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이 박근혜’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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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이 박근혜’는 없다
  • 정진호 기자
  • 승인 2016.11.21 14: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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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보수 대 진보’ 아닌 ‘민주주의 대 반 민주주의’ 대결…숨은 여론 있을까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 촛불 시위는 날이 갈수록 번져가고 있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고집은 꺾일 줄 모른다 ⓒ 시사오늘

박근혜 대통령이 반격에 나섰다. 박 대통령은 지난 20일 변호인인 유영하 변호사를 통해 “검찰의 직접 수사에는 일절 응하지 않고, 특검 준비를 철저히 할 계획”이라며 검찰 조사 거부 의사를 밝혔다. 지난 4일 두 번째 대국민사과에서 ‘필요하다면 저 역시 검찰 조사에 성실히 임할 것’이라고 약속했던 것과는 180도 달라진 태도다.

이처럼 박 대통령이 태세를 전환한 데는 ‘샤이 박근혜’에 대한 기대가 깔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샤이 박근혜는 ‘샤이 트럼프(Shy Trump)’를 빗댄 개념이다. 지난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여론조사 결과와 달리 도널드 트럼프가 힐러리 클린턴에게 압승을 거두자, ‘창피해서 차마 여론조사에 트럼프를 지지한다고 말하지 못한 여론’을 원인으로 지목하고 그들에게 샤이 트럼프라는 이름을 붙였다. 즉, 샤이 박근혜는 창피해서 차마 여론조사서는 말하지 못하지만, 실제로는 박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뜻한다.

그러나 샤이 트럼프와 달리, 샤이 박근혜의 존재 가능성은 높지 않다. 반(反) 트럼프와 반 박근혜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민주주의가 선거라는 제도를 통해 ‘대표’와 ‘책임’이라는 핵심 원리를 지켜나간다고 말했다. 이에 따르면, 트럼프의 당선은 철저히 민주주의 체제 내에서 이뤄졌다. 저급한 개인 성향, 과격·폭력적 공약 등이 문제였을지언정, 대의민주주의라는 틀 자체는 완벽히 지켜졌다. 그렇기 때문에 ‘지지자 대 지지자’라는 구도가 형성될 수 있었고, ‘샤이 트럼프’라는 계층도 존재할 수 있었다.

반면 박 대통령은 민주주의라는 틀 자체를 무너뜨렸다. 선거를 통해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멋대로 ‘최순실’이라는 개인에게 재위임함으로써 대표성을 상실했으며, 대표성을 상실함으로써 자연히 책임에서도 멀어졌다. 민주주의의 두 축을 통째로 부정한 셈이다.

그동안 박 대통령은 ‘보수 대 진보’라는 이념대결 구도에서 절대강자 위치에 서있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후광을 업고 ‘보수의 아이콘’이 된 그는 보수와 진보로 양분된 한국 정치에서 최대주주로 군림해왔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도 박 대통령이 샤이 박근혜를 기대하는 것은 바로 이런 경험이 바탕이 된 귀납적 추론의 결과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 박 대통령을 둘러싼 싸움은 이념 대결이 아닌, ‘민주주의 대 반(反) 민주주의’ 구도가 됐다. 보수 대 진보의 이념 대결에서 늘 박 대통령 편에 섰던 ‘콘크리트 지지율’이 무의미해졌다는 뜻이다. 현재 지형에서 샤이 박근혜의 주장은 ‘민주주의야 아무래도 좋으니 박 대통령을 지키자’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 2016년 대한민국에서 이런 목소리가 얼마나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까. 국민을 향해 반격을 시작한 박 대통령이 깊이 고민해봐야 할 대목이다.

 

담당업무 : 국회 및 국민의힘 출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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