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박계 역사는 끝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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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박계 역사는 끝날까
  • 김병묵 기자
  • 승인 2016.12.07 14: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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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농단 사태에…´폐족 위기´
구심점 부재…강경파만 남아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김병묵 기자)

친박계는 이대로 역사 속으로 사라질까. 전무후무한 국정농단 사태의 여파로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이 임박하면서, 지지세력 이었던 친박계의 앞날이 어두워졌다. 여론의 뭇매를 맞는가 하면 범친박 이탈이 시나브로 이뤄지는 중이다.  반전을 이루기엔 어렵다는 평이 주를 이루는 가운데, 그 이유로는 크게 두 가지가 지목된다. 구심점이 될 인물의 부재와, 상징적 인물인 박 대통령이 범법자의 신분으로 전락했다는 거다.

단임 대통령제 성격상, 인물을 중심으로 한 정치 계파는 대개의 경우 정권창출 후 쇠락의 길을 겪는다. 정치보복을 당하는 사례도 흔하다. 최근의 사례만 봐도 낮은 지지율로 임기를 마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측근들인 친노(親盧)는 한 때 ‘폐족’으로 불리며 와해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한 때 친박계와 당의 패권다툼을 했던 이명박 전 대통령의 친이(親李)계도 뿔뿔이 흩어져 각자도생 중이다.

친박계의 경우는 더욱 상황이 좋지 않다. 우선 대통령이 레임덕에 빠졌거나 그냥 임기 말 지지도가 낮은 수준이 아니라, 범법(犯法)을 저지른 범죄자로 불명예 퇴진을 목전에 뒀기 때문이다. 여론마저 친박계를 겨냥해 집중포화를 퍼붓는 형국이다.

아직 지도부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사실상 모든 힘이 빠졌다. 여기에 한 때 친박 이었다가 팽(烹) 당한 소위 ‘짤박(짤린친박)’들은 그간의 울분을 쏟아내듯 강한 비판을 가하고 있다. 촛불민심의 열기를 감지한 비박계는 탄핵 찬성 쪽으로 등을 돌렸다.

다음으론 구심점의 부재다. 앞서 친박계는 위기를 극복해 온 사례가 존재한다. 지난 2008년 소위 ‘공천학살’로 이름 붙은 친이계의 공세에 밀린 친박계는 한나라당을 떠난다. 그리고 총선을 위해 ‘친박연대’라는 전무후무한 이름의 정당을 만들고 재기에 성공했다.

그러나 당시엔 서청원이라는 경험 많은 핵심인사가 존재했다. 지금도 친박계의 맏형으로 불리는 서 의원이지만, 사실 꽤 전에 일선에서 손을 뗀 상태다. 지난 19대 재보선 역시 명예회복 차원에서 돌아왔다는 해석이 많았다. 서 의원 뒤에 친박계를 모을만한 중량감과 카리스마를 겸비한 인사는 나타나지 않았다.

다만 ‘강경파’만 남았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를 비롯한 친박계의 강성 의원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박 대통령을 엄호하는 모습을 보이며 일관성을 유지 중이다. 그러나 이미 손으로 꼽을 수 있을 만큼 줄어들었다.

한 때 범친박계로 분류됐던 한 중진 의원실의 보좌관은 7일 <시사오늘>과의 만남에서 “기사를 쓸 때 굳이 친박이라고 붙여주지 않으셨으면 한다…”며 “우리 의원님은 원래도 저 쪽(강경파)과는 다른 분”이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아직 국회의원으로서 임기가 많이 남은 탓에 친박계의 핵심 의원들이 원외로 나갈 가능성은 낮지만, 이번 사태의 후폭풍이 다음 선거에서의 운명을 좌우할 지도 모르는 상태다. 친박계 의원의 지역구 사무실은 계란세례 등 지역민들의 강한 항의를 받기도 했다.

이와 관련, 비박계 의원실의 한 관계자는 같은 날 <시사오늘>과의 만남에서 “당이 깨지든 재창당을 하든 현 친박계 강경파는 고립될 것”이라며 “아마도 친박계라는 이름은 더 이상 듣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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