차지철을 떠오르게 한다. 자기 방에 ‘각하를 지키는 것이 나라를 지키는 것이다’라는 표어를 붙여놓고 정권의 파수꾼을 자임했던 그는 ‘누구든지 대통령을 방해하는 자는 걸리면 큰일난다는 것을 공공연히 알리기 위해서’ 밤마다 전차 1개 중대를 출동시켜 청와대 부근을 순찰했던 ‘충성심의 화신’이었다.

차지철은 또 “야당 놈들 중 국회의원 하기 싫은 놈 하나도 없다. 까불면 학생이고 신민당이고 전부 탱크로 싹 깔아뭉개야 한다”며 김영삼 신민당 총재의 의원직 제명을 주도했다. YS 제명이 발단이 돼 부마항쟁이 일어나자 “캄보디아에서는 300만 명 정도를 죽이고도 까딱없었는데 우리도 데모 대원 100~200만 명 정도 죽인다고 까딱 있겠습니까?”라며 마지막까지도 박 대통령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 노력했다. 광화문광장에 모인 불빛을 외면하며 비박계를 ‘구태 정치인’으로 몰아붙이는 이 대표 위에 민심을 무시하며 ‘민주주의자’ YS와 DJ를 힐난했던 차지철이 오버랩되는 대목이다.

故 김영삼 전 대통령(YS)과 故 김대중 전 대통령(DJ)은 군사독재정권 내내 몸을 던져 치열한 투쟁을 벌였다. 민주주의자였던 그들은 민의(民意)를 따르는 것이 정도(正道)라고 믿었다. YS의 말처럼, 민의에 충실했던 그들은 ‘잠깐 죽는 것 같지만 영원히 사는 길’을 택했다. 그러나 민의를 무시하고 권력자에게만 충성을 다하던 차지철은 ‘잠깐 사는 것 같지만 영원히 죽는 길’을 걸었다.

물론 이 대표와 차지철을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 이 대표는 불법을 자행하지도, 총칼을 동원한 적도 없다. 다만 본질적으로 두 사람 모두 민심이 아닌 권력자에게 충성하고 있다는 점은 동일하다. 대통령 지지율은 5%까지 떨어졌고, 각종 여론조사에 따르면 박 대통령의 하야 혹은 퇴진을 요구하는 국민이 절반을 훌쩍 넘는다. 광화문광장에는 매주 주말마다 수십만 명이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을 들고 운집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 대표의 눈은 청와대만을 향하고 있다. ‘서번트 리더십’을 강조하는 그가 ‘섬겨야 할 대상’은 누구인가. 민주주의의 역사는 민심을 거스르는 정치인을 결코 용납하지 않는다.

담당업무 : 국회 및 국민의힘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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